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느덧 31살이다. 크게 한 번 웃었더니 10살이었고, 눈물 몇 방울 흘렸더니 20살이었다. 그리고 몇 걸음 걸었다 싶었는데 30대가 되었다. 어릴 때는 내가 세월이란 놈을 쫓아다녔다. 얼른 세월을 낚아채서 내 두 손에 가득 쥐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 세월이 나를 쫓아다니고, 나는 여기 저기 숨어서 피해 다닌다.
2. 세월과 나의 술래 역할이 뒤바뀐 것 이외에 또 변한 것이 있다면, 내려놓을 줄 아는 인간이 되었다는 점이다. “내려놓다”라는 말은 직관적으로도 어떤 의미인지 받아들이기 쉽다. 난 원래 ‘내가 세운 목표는 이루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삶에 임했었고, 내가 정한 마지노선까지 쏟아낸 채, 아니다 싶으면 뒤돌아섰다. 하지만 결국 이뤄내지 못했을 때 ‘내려놓’는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자존심이 상했고, ‘포기한 인간’, ‘목표를 이뤄내지 못한 인간’이라는 메아리가 일종의 후렴처럼 늘 내 안에서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듯 했다.
3. 이젠 오르지 못할 나무는 보지 않게 되었고, 애써 내 역량 이상의 것을 얻으려 발버둥치지 않게 되었다. 내 자리가 아니다 싶으면 떠날 줄 알게도 되었다. 이런 내 태도가 비겁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떠난다는 것이 나 자신과 멀어지기보다는 오히려 나 자신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렸던 나의 모습과 현재의 내 모습의 간극은 점차 좁혀져갔고,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그리고 내가 잘하고 싶었던(여전히 잘하고 싶은 것들이긴 하지만) 것들보다는 내가 잘하고 즐길 수 있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4. 한 번뿐인 내 삶이다. 몇 걸음 물러서 나 자신을 관조하고 동시에 직시하려고 한다. 내려놓기와 떠나기를 반복하다보면 다시 들 것도 생기고, 머무를 때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살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