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피 흘리면서 119를 기다린 적이 있습니다. 갑자기 제 인생이 영화필름처럼 아주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죽기 전에 자신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는데 이건가 싶으면서 너무 슬펐습니다.
이 아이들을 두고 도저히 죽을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데 해주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어떻게 이렇게 떠날 수 있나 싶어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그렇게 뜨거운 눈물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종교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제발 살려달라고. 제발 이 아이들의 엄마로 좀 더 살게 해 달고 애걸했습니다. 119가 오기까지 15분에서 20분 정도 걸렸던 것 같은데 그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요.
저는 이 사건이 나기 전까지 구두쇠였습니다. 남에게 받기를 좋아하고 베풀기에 인색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후하지만 저 자신을 위한 돈도 아까워하고 남에게 밥 사는 것도 꺼려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물건을 살 때도 언제나 더 싼 게 없나, 비교대상이 있다면 무조건 더 싼 쪽을 택했었습니다.
그런데 죽음의 문턱에 있어보니 통장잔고가 떠올랐습니다. 그다지 많지는 않은 돈이었지만 그 돈 편히 써보고나 죽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영화 “라스트 홀리데이”가 생각이 났습니다. 시한부 인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여주인공이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죽을 줄 알았다면 하고 싶었던 걸 해보고 죽을 걸 하는 아쉬움에 또 눈물이 났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그런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죠.
6시간의 대수술과 입원생활 끝에 저는 살아났습니다.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또 다른 몇 달이 걸렸지만 다행히 잘 이겨냈습니다.
좋은 엄마의 기준도 어디까지나 제 기준입니다만….
맨 먼저 아이들에게 정성스러운 음식을 많이 만들어주기로 했습니다. 좋은 요리책, 인터넷에 있는 훌륭한 레시피, 유튜브까지 정말 좋은 정보가 넘쳐났습니다.
그리고 시간 되는 대로 아이들과 맛집을 다니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쪼개서 아이들과 여행을 많이 다니기로 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굉장한 존재감을 나타냈던 나의 통장잔고를 보면서 예산계획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그렇다면 균형감 있게 계획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돈, 나를 위한 돈, 미래를 위한 돈으로 나눠보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만 돈을 쓰는 것도 안되고, 나를 위해서만도 안되고, 미래를 위해서 안 쓰기만 하는 그런 삶 이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 생일에 아무도 나에게 선물을 하지 않는다고 슬퍼하기보다는 내가 나 자신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습니다. 좀 값나가는 선물로요. 명품까지 살 형편은 되지 않지만 대신 뭔가를 배우는 데는 좀 과감히 썼습니다. 예전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큰돈을요. 남들이 볼 때는 그다지 큰돈이 아닐 수도 있지만 예전의 나를 기준으로 할 때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성취감이 그리 행복할 수가 없더라고요.
사람들에게 밥도 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먼저 맛집을 검색해서 가자고도 하고 “흑백요리사” 도장 깨기도 해 보자고 했습니다. 베푸는 삶이 이리도 즐거운 지 미처 몰랐습니다. 예전의 모습을 모르는 지금의 지인들은 제가 원래 그런 줄 아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오히려 예전 친구들은 지금의 내 모습이 낯설 수 있겠네요.
물건을 살 때 가격이 아니라 질을 택해보세요. 요거 꽤 만족스럽습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간다는 건 분명 무서운 경험입니다. 하지만 그 경험 덕에 저는 인생을 더더욱 행복하게 살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생일이 아니더라도, 오늘 아무 일도 아니더라도, 오늘도 열심히 사는 나 자신에게 작은 선물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요거 기분 참 좋습니다.
그리고 가끔의 사치가 참 재미나더라구요. 그래서 말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