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진국 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김상국
며칠 전 완도 여행을 다녀왔다. 남자 다섯 명만의 조촐한 모임이었지만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낸 사이였기 때문인지 고등학교 수학여행 같은 즐거운 여행이었다.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끊임없이 농담과 함께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 저녁 식사에서부터 명사십리 해변에 비행기 이착륙이 가능하겠는가? 백령도 해안은 모래가 단단하여 가능하겠지만, 명사십리는 아닐 것 같다. 등등 정말 다양한 주제가 오고 갔다. 그리고 짬짬이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이 되느냐, 트럼프가 되느냐도 얘깃거리였다. 그러나 다섯 명 모두 정치에 큰 관심이 없어서 결국 중국 경제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울을 왕복하는 차 안에서도 『중진국 함정』의 의미가 무엇일까? 도 얘기하였다.
중진국 함정이라는 단어는 무슨 큰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일반적 의미는 “국가와 국민이 열심히 노력하면 1만불에서 1만 5천 불 정도까지 소득이 올라갈 수 있지만, 그 이상의 발전은 어렵다.”는 뜻인듯하다. 사람에 따라서는 1만 5천 불이 아니라 2만 불이라는 사람도 있으나 다수 의견을 따라 1만 5천 불로 하겠다. 즉 『중진국 함정』이란 저렴한 노동력과 요수투입의 증가 등으로 노력하면 1만 5천 불까지는 가능하지만, 그 이상의 도약은 매우 어렵다.”는 뜻인 것 같다. 그러면서 흔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멕시코, 남아공, 브라질, 중국 등이 자주 언급되는 것 같다.
지금부터 약 20년 전 쯤 중국 어느 성(省) 정부로부터 초청을 받아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성공 요인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중국이 요즘 말하는 G2와는 거리가 멀었고, 오만하지도 않았으며, 경제 발전에 목말라했던 때였다. 나도 흔쾌히 허락하고 강의 준비를 하였다.
나는 경영학 중에서도 경영전략(Business Strategy)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경영전략을 짜는 데 있어, 내 나름대로 중요한 순서가 있다. 언젠가 이 순서에 대해서 자세히 글을 쓰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간단히 소개하면 ① 절대로 선진사례를 먼저 보지 말 것 ② 부족한 데로 나의 의견을 간단한 몇 줄로 이유와 함께 충분히 요약하고 기록할 것 ③ 설령 나의 의견과 선진사례가 다를지라도 쉽게 선진사례를 따르지 않고, 그 이유를 면밀히 분석한 후 최종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 원칙들은 간단하게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원칙이고, 여기서부터 나의 독창적인 판단능력과 전략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때 내가 국가 발전이 가능한 정도를 구분하는 공식은 다음과 같았다.
(1) 중요한 원칙(나의 원칙)
가. 국민들의 교육 정도(문맹률, 평균 학력)
나. 국민들의 창의력(지능 정도)
다. 도덕적 순수성
라. 목적을 향해 ‘함께’ 화합하여 ‘장기간’ 나아 갈 수 있는 능력
마. 정권의 교체 가능성(독재자, 집권 정당의 변화 가능성)
바. 부정부패의 정도
사. 국민들이 자기들이 이룬 성과에 대해 쉽게 만족하는 정도
아. 종교의 획일성과 지배력
자. 지도자의 혜안과 부패 용인의 정도
각각의 요인을 가능한 짧게 요점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가. 국민들의 교육 정도(문맹률, 평균 학력)
이것은 매우 간단하다.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글을 읽고 쓸 수 있는가? 교육을 받은 평균 햇수가 몇 년인가? 대학 진학은 어느 정도인가? 등이다. 우리나라 경우 고등학교 의무교육까지 12년이고, 거의 대부분 대학을 진학하니 평균학력은 15~16년 정도라고 생각한다. 아마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일 것이다. 게다가 세종대왕의 ‘한글’이라는 어마어마한 자산이 있어, 우리나라 문맹률은 세계에서 가장 낮다.
나. 국민들의 창의력(지능 정도)
이것은 부모로부터 타고 나온 지능지수를 말한다. 아마 우리나라, 이스라엘, 독일, 인도, 베트남, 중국 그리고 조금 떨어져서 일본이 있고 그 다음에 중동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통계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나라와 이스라엘, 독일이 약간의 차이(IQ 1~2의 작은 차이)로 최선두 그룹이고,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이 1등 또는 2등이다. 다만 여기서 IQ는 국민‘평균’수치를 말한다. 인도, 중동, 중국은 확실히 대단한 천재가 있는 나라다. 그러나 국민들 간에 편차가 심하다. 특히 인도의 경우에는 카스트제도 등으로 국민 전체의 능력이 함께 발휘되지 못하는 매우 안타까운 실정이다.
다. 도덕적 순수성
도덕적 순수성은 그 나라 국민들이 평균적으로 ‘근대적인 도덕규범(페어플레이 정신)을 따르려고 얼마나 노력하느냐의 정도’이다. 영어로 말하면 Intelligent와 Clever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오해의 소지도 있어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쉽게 말해서 그 나라에 가서 『평균적으로 사기를 당할 가능성, 보은(報恩)의 정도』라고 표현하면 쉽게 감이 올 것 같다. 사기를 당할 가능성이 높을수록 점수는 낮아질 것이다.
라. 목적을 향해『함께』 화합하여『장기간』나아 갈 수 있는 능력
이것도 간단히 설명하면 그 나라에 투자 또는 합작을 하였을 때 그 결과가 얼마만큼 원활하게 지속될 수 있는가를 뜻한다. 쉽게 말해 ‘뒷통수’ 맞을 가능성이 높느냐, 낮으냐의 문제다. 즉 외국 기업들이 그 나라 기업들과 합작하여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마. 정권의 교체 가능성(독재자, 집권 정당의 변화 가능성)
이것은 매우 명백한 기준이 있다. 집권 정당이 얼마만큼 정기적으로 자주 바뀌느냐의 정도다. 공산당이 집권하는 국가(중국), 자민당이 거의 50여 년을 지배하는 일본, 독재자가 존재하는 국가(중국, 터키, 러시아) 등은 정권교체 가능성이 매우 낮은 나라라고 볼 수 있다.
바. 부정부패의 정도
사실 그 나라 부패의 정도 즉 부패지수는 ‘마’항에서 지적한 정권 교체 가능성과 거의 비슷한 말이다. 그러나 따로 이 항목을 분리한 이유는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개인 의견으로는 부정부패의 정도는 정권의 교체 가능성(독재자, 집권 정당의 변화 가능성)과 거의 비례한다고 본다. 중국, 러시아, 터키, 일본 등이 전형적으로 낮은 점수 국가들이다.
사. 국민들이 자기들이 이룬 성과에 대해 쉽게 만족하는 정도
아마 이 항목이 포함되는 것에 많은 독자들이 상당히 의외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매우 중요한 항목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다른 뜻이 아니다. ‘국민들이 1,000원을 추가로 벌면 만족하고 그 돈을 쓰려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그것을 10,000원으로 만들기 위해 더 악착스럽게 모으려는 국민들’인지를 구분하는 정도다. 이런 성향은 부작용도 크다. 하지만 발전과 경쟁의 원천임에는 틀림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도 가장 탁월한 상위 점수 국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민족적 성향(아시안, 라틴, 열대 남방, 북방 추운 겨울이 있는 4계절 지역) 등이 강하게 작용하는 듯하다.
아. 종교의 획일성과 지배력
이것도 비교적 간단하다. 그 나라 ① 종교의 다양성과, ② 종교가 생활에 우선하는 정도를 뜻한다. 즉 종교가 다양하지 못하고, 특정 종교가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을 지배하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성장에 대한 기여 점수는 낮아질 것이다.
자. 지도자의 혜안과 부패 용인 정도
이 항목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고, 이 글의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위에서 나는 9가지 요소를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 요소들 간의 상관관계를 고려하여 통합하면 다음 6가지로 줄일 수 있다. 그러나 9가지를 그대로 적용하여도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가. 국민들의 교육 정도(문맹률, 평균 학력)
나. 국민들의 창의력(지능 정도)
다. 도덕적 순수성(목적을 향해 ‘함께’ 화합하여 ‘장기간’ 갈 수 있는 능력)
마. 정권교체 가능성(독재자 유무, 집권 정당의 변화 가능성, 부정부패의 정도)
아. 종교의 획일성과 지배력(쉽게 만족하는 정도)
자. 지도자의 혜안과 부패 용인의 정도
그리고 각 나라 별로 이 6개 또는 9개의 축으로 레이다 차트(Radar chart)를 그리고, 그 안의 넓이를 상호 비교하면 그 나라가 중진국까지의 잠재적 발전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중진국의 함정』을 논의할 때는 ‘지도자의 혜안과 부패 용인의 정도’ 가 『과학과 기술 능력』으로 대체 된다. 그 이유도 자세히 설명하겠다.
레이다 차트; 각 요소별로 직선을 긋고 최대 5점을 부과하고,
그 안의 면적을 상호 비교
(3) 부수되는 중요한 요인들
부수되는 중요한 요인들은 (2)번 항에서 지적한 만큼 중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중요한 사항들을 말한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사항들이 이 항목에 들어있을 수 있다.
인구 증가율, 생산성 인구의 숫자, 국민들 간의 부의 균분 정도 등이 그것이다. 이런 요소들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이런 요소 들을 『부수』되는 요소로 구분한 이유는 두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그것은 위에서 지적한 6가지 요소들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로봇의 발전, 교통수단의 발전, 인공지능(AI)의 발전 등이 그것이다. 특히 인구감소 자체는 큰 문제지만, 과거와 같은 문제점은 아니라고 본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출산율 감소는 분명히 큰 문제다. 하지만 교육 정도의 증가와 인당 생산성의 증가, 로봇의 발전, 인공지능(AI)의 발전 등이 상당히 많은 부분을 보완해 줄 것으로 본다. 특히 통일이 이루어지면 (그리 멀지 않을 장래라고 보는 경우가 많음) 인구감소 문제에도 큰 도움을 받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면 지금까지 이 글을 읽는 분들의 마음속에 당연히 떠오르는 질문이 있을 것이다. 왜 내가 『지도자의 리더쉽』을 뺏느냐에 대한 의문이다. 경제발전의 초기 단계에서 지도자의 리더쉽은 아마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바로 그 전형적인 예다.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쉽과 혜안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과 같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우리나라 경제 발전 5개년 계획은 사실 박정희 대통령이 세번째다. 이승만 대통령과 윤보선 대통령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경제발전계획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만큼 효과가 없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당시 경제 발전계획은 『수입상품의 대체』를 위한 경제발전이었다는 것이다.
인당 GDP가 불과 천불도 안되는 나라에서 수입대체를 하여 무슨 국가적 경제발전이 있겠는가? 박정희 대통령은 이것을 『수출입국, 수출보국』의 개념으로 바꾸었다. 즉 좁은 국내경제가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수출하여 국가 경제발전을 이룩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래서 신발, 가발의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다시 중화학공업으로 발전 단계를 착실히 진행시켰다. 이런 전략에 덧붙혀 우리 국민들의 우수한 두뇌, 열심한 노력, 잠에서 깨어난 기업가 정신 그리고 우수한 공무원들의 집착에 가까운 노력으로 우리나라는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바뀐 전 세계 유일한 나라가 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우리 정부가 끝까지 ‘정부주도 경제발전’을 고집하지 않고, 1996년 총 7차에 걸친 정부주도의 발전 실행을 끝으로 『민간』에게 그 바통을 넘긴 것이다. 이것은 정말 ‘신(神)의 한 수’라고 생각한다. 국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많은 국가들이 경제발전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내가 분석하기에 ① 수입대체 발전 전략의 채택 ② 지나친 1차산업위주의 발전 전략 ③ 리더쉽의 부재 ④ 부정부패 그리고 ⑤ 정부주도 경제발전을 끝까지 주장하는 데서 오는 것 같다.
이 중 ③④⑤는 특히 중요하며, 경제발전의 단계가 고도화할수록 ④와 ⑤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이런 각도에서 분석해 보면 중국과 러시아의 미래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밖에 경제발전을 시도하는 다른 국가들의 미래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중진국의 함정』은 이런 요인들 이외에 새로운 요인들이 등장함으로써, ① 개도국이 중진국이 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특히 ② 중진국이 선진국이 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짐작된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1)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사회의 등장
엉뚱하게‘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여기서 등장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 때문이다. 즉 기술의 발전으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계효용 체증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미래에는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는 사회가 아니다. 로봇의 발달, 인공지능(AI)의 발달, 교통통신의 발달 등은 ‘생산량이 증가할수록 원가가『지속적』으로 하강하는 사회’를 만들 것이다.
쉽게 말하면 수요가 아무리 증가하여도 기존 선진국들이 더욱 싼 값으로 상품을 제공할 수 있어, 개도국이 끼어들 『틈』이 없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즉 개도국들의 소량생산으로는 더욱 값싸게 대량생산 할 수 있는 선진국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개도국들은 영원히 ‘자원 공급국가’ 또는 ‘소비시장’으로서의 역할을 벗어나기 어렵게 될 것 같다.
(2) 선진국에 유리한 WTO의 체제와 WTO 조문의 선별적 적용
원래 WTO는 전 세계 국가들이 관세를 ① 7% 이하로 낮추고, ② 국가 간의 보이지 않는 무역장벽을 없애며, ③ R&D에 필요한 비용 등을 국가가 보조해 주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이 자국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시장을 석권하기 위해 만든 협정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미국의 이런 강압에 놀라 깨어난 다른 나라들이 배전의 노력을 함으로써, 미국 상품의 경쟁우위가 크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에게 경제적 이익이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 구체적인 예로 자동차나 철강, 가전제품 등의 판매량이 WTO 협정 이후에도 별로 늘지도 않았고, 품목에 따라서는 오히려 감소하게 되었다.
그러자 트럼프와 바이든은 ① 7% 관세가 아닌 20% 이상의 보복관세를 물렸고, 특히 ② 무역역조가 큰 나라에 대해서는 WTO와 FTA 규정 자체를 무시하며, 정치적인 압박을 가하여 무역역조를 해결하라고 강압하였다. 특히 최근에는 ③ IRA 법안 등을 통해 미국기업들에게 엄청난 보조금까지 주기 시작하였다.
트럼프의 “America First!”는 “America First!”가 아니라, “America Only!”로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의 이런 성향은 다른 선진국들에게도 퍼져 나갈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즉 이런 선진국들의 태도 변화는 후진국들 입장에서 다시 한번 선진 소비시장을 『닫아 버리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개도국들이 중진국 또는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틈』이 다시 한번 더 사라지게 되었다.
이것은 학자들 간에 크게 지적되지 않고 있지만, 나는 매우 중요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상품『복잡성의 증가』현상이란 ‘하나의 상품을 만드는데 매우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자동차가 전형적인 예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는 엔진, 트랜스미션 그리고 조향장치 등으로 구성된 ‘기계장치’였다. 그러나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등장하였다. 하이브리드 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배터리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하이브리드 자동차 원가의 40%가 배터리와 거기에 필요한 전자장치가 차지하게 되었다. 기계부품 원가 비중은 60%로 줄었다. 그러나 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전기자동차가 나오고, 자율주행 자동차가 생산되면서 전자장치가 자동차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넘게 되었다. 이제 기계장치 원가 비중은 40% 이하가 되었다.
그러면 자동차는 기계장치인가? 전자장치인가?
그런데 이런 추세는 자동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보관된 식품의 종류와 적당한 구매시기까지 알려주는 냉장고, 원격조정이 가능한 에어콘과 히터, 이제는 커피포트 조차도 원격조정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런 『종합적』인 기술을 개도국들이 모두 갖춘다거나, 기술 도둑질을 통해 거죽만 번드레하게 만든 국가들이 생산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중국 전기차가 세계 최대 판매량을 기록하였다고, 얼마 전 호들갑을 떠는 기사들을 보았었다. 그러나 중국의 해외 전기차 판매량을 생산량의 5%를 넘지 못한다. 쉽게 말해 내수용일 뿐이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중국정부의 전기차 보조금이 전면 중단된다고 한다. 중국 내 발표 자료를 보면 약 2,500개의 전기차 업체 중 상위 5~10개 업체 정도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한다.
쌓여진 중국 신형 전기차의 무덤
카시트의 비닐 커버도 벗겨지지 않은 채 버려진 중국 신형 전기차
이런 현상은 우격다짐으로 고속성장을 한 중국에서 그 역효과가 좀 더 크게 나타났을 뿐, 전 세계 모든 나라에 공통적인 현상이 될 것이다. 다시 한번 개도국 발전의 창(窓)이 닫히는 순간이다.
중국의 섣부른 세계 2분론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기존 자유무역질서를 확실하게 무너뜨렸다. 미국과 세계 패권을 나누어 가지자는 중국의 주장은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을 상기하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 없이도 세계 경제가 최소한의 수준에서 작동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로 하였다. 그래서 ① 중국제품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 ② 중국에 대한 자유세계의 투자금지 및 기존 투자금 회수 ③ 하이테크 기술의 제공 금지 ④ 전략적 미국자산에 대해서는 일체의 중국 부품 사용 배제 ⑤ 자유주의 진영의 중국무역 제한 조치 등을 시행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러시아에 대해서는 더욱 심하게 적용하였다. 러시아 경우에는 아얘 ‘해외자산 동결령’까지 내려 버렸다.
중국은 형식상으로 미국 다음의 G2 국가지만, 중국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① 미국 기업들의 투자와 ② 자유진영에에 대한 수출, 이 두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라다. 즉 한마디로 요약하면 중국은 자유진영 국가와의 『원활한 관계』의 바탕 위에 살아갈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맙게도, 정말 고맙게도 시진핑은 이런 사실을 간과하고,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다. “쌩큐 시진핑!!”이다. 혹자는 중국의 쇠락이 우리 경제에 큰 문제가 아니겠느냐고 걱정하는 분들도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대중무역은 분명히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중국이 자유진영에서 줄어드는 무역량을 우리가 차지하는 것이 훨씬 더 클 것이다. 너무 한 쪽만을 보지 말고(대중 무역의 감소), 전체적인 각도(세계 무역 시장)에서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 『과학과 기술력』
미래 ‘중진국 함정’에 새롭게 등장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과 기술력이다. 이것은 중진국 함정뿐만 모든 국가의 천년, 만년의 문제다.
과학은 “세상 만물이 작동하는 원리” 즉 기초과학을 뜻한다. 더 쉽게 말하면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기술은 설계 도면에 따라 그것을 『제품화, 상품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두가지가 있어야 우리는 먹고 살 수 있다. 이 중 하나만 있어도 안 되고, 둘 다 있어야 하며, 더욱이 그 능력이 뛰어나야만 한다.
중국이 이런 실력이 있다면, 미국이 아무리 중국을 막으려 해도 막을 수가 없다. 역으로 러시아가 아무리 노력해도 미국이나 자유진영을 이길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중국이 성실하게 자국상품을 개발하였다면 이런 기술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권 유지를 위해 너무 빨리 베끼거나 도둑질하여 상품을 만들었다. 전투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10만에서 15만 단계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도둑질을 하여도 이 단계 모두를 베낄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거죽은 멀쩡한데, 성능은 제대로가 아니다.
중국 전투기는 기총소사에도 떨어지고, J20 스텔스기는 덩치는 큰데, 엔진 힘이 약해 무장량이 형편없다. 최신 푸젠 항공모함은 바다에 떠있지 못하고 수리 도크에 머무르는 시간이 훨씬 더 길다. 소련의 최고급 사양 전투기는 불과 10대도 만들지 못했고, 최신형 T90 전차는, 브래들리 장갑차의 ‘기총소사’에도 폭발하였다.
그러나 이런 원리는 전 세계 모든 나라에 똑 같이 적용된다. 우리나라가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 수 있는『과학과 기술력』만 있다면, 설령 중국과의 수출이 줄고, 아무리 미국이 IRA 법안으로 자국 시장을 보호하여도 우리가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앞에서 1996년 제7차 경제개발계획을 끝으로 우리 정부가 ‘민간에게 경제발전의 책임’을 맡긴 것이 『신(神)의 한 수』라고 표현하였다. 정말 그렇다.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중국의 시진핑과 러시아의 푸틴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들이 자국경제를 얼마나 힘들게 하고 있는가? 그 잘 나가던 일본 경제를 자민당의 50년 집권이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는가?
우리는 여기서 ‘민간에게 경제발전의 책임’을 맡긴다는 것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다. 기업인들의『기업가 정신 (Entrepreneuriaship)』을 고취시킨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망하지 않기 위해서 또는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 끊임 없이 노력한다.
사회적 발전단계가 낮을 때는 국가 개입이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사회가 고도화 되고, 고려해야 할 요소가 급증하며, 상품 생산의 복잡성이 증가할 때 정부주도 경제발전은 비효율화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느 적정단계에서 민간주도로 경제발전의 주도권을 이양하는 것은 매우 적절한 조치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권력의 속성이 스스로 자기 권력을 포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정말 우리나라의 경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기업가 정신』의 고취가 결코 ‘그들이 원하는대로 하게 한다’는 것은 아니다. 기업가는 본질적으로 ①장기의 이익보다는 단기의 이익, ②국가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기 기업의 이익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국가를 이끌어 가는 정부는 그들의 행동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적절한 최소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행동이‘적절한 최소의 개입’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두 개의 가이드 라인은 있을 수 있다.
첫째;‘경쟁을 제한’하여 달라는 요구는 가능한 거절해야 한다.
기업입장에서 가장 편리한 것은 독점 또는 과점체제를 유지하는 것이다. 독점 또는 과점은 기업 간 경쟁을 제한하여 너무 손쉽게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 즉 힘들게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가격을 마음대로 인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기업은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할 수 있는 자금력과 통로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경쟁제한의 시도는 그들 입장에서는 강한 유혹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둘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상생 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기술패권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여러 이유에서 미래 세계 경제성장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서 각국은 자국의 경제 방어 노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곧바로 과학과 기술력의 『대외 이전』을 막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전형적인 예가 얼마 전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불화수소, 불화 폴리이미드 그리고 감광제의 수출금지였다. 일본의 극우파는 그들의 이런 조치로 우리의 반도체 산업은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러나 그 난관을 극복하는 데는 불과 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면 이 3개월 동안에 없던 기술을 개발하였을까? 아니다. 우리 중소기업들은 이미 그런 기술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반도체라는 극도의 예민한 상품을 제조하는데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국산품 사용을 꺼려했던 것이다. 만약 일찍부터 국내 중소기업과의『상생체제』를 갖추었다면 이런 소동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적절한 예는 KAI의 KF-21 전투기 개발이다. 지금 KF-21은 국제적으로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으며, 생산과 동시에 수출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품이 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초창기의 약속을 파기하고, AESA 레이더 기술 등을 제공하지 않았다. 레이다 기술, 즉 적기를 멀리서 볼 수 있는 눈(Eye)이 없는 전투기는 만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미국은 아마 이런 점을 노렸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LIG와 한화는 기술 능력이 있는 중소기업과 합작하여 너끈히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일부 주장은 국산 레이다가 크기, 무게 및 열(Heat) 발생량에서 오히려 더 우수하다는 말도 하고있다.
이 다섯 번째 항목은 그 중요성을 아무리 주장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1) 정부 R&D 예산의 지원
지금까지 길고 긴 설명을 통해 『과학과 기술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또 강조하였다.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또 어떠한 무역장벽이 생길지라도, 우리나라 상품이 경쟁력만 있다면 그것을 타고 넘어가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과학과 기술능력』의 제고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R&D 예산』이다. 그러나 상품의 복잡성이 증가하고, 상품이 고도화될수록 필요한 기술개발을 민간기업이 모두 감당하기에는 ①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② 실패 시의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때로는 기업의 흥망을 결정할 정도의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런 난관의 극복을 위해서는 정부 R&D 예산의 지원이 필요하다.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미래 우리나라의 흥망이 바로 『과학과 기술능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 하지만 현 정부에 한가지 조언을 한다면 『정부 R&D 예산지원』을 아끼지 말라는 것이다. 현 정부가 그런 노력을 기울였을 때, 장래 ‘윤석열 정부에 대한 평가는 매우 긍정적일 수밖에 없고, 두고두고 치적(治績)의 하나로 남을 것이다. 큰 노력을 할 필요도 없다. 『과학 대통령』으로 남고 싶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담화 중에 예산지원 증액에 대해 언급하면 저절로 잘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우주개발, 초전도체, 무기 개발, 양자 공학 등에 대한 예산지원은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 기술 도둑에 대한 최대의『징벌적 처벌』의 강화
지금 우리나라에서 그것의 중요성에 비해 중요도가 너무 약하게 인식되는 분야가 『해외 불법 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이다. 이것은 과학과 기술능력의 중요성만큼 동일하게 중요한 것이다.
전형적인 예가 최근에 밝혀진 KF-21 도면에 관한 기술 유출이다. 다행히 USB가 유출 전 회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거기에 담긴 기술은 인도네시아 기술자들이 방문 불가인 연구소에서 개발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것은 분명히 한국인 기술자에 의해 불법 복사된 것이다. 인도네시아에 그 기술이 유출된다고 하여 인도네시아가 전투기를 개발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그 기술은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우리나라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가 된다. 또 틀림없이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무기 시장에서도 우리 기술을 가지고 중국과 경쟁하게 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무기시장은 전투기 시장(50% 이상)이다. 우리는 지금 그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잘못하면 우리나라는 초음속 전투기 시장의 문을 두드려 보지도 못하고, 그만둘 위험한 상황이었다. 미국의 록히드 마틴이 우리에게 레이다 관련 기술을 제공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기술을 인도네시아에, 그것도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이 거의 확실한 나라에 불법으로 넘긴다는 것은 『을사오적』과 같은 중대범죄 행위다.
여기서 미국의 예를 들겠다. 『징벌적 처벌』은 영어로 ‘Punitive Damage’라고 한다. 이것은 ①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항(안보, 산업기밀 등)이나 ② 매우 비양심적인 행위에 대해서, 그것에 대한 정상 처벌 보다 ‘수십배 넘는’ 처벌을 가하는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겠다. 바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전투기에 해당되는 예이다. 미국 노스럽에 근무하는 ‘고와디아’라는 사람이 중국에 스텔스 기술 일부를 넘겼다. 그에 대한 처벌은 “재심의 가능성이 없는 32년의 징역형”이었다. 즉 감형이나, 보석의 가능성이 없이 무조건 32년을 감옥에서 지내야 한다는 엄청난 중형(重刑)이었다.
또한 원자탄 비밀을 소련에 넘긴 ‘로센버그’는 동조한 부인과 함께 사형에 처해졌다.
이러한『징벌적 처벌』은 전기한 바와 같이 ① 국가의 안보에 해당되는 경우와 ② 사회적 위치에 어울리지 않는 매우 비양심적인 행위에 대해서 내려지는 징벌이다.
우리나라가 발전하면 할수록, 우리나라에 대한 기술 도적질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의 그런 행위는 이미 너무 자주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의 빠른 대응, 즉 『산업 스파이법』의 강화는『매우 시급한』 분야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첫째; 지금까지의 세계화는 후퇴하고, 자국 시장을 보호하려는 경향(보호무역주의)는 점점 더 가속화되고, 특히 자유진영과 독재진영 간의 2분화는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둘째;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대(對) 중국 시장은 줄어들지라도, G2 중국 수출의 감소로 전 세계적 관점에서는 새로운 수출시장의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다.
셋째; 이러한 장벽을 넘는 유일무이한 방법은 우리나라의 과학과 기술 능력을 키우는 길밖에 없다.
넷째; 정부는 특히 현 정부는 ① 기업가 정신을 더욱 고취시키고, ② 점점 대형화되어 가는 R&D 예산을 적극 지원하ㅅ일까?고, ③ 불법 기술유출에 대해서는『징벌적 처벌』규정을 강화한 ‘산업 스파이법’을 신속하게 재정비하여야 한다.
다섯째; 그리고 현 정부가 『과학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 가까운 장래에도 매우 좋은 평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우주개발과 초전도체, 신무기 개발, 양자공학 분야에서의 예산지원은 더욱 필요 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