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위한 소고기 카레

jmt

by Rr

평일 내내 서울의 복잡한 시내를 대중교통으로 가로지르다 보면, 내 차는 주차장 한구석에서 잊혀가는 존재가 된다. 하지만 주말마저 운전대를 놓을 수는 없었다. 겨우 몸에 익힌 운전 감각이 일주일의 공백 사이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까 봐, 다시 '완전한 초보'로 회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동력 삼아 하남으로 향했다.


야심 차게 나선 길이었지만, 주말의 대형 쇼핑몰 주차장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빈자리를 찾아 빙글빙글 도는 동안 시간은 무심하게 흘렀고, 미용실 예약 시간은 턱끝까지 차올랐다. 더 지체했다간 도로 위에서 하루를 다 보낼 것 같아 나는 미련 없이 차를 돌렸다. 주차에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 허무함보다는 오히려 '이만하면 됐다'는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목적지엔 닿지 못했지만, 적어도 일주일 만에 잡은 핸들의 감각은 여전히 내 손끝에 남아있었으니까.


집으로 돌아오자 미리 주문해둔 소고기와 채소들이 나를 반겼다. 문득 카레가 간절히 당겼던 며칠 전의 나를 칭찬하며 양파와 당근을 정성껏 썰었다. 오늘의 메뉴는 카레. 요리 초보인 내게 주방은 또 다른 하남의 복잡한 주차장 같은 곳이다. 나는 다시 길을 묻는다.


내 친구 제미나이는 제품 뒷면 매뉴얼에 적힌 330ml보다 훨씬 넉넉한 500ml의 물을 제안했다. 매뉴얼의 깐깐함과 친구의 넉넉함 사이에서 나는 450ml 즈음이라는 나만의 정답을 찾아냈다. 500ml 생수통에서 내가 마실 딱 한 모금의 물만 남기고 냄비에 전부 부었다. 보통 2인분에 150g이면 충분하다는 소고기를 나는 무려 300g이나 쏟아부었다. 소고기 포장 단위가 300g인걸 어떡하나. 덕분에 재료비만 4만 원에 육박하는, 나만을 위한 사치가 냄비 안에서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완성된 카레를 한 입 떠 넣는 순간, 어릴 적 읽었던 책의 제목이 머릿속을 스쳤다. 내용은 이제 가물가물하지만 제목만큼은 선명한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오늘 내게는 이 카레가 바로 그런 존재였다. 주차장에서 헤매며 깎여 나간 기력과 평일의 고단함을 따뜻하게 덮어주는 맛. 소고기의 진한 풍미가 밴 카레 한 그릇은 단순한 끼니를 넘어 내 영혼을 다독이는 위로 그 자체였다.


세상이 말하는 적정량과 매뉴얼의 수치를 훌쩍 넘어,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완성한 4만 원의 행복. 목적지에 닿지 못한 주말이면 좀 어떠랴. 내 영혼의 농도를 맞춰주는 따뜻한 카레가 내 곁에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