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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인재

'두뇌 유출'을 '두뇌 유인'으로 전환할 때

by 박병건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인재 유출이 심각한 수준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두뇌유출지수'에서 한국은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으며, 인구 대비 미국 영주권 취득 비율은 인도나 중국보다 10배 이상 높아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최고 석학들이 해외 유수 연구기관으로 이탈하고, 명문대 이공계 인재들은 안정적인 의대 진학을 선택하는 '내부 유출'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 혁신 역량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조적 실패다.


탈출을 부추기는 요인들


국제 경쟁력을 잃은 보상 체계

한국 박사급 연구원의 평균 연봉은 미국 AI 분야 박사 초봉의 4분의 1에 불과하며, 중국은 엔지니어 연봉이 의사보다 2~4배 높은 경우도 있다. 예컨대, 중국 AI 기업 딥시크는 신입 직원에게 연 100만 위안(약 1억 9천만 원)을 제시했다.


경직되고 열악한 연구 환경

연구자들은 단기 실적 중심의 평가, 연구 독립성 부족, 일관성 없는 정부 R&D 투자, 과도한 행정업무 등에 시달리고 있다. 정년 이후 연구 지속을 위한 제도도 미흡해, 시니어 석학들마저 해외로 떠나고 있다. 국가석학 1, 2호인 이영희, 이기명 교수도 정년 제한과 연구 환경 문제로 중국으로 옮겼다. 한 명의 석학이 빠져나가는 것은 “작은 연구소 하나가 통째로 떠나는 격”이라는 지적이 있다. 석학 개인의 역량뿐 아니라 연구팀, 학계 네트워크, 후속 인재까지 함께 유실되기 때문이다. 이는 인재 이탈의 악순환을 심화시켜, 결국 국내 학문 생태계 전반의 약화를 초래한다.


세계는 지금 '인재 전쟁' 중이다

각국은 인재 확보를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고 적극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다.


중국은 2008년부터 '천인계획'을 통해 고급 인재를 공격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선정 인재에게는 100만 위안(약 1억 9천만 원)의 보조금, 최대 500만 위안(약 9억 5천만 원)의 연구비, 아파트, 가족 정착 지원 등 파격적 혜택이 제공된다.


미국은 개방적 이민 정책과 민간 기업 중심의 인재 전략을 활용한다. 실리콘밸리는 인재 확보를 위해 그들이 속한 회사를 인수하는 '어크 하이어(acq-hire)' 전략을 쓰기도 한다. 구글의 딥마인드 인수, 메타의 AI 인재 유치 시 1억 달러 보너스 제안이 대표적 사례다.


싱가포르, 독일, 캐나다, 일본 등도 금전적 지원을 넘어 연구 자율성, 가족 지원, 사회적 존중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두뇌 유인'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과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 과거의 산업 모델을 보호하는 것보다 '두뇌 유출'을 막고, '두뇌 순환'이라는 역동적인 엔진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비자 및 이민 제도 전면 개편

비자 및 이민 제도 개혁 관료적이고 복잡한 비자 시스템을 혁신하고, 단계별 '인재 포트폴리오'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복수 고용, 창업 허용, 취업 매칭, 정착 지원 등 민관 협력 모델이 필요하며, 단일화된 다국어 온라인 포털 구축도 필수다.


세계적 수준의 연구 환경 조성

정부는 연구자 역량 강화를 중심으로 R&D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등록금 동결 해소를 통한 교수진 처우 개선, 장기적 연구 프로젝트 중심의 R&D 투자, 해외 인재 귀국을 촉진할 '두뇌 순환 이니셔티브' 신설이 필요하다.


규제 프레임워크 현대화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글로벌 어크하이어에 대응하고, 주 52시간제 등 경직된 노동법의 유연한 적용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혁신형 직무에 대한 유연 계약 제도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보상 및 조직 문화 혁신

기업은 연공서열식 보상을 폐지하고, 핵심 R&D 인력에 대한 성과 중심 보상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프로젝트 순환, 교차 기능 업무 배정 등을 통해 지속적인 학습과 커리어 성장 기반을 마련하고, 실패를 허용하는 유연한 조직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적, 문화적 혁신은 정부와 산업계가 협력하는 국가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의 '인재전략회의'와 같은 컨트롤타워를 두어 빠르고 통합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론: 대한민국의 미래는 인재에 달려 있다

대한민국은 '사람밖에 없다'는 말처럼 인재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이제는 인재 유출을 걱정하는 단계를 넘어, 전 세계 인재가 몰려오고, 한국 인재도 세계 무대를 경험하고 돌아올 수 있는 '두뇌 순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Brain Home Korea'와 같은 전략이 현실화될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글로벌 인재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미래는 인재를 어떻게 지키고, 유치하며, 성장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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