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방향으로 가는 날

운전은 어려워

by Rr

인생에는 선택의 기로가 많다. 아침에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실지 아이스 카페라떼를 마실지, 저녁에 와인을 따를지 위스키를 마실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지. 그리고 왼쪽 차선과 오른쪽 차선.


오늘 나는 정안IC에서 하이패스를 통과한 뒤, 음악을 어떻게 틀지 잠시 고민하다가 왼쪽 차선에 있던 차를 그대로 몰고 갔다. 네비게이션이 오른쪽 차선을 이용하라 말했을 때는 이미 방향을 바꾸기엔 늦은 순간이었다.


사실은 들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깜빡이를 켜고, 누군가의 친절에 기대서 조금 무리했다면.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무리하지 않는 선택이 나에게는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때 눈에 들어온 “광주방향”이라는 표지판의 글자가 유난히 또렷했다. 나는 오늘 서울에서 커피 약속이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두 시간쯤 여유를 두고 출발한 게 다행이었을까. 초보운전에게 길을 돌아간다는 건 드문 일이 아니지만 서울로 가다 광주라니.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도시의 이름이 갑자기 현재가 되는 순간은 조금 낯설었다.


그렇게 20킬로미터가량 달리자 출구가 나타났다. 공주 톨게이트. 다행히 광주는 아니었고, 나는 공주에서 멈출 수 있었다.


공주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회전교차로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쓸데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오늘 약속만 없었으면 이건 공주 여행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동학사랑 미륵사지가 공주였던가 부여였던가. 칼국수 한 그릇 정도는 충분히 허락된 우회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흘려보내고 이번엔 서울 방향으로 제대로 들어섰다.


양재 근방에서 몇 번이나 멈췄다 다시 움직이며, 나는 다행히 약속 한 시간을 남기고 집에 도착했다. 차를 두고 카페로 향하는 길에서 또 한 번 생각한다.


인생도 아마 비슷할 거라고. 언제나 내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지만, 길을 잘못 들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틀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 여유가 있다면 잠시 머물러도 되고, 그럴 수 없다면 다시 방향을 잡아 돌아오면 된다는 것.




+) 이번 여행은 엄빠에 조카도 만나고, 영덕대게에 갈비찜에 온갖것을 먹고 포동포동해지고, 성심당에서 빵도 사고(더욱더 포동포동해질 예정이고!) 부모님댁 근처 사는 옛친구와 커피도 마시고, 24시간이 모자라던 여행. 업그레이드 되었을 운전실력처럼 내 인생에 대한 생각도 업그레이드 되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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