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선생
이 글은 현모양처 첫 에세이.
가제 '나를 지혜롭게 만든 00가지 순간들'에 들어갈 글입니다.
나는 삼수 끝에 연극 영화과에 합격했다.
'가천대학교'
나도 처음 들어보는 학교였다.
생긴 지 2년밖에 되지 않았던 학교였다. 하지만 떠오르는 학교였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순재 교수님이 석좌교수로 오셨기 때문이다.
'이순재 선생님은 바쁘신데, 학생들 가르쳐 주실 시간이 있을까?'
처음엔 의문이 들었다. 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입학하는 날, TV에서만 보던 이순재 선생님이 내 앞에 계셨다.
얼떨떨했다. '진짜구나'
선생님은 환한 미소로 학생들을 반겨주셨다.
TV에서 뵀던 것보다 더 다정하셨다.
그리고 선배들 공연 지도를 열정적으로 해주는 모습을 보았다.
"이순재 선생님이 우리 교수님이라니..."
나는 그렇게 이순재 선생님의 제자가 되었다.
4년간 선생님의 지도 아래 나는 연기에 대해 배워나갔다.
이순재 선생님에게 가장 크게 배운 건, '연기를 대하는 태도'였다.
선생님은 바쁜 스케줄에도 학생들 공연 지도를 빼먹으시지 않았다.
더 놀라운 건, 학생들보다 1시간 일찍 와서 대본을 보고 계셨다.
20대 학생들보다 더 열정적이었다.
항상 공부하고 더 나은 것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셨다.
학생들의 부족한 점을 관심 있게 살피고, 하나씩 알려주셨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연기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선생님의 그런 모습에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고, 채찍질하게 되었다.
왜 선생님이 배우들 중 가장 연장자로서 오랫동안 활동하실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감사하게도 프로 첫 연극 데뷔를 이순재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었다.
이순재 선생님과 한 무대에 설 수 있는 것은 영광이다.
서고 싶어도 설 수 없는 사람이 많기에.
하지만 부담이 엄청나게 컸다.
첫 프로 데뷔 무대를 우리나라에서 연기 잘한다는 선생님들과 함께 한다는 게.
선생님이 나오는 공연에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매일 나를 짓눌렀다.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 많은 고민을 하고 노력을 했다. 짧은 시간 확 늘 수 있었던 것 같다.
선생님과 무대 위에서 호흡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 순간 배울 게 너무 많았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 선생님은 혼자서 대사를 계속 중얼거리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연습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직접 말로 하지 않았지만, 제자인 내가 잘 해내기를 바라셨을 거다.
유명한 배우 선생님들이 오면 '본인 제자'라고 말씀해 주시고, 잘한다고 칭찬해 주셨다.
그 말 한마디가 힘든 순간들을 극복해 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3년 동안 선생님과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건 분명 축복이었다.
7년 가까이 선생님과 함께하면서 배운 것들이
지금 삶을 살아가는데도 큰 밑거름이 되고 있다.
선생님에게 배운 것들을 조금이나마 돌려주려 하고 있다.
선생님과 오랜 기간 붙어있으면서 인상 깊었던 3가지가 있다.
1. 선생님은 팬들을 정말 소중히 여기신다.
사진도 찍어주고, 사인해 주시는 걸 즐거운 마음으로 해주신다.
왜냐하면 그들이 있기에 본인이 있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라고 팬들의 사랑에 감사함을 잊지 않기에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더 좋아하고 존경하는 게 아닐까.
누군가가 마음을 써주는 것에 대해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2. 끊임없이 자기 관리를 하신다.
선생님은 80살이 넘은 나이에도 에너지가 넘치셨다.
과식하지 않으셨다. 바쁜 스케줄에도 틈틈이 운동을 하셨다.
술과 담배는 입에 대지 않으셨다.
본인이 하는 일을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하셨다.
'아무 노력 없이 얻어지는 건 없다'
나도 선생님처럼 오랫동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계속 자기 관리를 해야겠다고 선생님을 보고 배웠다.
3. 공부와 도전을 멈추는 순간 늙는다.
선생님은 대본을 항상 놓지 않고, 계속 대사를 중얼거리셨다.
"이만하면 됐어", "내가 무조건 옳아"라고 고집하지 않으셨다.
더 나아지기 위해 계속 노력하셨다.
젊은 사람들보다 깨어 있는 부분들도 많았다.
'꽃보다 할배'에 나왔던 비행기 안에서 공부하는 모습은 선생님의 평상시 모습이다.
선생님은 공부와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으셨다.
그렇기에 80살이라는 나이임에도 20대보다 젊게 살 수 있지 않으셨을까.
그걸 보면서 공부를 멈추지 않고, 나도 계속 나아지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배웠다.
내가 이순재 선생님을 존경하는 이유는
'말'이 아닌 '몸'으로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100마디 말보다 1번의 행동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말보단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이순재 선생님은 항상 나에게 자랑스럽고, 감사한 분이다.
이순재 선생님 제자로 부끄럽지 않고 싶다.
삶에서 나에게 좋은 원동력이 되어주시는 분임에는 틀림없다.
2024년 KBS 연기대상을 보면서 선생님이 많이 노쇠해지신 모습을 보았다.
상을 받으신 것이 너무나 기뻤지만, 한 편으론 안타까움도 밀려왔다.
선생님이 편안하게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지금 연기를 하고 있진 않지만, 나에게 주어진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게
선생님의 가르침에 보답하는 게 아닐까 싶다.
꼭 선생님 한 번 뵈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