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지 말으렴. 스스로에게, 그리고 우리 서로에게.
'야~이 xx. Xxx야'
쉬는 시간 어떤 학생이 아주 큰 소리로 우렁차게 외치는 소리가 교무실을 뒤흔들었습니다. 교무실 옆 복도에서 들려오는 소리였고, 순간 20명 가까이의 교사들 모두에게 정적이 찾아왔습니다.
모두가 그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후 아무도 복도로 나가서 그런 욕을 한 아이를 불러 말을 하거나, 훈계를 하거나
잘못을 이야기해주는 교사가 없습니다.
...
다들 알기 때문이겠지요.
‘욕’ 하지 말라고 말을 해본 들 그것이 잘못이라고 혼을 내본 들
변하는 것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일반학교뿐 아니라, 대안학교도 다를 바 없이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작은 학교, 소수의 인원임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듯 욕하는 아이들은 있었습니다.
저는 교육의 변화를 꿈꾸는 대안학교에서라면 이런 말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아이들에게 분명하고 단호한 어투로 ‘욕’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기회가 될때마다 말했습니다.
그래요..그저 잔소리였겠지요.
어느 날 되려 아이들은 반발하고, 반문합니다.
‘다른 애들 다 욕한다고, 욕 안 하는 애들이 어디 있냐고? 우리들 문화인데 왜 그러냐고!!’
우리들 문화..
저는 그저 그들이 말하는 꼰대일 뿐이었던 걸까요.
순간 할 말이 없었기에, 저 또한 침묵했습니다.
그 후, 제 말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그저 지나가버리는 말들이 되었습니다.
교사로서 무기력해지는 순간들.
마음이 헛헛해지는 순간들.
그저 지독한 짝사랑 마냥, 나로 인해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아이들로 인해
가슴 아프던 시간들.
그런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산청간디학교에서의 첫 해.
분명 아이들은 그 나이에 맞게 순수하고 착하며 또한 예쁘기 그지없었지만,
초등학교 시절 오래도록 깊게 가져온 아이들의 언어습관은
이전의 다른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았고,
교사들이 없는 곳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잘 알지도 못하는 욕과 비속어들을
쓰면서 장난이라며, 그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도 그래, 뭐 다들 그러니까 간디의 아이들도 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어른들 앞에서는 하지 않으니까,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 아이들의 언어습관은 알게 모르게
점점 심해져만 가고 있었나 봅니다.
어느 날 누군가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불편해요' '너무 심하게 장난쳐요' '상처가 되는 것 같아요'
몇몇 학생들을 시작으로 간디 공동체의 모두가 함께 나서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의 욕, 비속어, 장난 등, 누군가에게 사소한 상처 하나부터 불편감을 주었던 것, 큰 아픔을 주었던 모든 것까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것이라 다들 이야기합니다.
처음에 아이들은 쭈뼛쭈뼛거렸지만,
결국은 작은 사소한 것 하나부터 크고 중요한 것까지,
모든 것을 이야기 하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은 글로 쓰기도 하면서 말이죠.
간디학교 교사들은 퇴근도 마다하고 누군가는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이 사안에 대해서
그 어떤 사안보다 중요하고 심각하게 이야기 나누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알게 됩니다. 욕이 어떤 뜻인지, 왜 좋지 않은 것인지를,
상처가 되는 말임을, 가벼운 마음으로 써서는 안되는 말임을
왜 쓰지 않아야 되는 것인지를 조금씩 알게 됩니다.
긴급으로 열린 식구총회. 모두가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한 명의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이야기하면서 뉘우치는 모습을 보입니다.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며 그저 습관처럼 내뱉은 말이 참으로 부끄럽다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아이도 사소한 장난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미안하다 합니다.
한명한명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아이들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 사소함이 담긴 순간이. 이토록 깊은 울림을 주는 시간으로 변합니다.
몇시간, 아니 일주일이 다가도록, 그리고 그러고도 계속계속 우리는 욕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아마 이런 시간을 함께 걸어본자에게만 이것이 길고도 깊게 느껴지는 것이겠지요.
이런 길을 걸어보지 않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의미없는 변주곡 그뿐,
길지도 짧지도 않은 쓸모없이 버려지는 시간들이라며 오버하지 말라 하겠지요. 당연히 그러겠지요.
저는 이 오버스런 시간들 속에서 아이들이 변해가는 순간을 느낍니다.
스스로의 잘못에 책임을 지겠다 합니다.
그동안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겠다 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부끄럽다 합니다.
아이들의 순간이 빛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이런 시간이 있다고 해서 단번에 모든 아이들이 바뀔 것이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다름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런 순간을, 이런 시간을 경험한 아이들의 삶은
분명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과는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어른들은 잘못이라고 이야기하지도 않는,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
이런 이야기들이 제게는 너무 소중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응원합니다.
‘욕하지 말으렴, 그리고 함께 노력하자. 너희들은 잘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