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의 도파민과 운동의 아드레날린

살아있기

by Rr

사무실 시계가 밤 9시를 훌쩍 넘긴다. 이번에 새로 맡은 업무는 해야하는 일이라 하기도 하지만, 재미있어서 손을 뗄 수가 없다. 일하면서 ‘재미’라는 감정을 느껴본 게 대체 얼마 만일까. 오늘은 드디어 회장님 명의로 나가는 중요한 문서까지 최종 발송을 마쳤다. 문장 하나하나의 행간에 내 고민이 촘촘히 스며 있다는 사실이 묘한 성취감을 준다.


이 ‘일의 재미’라는 놈은 참 영리해서, 운동을 가야 한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게 만든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6시를 1분만 넘겨도 야근이라며 찡얼거리던 나였는데 말이다.


오늘, 드디어 보통 사람들의 퇴근 시간에 맞춰 사무실을 나섰다. 6시를 30분이나 넘겼지만 지난 2주에 비하면 꽤 훌륭하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퇴근길, 오랜만에 크로스핏 박스 문을 열었다. 코끝을 찌르는 익숙한 땀 냄새, 귀를 때리는 바벨이 부딪히는 소리. 그 소음 한가운데 서 있는 것만으로도 사무실과는 전혀 다른 결의 해방감이 밀려온다.


오늘의 와드(WOD)는 데드리프트와 월워크(Wall Walk). 바닥에 놓인 묵직한 바벨을 움켜쥔다. 들어 올리는 순간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잡념이 증발하고 오직 무겁다는 본능만 남는다. 오늘은 오랜만에 하는 운동이라 데드리프트 무게를 내 몸무게 정도로만 했는데도 무겁더라.


이어지는 월워크. 벽을 타고 발을 올릴 때마다 시야가 뒤집힌다. 중력이 어깨를 짓누르고 피가 머리로 쏠리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모니터 앞에서 머리를 싸매던 고통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통증. 아주 정직하고 날것 그대로의 아픔이다. 거꾸로 서서 헉헉대며 몰아쉬는 숨소리 속에서 나는 비로소 생각한다.


“힝 힘두러!!!!”

하지만 그 비명 끝에서 역설적으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몸과 마음이 한결 가볍다. 야근으로 얻는 성취감과 바벨을 들며 느끼는 생존의 감각. 이 두 개의 평행선 사이에서 나는 아직 정확히 어떤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여전히 어느 한쪽으로도 핸들을 꺾지 못한 채 양갈래 길 위에 서 있다.


다행히 내일부터는 팀장님이 휴가다. 아마 며칠간은 살벌한 야근의 굴레에서 벗어나 다시 박스로 달려올 수 있을 것이다. 내일도 숨이 차오르는 이 기분 좋은 고통을 느낄 수 있겠지. 그 생각에 벌써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업무의 재미와 내 시간의 지분, 그 사이의 정답지는 여전히 빈칸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지금은 그저 이 두 가지 ‘살아 있음’을 기쁘게 통과해 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