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의 세계로

by Rr

너는 보통 어떻게 출퇴근 해? 차 몰고 다녀?

응, 나는 요즘은 주로 택시로 출퇴근을 해.

이번에 발령받은 곳, 집에서 멀지 않아? 얼마나 나와?

음, 편도 이만오천원 정도?

그런데 왜 차를 안 사?

나 면허가 없는걸.

아...


최근 1년 동안 이런 대화를 적어도 백 번은 나누고 나니, 운전을 못하는 게 부끄럽기도 해서 결국 면허를 따기로 마음먹었다. "수능 끝난 열아홉 겨울에 면허를 안 딴 사람은 ‘올해는 면허 따고 차 사야지.’라는 말을 매년 반복한다."는 말이 있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왜 면허 학원에 등록하러 가는 길은 이렇게 멀게만 느껴질까.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나는 면허 학원에 가지 않았다.


무더위가 조금 가신 어느 날, 그래도 혼자 자유롭게 놀러 다니려면 차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드디어 운전면허 학원에 전화를 걸고 방문했다.

“자, 일단 이번 주말에 학원에 나와서 학과교육 세 시간을 들으면 되고, 그다음 주에 필기시험 보시고 합격증 가져오시면 됩니다. 합격하셨다는 가정 하에 기능교육 스케줄을 잡을게요. 기능교육은 네 시간, 두 시간씩 나눠 들으면 되고요. 이후에는 기능시험에 합격하면 도로주행 교육 스케줄을 잡아줄게요. 시간은 주말만? 아니면 평일도 가능하신가?”

속사포처럼 말을 이어가는 상담 선생님은 프로페셔널한 태도로 절차를 설명했다. 부지런히 학원에 나온다면 한 달이면 운전면허를 딸 수 있다는 말에, 왠지 모르게 의지가 불타올랐다.


이주 뒤로 기능 교육을 예약하고 필기시험 날짜를 고민하며, 휴대폰 어플로 필기시험 문제와 답을 외우던 어느 날, 나는 늦잠을 자버렸다. 정식 출근 시간이 9시인데 8시에 일어난 것이다. 세수도 못 하고 나가더라도 9시 출근은 간당간당해 보였다. '이게 기회다'라는 생각에 팀장님께 전화를 걸어, 몸이 안 좋아 반반차를 써서 병원에 들렀다가 출근하겠다는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면허 시험장으로 향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보았던 후기에 따르면, 면허 시험을 접수하고 시험시간을 기다리는 데 한 시간 가까이 걸린다 했지만, 내가 갔을 때는 운이 좋았다. 시험장에 도착하자마자 접수하고 바로 시험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문제를 푸는 데는 약 15분 정도 걸렸고, 결과는 10초도 되지 않아 나왔다. 합격이었다. 한시름 놓았다.


그리고 대망의 기능 수업 첫날. 강사님은 차를 몰고 학원 위쪽 운동장 같은 곳으로 올라가시더니, 내게 운전대를 넘기셨다.

“자, 이제 시동을 걸어볼 건데, 시동은 차 키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됩니다. 해보세요. 그럼 깜빡이를 켜볼까요. 왼쪽에 있는 저 막대기를 왼쪽으로 넘기면 왼쪽 깜빡이가 들어오고, 오른쪽으로 넘기면 오른쪽 깜빡이가 들어옵니다.”

어머, 이건 너무나 쉽다.

“그럼 이제 주차 브레이크를 해제하고 기어를 드라이브에 놓고 쭉 갑시다.”

네? 제가요? 벌써요? 운전을요?

정말 말 그대로 쭉- 가는 것이었는데 첫 경험은 왜 이리 무섭던지. 생각해보면 그 운동장에서의 자동차 속도는 사람이 걷는 속도 정도 였으려나. 여차저차 기능시험까지 짧은 시간 안에 클리어한 뒤, 바쁘다는 핑계로 한달 정도 학원에 나가지 않았다. 더 무서운 도로주행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도로주행 첫날, 강사님은 차를 학원 밖으로 몰고 나갔다. "이 동네는 차가 많아서 어려우니까, 일단 과천 쪽까지 가서 운전 연습할 거예요." 10분 정도 지나, 한적해진 곳에 차를 세우시고는 운전대를 내게 넘기셨다. "자, 일단 좌깜빡이를 켜고 도로로 나가 봅시다. 쭉 직진, 속도가 너무 느리니까 엑셀을 살짝 밟아 봐요. 시속 40km 나올 때까지, 잘했어요. 자, 이제 유턴을 해 볼게요. 여기서 좌깜빡이 켜고, 엑셀에서 발을 떼고 핸들을 끝까지 돌리세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다시 사당역 인근 학원으로 돌아갈 시간. 과천에서 사당 쪽으로 가려니 어마무시한 차의 행렬이 있었다. 학원 운동장에서 연습하던 대로 브레이크만 밟으며 겨우 학원에 도착했다. 기진맥진한 채로 역 근처 투썸에 가서 케이크로 집에 갈 에너지를 충전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


여차저차 6시간의 수업이 끝나고, 드디어 도로주행 시험을 치를 날이 왔다. 차를 몰고 가는데, 평소의 강사님은 옆에서 "여기서 깜빡이를 켜라", "여기서 유턴해서 삼차선으로 들어가라", "여기선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꿔라" 등등 계속 말씀해 주셨는데, 이번엔 그런 말이 없으니 운전대에 잡은 손에 땀이 났다. 잘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강사님이 말을 걸어왔다. "음, 70점까지가 합격인데 아직 반 밖에 안 왔는데 지금 67점이에요. 학원에서 유튜브 찍은 거 있으니까 그거 보고 다시 오세요."

시험을 마친 후, 다음번 수험생의 도로주행을 참관하며, "다음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시험을 치러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다음 일주일 동안 평일 퇴근길마다 학원 유튜브를 보고, 네이버에 ‘사당 운전면허 도로주행 후기’ 같은 걸 검색하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도로주행 시험 코스는 A, B, C, D 코스가 랜덤으로 나온다고 했는데, 가장 쉬운 코스는 유턴 한 번만 하면 되는 D코스였다. 네이버 블로그를 보니 시험 코스를 선택하는 랜덤 창에서 3초를 기다리고 결과 버튼을 누르면 D코스가 나온다고 했다.

토요일 아침, 다시 학원으로 향했다. 시험 코스 선택 창에서 3초를 기다리고 버튼을 눌렀는데, 결과는 C코스. 시험 감독관님께 “아, 블로그 보니까 3초 기다리고 누르면 D코스 나온다던데, 왜 C코스에요?”라고 농담식으로 물어보니, 감독관님은 “응, 내가 보니까 버튼을 2초만에 누르는 거 같더라구. 1초만 더 기다렸다가 눌렀어야지.”라며 응수 하셨다. 떨리는 마음을 감추며 다시 시험을 치렀다.

아무래도 백 점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시험을 종료했는데, 결과는 76점이었다. (나는 몰랐지만) 중앙 차선을 한 번 밟았고, (나는 몰랐지만) 우회전 후 3차선으로 갔어야 했으나 2차선으로 갔다고 했다. 어쨌든 대망의 합격. 그 길로 사진관에 들러 운전면허증에 넣을 사진을 찍고, 룰루랄라 행복한 주말을 보냈다.


그 룰루랄라 행복한 주말 중 하루는, 친구랑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BMW, 미니 등등 발길 닿는 대로 많은 자동차 매장을 돌아다녔다. 원래 내 위시리스트 첫 번째는 귀여운 녹색 미니쿠퍼였는데, 친구가 “어차피 운전자인 너가 주로 보는 건 차의 외관이 아니라 내관이야. 차에 앉아보면 마음이 바뀔걸?”이라는 말처럼, 정말 앉아보니 미니쿠퍼는 너무 작은 느낌이었다. 직전에 앉아본 차가 비교적 큰 BMW X5였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리고 이전까지 내겐 아저씨차 같은 이미지였던 제네시스는 앉아보니 고급스럽고 예뻤다. 어떤 차를 살지 행복한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맞춰 낸 휴가 덕분에, 발급일자가 2024년 12월 23일인 운전면허증이 짜잔하고 지갑 속에 들어왔다. 그 기세를 몰아 시내연수도 바로 등록했는데, 대학생들 방학 성수기라 그런지 주말 연수는 이주 뒤가 가장 빠른 일정이란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얼른 시내 연수도 듣고 차도 골라서 드라이버가 되고 싶은 마음에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이제 막 운전의 세계에 발을 들였는데, 내 자신이 점점 더 성장하는 게 느껴져서 너무 신난다. 이렇게 난 올해 한층 더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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