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의 세계

공부는 즐거워(?)

by Rr

한때의 나는 꽤 총명했고, 반짝였다. 그리고 그 반짝임을 모조리 자격증에 쏟아붓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체 왜 그랬을까 싶지만.


자격증을 따면 공부도 되고, 회사에서 용돈도 준다더라. 그 말 한마디에 나는 꽤 진지해졌다. 일이 년 사이, 지금 생각해도 어마어마할 정도로 많은 자격증을 땄다. 아직까지도 회사에서 내 자격증 개수는 상위권이고, 그래서인지 회사 친구들이 종종 내게 자격증 상담을 해온다.


“이거 따볼까?”

“시간 얼마나 써?”

“진짜 도움이 돼?”


가볍게 딴 것들로는 CDCS, CSDG, 외환전문역 1·2종, 자산관리사. 조금 무겁고, 돈과 시간을 꽤 투자했던 건 AICPA. 이름을 줄줄 읊다 보면 스스로도 웃음이 난다. 저걸 다 왜 했을까 싶어서.


오늘도 후배 Y가 AICPA를 준비해볼까 고민 중이라며 내게 물었다. “언니는 얼마나 공부했어?”


퇴근하고 여섯 달 정도 공부해서 시험을 보고, 그 뒤로는 일 년쯤 아예 공부를 안 하고 놀다가, 다시 여섯 달쯤 공부해서 나머지 시험을 봤던 것 같다. 정확한 순서나 기간은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애써 얻은 기억일수록 또렷이 남아 있지는 않다.


내가 시험을 치를 당시엔 한 과목을 빼고는 거의 다 객관식이었다. 문제집을 열심히 풀면—베커. 그 이름은 아직 기억난다—어떻게든 답이 보이는 시험들이었다.

경영학 주관식도 회사 생활에서 쌓인 경험과 경영학과 졸업생으로서의 기초 지식으로 무난히 풀 수 있는 수준이었던 것 같고. 그땐 대학 졸업한 지도 얼마 안 됐고, 머리도 지금보다 말랑했다. 경영학 지식도 아직 몸에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지금 다시 하라면 솔직히 자신 없다. 시험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때만큼 절실하지도, 한 방향으로 몰입할 에너지도 없어서다.


돌이켜보면, 나는 자격증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증명’이 필요했던 것 같다. 자격증 따서 받은 용돈으로 샀던 샤넬 파우치와 구찌 가방도 물론 좋았고. 회사에서, 조직 안에서,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나는 성실하다고, 나는 계속 배우는 사람이라고, 나는 이 자리에 어울린다고.


자격증은 그걸 가장 빠르고 명확하게 보여주는 방법이었다. 합격과 불합격, 점수와 인증서. 애매함 없이 나를 설명해주는 것들.


이제는 안다. 그 시절의 나는 반짝이기도 했지만, 반짝이려고 애썼기에 더 반짝였단걸.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후배 Y야, AICPA 같은 시험을 보지 않더라도, 내가 아는 너의 업무능력과 성격은 이미 충분히 반짝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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