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영어교육, 어떻게 해야하는가?

; 미국 유학시절 유태인 지도교수로 부터 받은 충격적인 자식 언어교육

by 김상국

자식 영어 교육 어떻게 해야하는가?

경희대학교 교수 김상국


나는 언어학자가 아니다. 그러나 대학교수이기 때문에 자식 교육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대답하기 쉬운 질문인 경우에는 괜찮지만, 어떤 때는 난감할 때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자식 영어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교수님은 미국에서 교수까지 하셨으니 영어를 잘하실 것 아니예요.”라고 말하면 정말 할 말이 없어진다.

그때 나는 곧잘 이렇게 대답한다. “네. 저 영어 잘해요. 그런데 선생님 영어 실력이 초등학교 3학년이라면 저는 4학년쯤 되요.” 이 말은 절대 농담이 아니다. 사실이다. 나의 옛날 유학시절 얘기를 하면 누구나 내가 과장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리라고 본다.

옛날에는 비교적 늦게 유학을 갔었기 때문에 유학생들은 대부분 초등학생 자식이 있었다. 당연히 자식들 영어에 대한 교육은 커다란 관심 사항이었다. 사는 곳이 미국이고 또 아이들이 학교에 가야 하니 더욱 그랬었다.

그런데 이런 자식들 영어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자세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빠르게 영어를 익히기 위해 집에서도 가능한 영어를 쓰도록 하는 부모와, 별 의식 없이 그냥 편하게 생각하는 부모였다. 나도 어린 자식이 당시 둘이었기 때문에 큰 걱정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 유태인인 나의 지도교수와 의논하기로 하였다.

유태인들은 2천년 동안 유랑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많은 연구를 했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에서는 지도교수이지만 나이가 같아서 사석에서는 비교적 자유스럽게 얘기하는 편인 것도 이유였다. 그래서 “우리 학생 사회에서 영어교육에 대해 이런 두 부류의 부모가 있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질문하였다.

그러나 나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 『태도』에 나는 깜짝 놀랐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당황하였다. 평상시에 그렇게 친근하고 부드럽게 대하던 사람이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면서 “It is beyond a question.” 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즉 “너의 질문은 질문의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평상시와 다르게 아주 또박또박 나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였다.

그의 설명은 나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부모들에게도 관심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자세히 전달하겠다. 그의 결론은 간단하고 명확하였다.‘모국어를 최우선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아이들은 13~15세 때 까지는 6개의 언어를 모국어로 배울 수 있다. 여기서 모국어란 상대 언어를 들었을 때 마음속으로 그것을 자기 나라말로 번역하여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 그대로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 그런데 자기 나라 언어 즉 마더 텅(첫 번째 언어, 우리에게는 한국어, 유대인에게는 유대어)이 제대로 발달되어 있으면 다음 다른 나라 언어는 더욱 쉽게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이것이 중요하다. ”미스터 킴, 당신이 영어를 한국어처럼 할 수 있느냐? 당연히 아니다. “그럼 너는 네 자식들과 어떻게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겠느냐? 너의 지금까지 쌓아 온 지식과 지혜를 어떻게 자식들에게 전해 줄 수 있겠느냐?” 간단하지만 정말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다음 말은 더 필요가 없었고 더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 그 후 나는 자식들에게 집에서는, 최소한 아빠, 엄마가 있을 때는 우리말만을 쓰게 하였다. 그렇게 하니 어찌나 내 마음도 편하고 말하기도 편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한 일이었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성인인 나에게도 영어가 또다시 문제가 되었다. 과 교수 중 한분이 영구교수직을 받지 못해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당연히 그 과목들을 가르칠 사람이 필요하였지만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좋은 교수를 뽑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는 학과장으로부터 호출이 왔다. 호출의 이유는 그 교수가 떠났으니 그가 가르치는 과목을 내가 가르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 과에서 내가 가장 오래 조교를 했었기 때문에 그런 제안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조건도 매우 좋았다. 좁지만 혼자 쓰는 방도 주고, 무엇보다 월급여가 800불(조교)에서 2,500불(인스트럭터)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당시 기준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호조건이었다.

그러나 당장 “예쓰”라고 답할 수 없는 명백한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나의 영어 실력 때문이었다. 나는 언어 자질이 없어서인지 유학을 처음 간 해나 몇 년이 지나서나 영 진도가 없었다. 그러므로 학부와 대학원까지 모두 나의 책임 하에 가르친다는 것은 언감생신, 자신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한 주 말미를 좀 달라는 부탁을 하며 고민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고민할 사항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일주일 만에 영어가 나아질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내가 나에게 한 영어에 대한 심리적 변화를 설명하면 많은 분들에게 영어 고민으로부터 조금은 해방되리라 생각하고 말해 보겠다.

“나는 한국 사람이다. 미국인이 아니다. 너 우리말 잘하지 않느냐? 잘 한다. 그럼 역으로 네가 영어를 좀 못해도 그리 큰 문제 아니지 않을까? 만약 미국인이 좀 틀리지만 우리말을 떠듬떠듬 말하면 그때 너는 그 사람이 틀린 우리말을 한다고 비웃겠느냐? 아니면 그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겠느냐? 당연히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그럼 미국 학생들도 그렇지 않을까?

더욱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네 수업에 오는 이유가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서 오는 것인가? 아니면 전공에 대한 공부를 하러 오는 것인가? 당연히 전공을 공부하기 위해서 오는 것이지. 그럼 조금 틀린 영어로 말하더라도 네가 전공을 잘 가르치면 되지 않을까?” 나의 해답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교수가 되면 특전 중 하나가 학교 비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열심히, 정말로 열심히 강의록을 만들고 그것을 트랜스패런시로 화면에 띄우면서 강의하였다. 학생들에게는 킹코 카피샵에서 28불에 강의노트가 있으니 사서 공부하라고 하였다. 당시 한 장 카피에 5전이었으니 500장이 넘는 노트였다. 내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는 탑 몇 % 이내였다.

지금도 영어에 대한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우리말을 내가 못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영어를 내가 잘하지 못한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그러나 학자로서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지식이 빈약하거나, 논리가 부족하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외국 학회나 국가 일로 외국에 갔을 때 나는 틀린 영어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당하게 『정확한』 논리를 펼려고 노력한다. 모르면 반복해서 묻는다.

나도 영어를 잘 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보통 정도의 능력인 사람들에게 나이 들어(13~15살이 넘어) 영어를 배우고 그것을 유창하게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지금도 영어 회화를 배우는 것보다 그 상황에 맞는 정확한 논리와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말을 강조하는 다른 이유가 있다. 요즘 원어민 영어가 유행이고, 그 중에서 리얼ㅇㅇㅇ라는 클라스에서 인상 좋은 아저씨가 나와서 “한국말을 그대로 영어로 바꾸는 것은 전혀 도움이 안되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맞는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리랑 TV 아나운서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면 그 영어교사의 말은 우리를 오히려 더 영어 바보로 만들뿐이다.

예를 들어보자. ‘엎지면 코 닿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을 영어로는 ‘돌을 던지면 닿는 거리다.’라고 말한다. 언제 우리가 그 수많은 그들의 표현을 그들의 표현대로 다 알겠는가? 턱도 없다. 아마 그렇게 영어를 하려고 하면 외국인과 말할 때마다 ‘영어로는 이런 경우 어떻게 표현하나?’ 라는 생각 때문에 더더욱 말문이 막힐 뿐이다.

그냥 “여기서 매우 가까워, Very very close from here.”라고 하면 된다. 영어식 언어를 배우는 것도 좋다. 하지만 오히려 단어 하나를 더 외우자. School이라는 단어를 알면 학교를 찾고 싶을 때 “School”하며 손발짓 하면 된다. 그러나 School 이라는 단어를 모르면 “왜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곳 있잖아요?”라고 표현하겠는가? 말도 안되는 얘기다.

우리나라 해외여행 소개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한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안내자로 나온 예쁜 여성들이 여행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옷을 입고, 기껏 한다는 질문이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얼마 동안 여행하셨어요? 와우!” 그것이 영어 회화의 대부분이다. 우리가 여행을 가는 것은 그 도시의 역사와 지리 또는 거기에서 있었던 사람들과 사건들을 보러 가는 것이다. “와 예쁘다. 멋있다. 어느 나라에서 오셨어요?”라는 똑 같은 질문을 하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 여행하는 것이 아니다.

서툰 영어일지라도 거기에 있었던 역사와 왜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가? 그곳 사람들의 태도, 역사관 등을 알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다.

결론을 말하겠다. 자식들 영어교육 특히 영어 조기교육이 필요 없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글을 큰 소리로 반복해서 읽게해라. 외우면 더 좋다. 그러나 그 보다는 우리말을 잘하게 하고, 우리 동화책을 많이 읽히면서 영어책을 읽히는 것이 좋겠다. 동시에 영어를 강조하지 말고, 특히 남 앞에서 “우리 애는 영어를 잘해요.”라는 턱없는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나처럼 영어에 자신이 없는 성인들에게는 ‘얼굴에 약간 철판을 깔고, 틀린 영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해외여행 등을 간다면 가기 전에 내가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할 유적들이 무엇이고, 그것이 왜 중요한지도 조금 공부하고 가면 어떨까 한다. “멋있다. 참 좋다. 와우!”라고 감탄사만 연발하는 여행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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