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동 아줌마, 아저씨(2021)

by 백아절현

몇 해 전, 나는 우리 동네 작은 세탁소를 찾았다. 바지의 허리통을 줄이고 싶었다. 그 날은 원래 가던 옷 수선집에 가기가 귀찮았다. 그래서 집 옆에 있는 세탁소에 가서 세탁소 아저씨께 여쭤봤다.

“혹시 바지 허리를 줄이는 것도 해주시나요?”

“내가 양복쟁이인데 그걸 못해?!!!!”

나는 아저씨의 급작스런 발진에 당황했다.

“아... 네... 그럼 이거 허리 좀 줄여주세요”

그러고 집에 왔다. 기분이 상했다. 나는 그 아저씨와 이야기 한 마디 나눈 적이 없는데 본인이 양복쟁이인 것을 내가 어찌 안다는 말인가. 왜 언성을 높였는지 당최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런데 나는 그 후 4~5년째 수선할 옷이 생길 때마다 그 세탁소를 찾았다. 묘한 매력이 있는 아저씨이다. 처음엔 기분 나빴던 그 분의 반말도, 그 분의 약간의 째려보는 눈빛도, 살짝 벗겨진 이마도, 뭔가 낀 듯한 탁한 목소리도, 느릿한 행동도 이젠 적응이 됐다. 때론 귀여우시다는 생각도 든다.

분명 기분 나쁜 첫 방문이었음에도 나는 계속 그 곳을 찾았다. 아저씨도 이제 나를 아신다. 길에서 마주치면 인사도 할 정도이다. 첫 인상에 비추어보았을 때, 꽤나 큰 발전이다. 엊그제는 아저씨께서 잔돈을 거슬러 주셔야하는 상황이었는데 잔돈이 없으셔서 내가 다른 곳에 가서 잔돈을 바꿔왔다. 그러고 다시 비용을 지불하게 되었는데, 아저씨께서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뭔가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그 무뚝뚝한 양복쟁이 아저씨가 미안하다는 감정 표현을 나에게 해주셨다.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우리 동네에는 양복쟁이 아저씨 말고도 내가 정이 든 분이 또 있다. 미용실 아줌마이다. ‘가위소리 아줌마’라고 부른다. 왜 가위소리 아줌마라고 부르냐하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미용실 이름이 ‘가위소리’이기 때문이다. 괜한 유머 한 번 시도해봤다. 나는 이 미용실을 20살 때부터 다녔다. 친구들은 놀린다. 왜 맨날 동네 미용실을 가냐면서 말이다. 시내나 평거동 쪽에 젊은 분들이 하는 곳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가끔 예쁜 미용사가 있다며 추천해주기도 한다. 그런 유혹에는 좀 흔들린다. 그래도 내 발걸음은 결국 가위소리를 향하고 있다.

내가 가위소리 아줌마를 찾는 이유는 편안함이 제일 크다. 가위소리 아줌마는 이발 중에도 별 다른 말씀을 안하신다. 머리를 깎는 시간이 나에겐 휴식처럼 느껴진다. 가끔 미용사 분들 중에 이런 저런 말을 건네주시는 분들이 계신다. 물론 그 분들은 서비스의 차원에서 건네시고 친절을 보여주시려 하는 것임을 안다. 그래서 나는 대답을 꼬박꼬박 하게 된다. 그 찰나에 오고가는 대화들이 어느 순간 나에겐 부담으로 다가왔다. 나의 가위소리 아줌마는 조용히 머리만 만져주신다. 그렇다고 무뚝뚝하신 분도 아니시다. 인사하실 때나, 내가 궁금한게 있어서 질문을 할 때나, 계산할 때도 친절함이 잔뜩 묻어나신다. 그리고 항상 차분하시다. 그런 편안함과 푸근함이 날 항상 이끈다.

또 10년 가까이 다니다보니 신입생이 되어 염색을 할 때도, 파마를 할 때도, 군대에 들어갈 때도, 기분에 따라 머리의 길이에 변화를 주고 싶을 때 등 나의 20대의 머리 스타일을 책임지신 분이다. 내가 이렇게 해달라고 말하면 찰떡같이 알아들으시고 내가 원하는 기장과 스타일로 해주신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말이 “적당히”라고 한다. 내가 아줌마에게 “적당히 잘라주세요”하면 늘 내가 원하는 딱 그 길이만큼 잘라주신다. 감사한 일이다. 세상에 단 한 명 뿐인 셈이다. 내 머리에 한해서 “적당히”라고 말했을 때,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인지 알아주는 사람은 가위소리 아줌마 한 명 뿐이다. 난 이렇게 가위소리 아줌마에게 길들여졌다.

내가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동네 아줌마가 한 분 더 남았다. 설렁탕 아줌마다. 연세로 따지면 할머니에 가까울 수 있겠지만, 아줌마라고 부른다. 설렁탕 아줌마는 우리 동네에서 에너지가 가장 넘치시는 분 같다. 순전히 나의 생각이다. 더 에너지 넘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본 이현동 사람들 중에서는 따봉이다. 앞에 서술한 세탁소에서 10초 정도 걸어가면 설렁탕 집이 하나 있다. 언제부터 내가 그 식당을 다녔는지 기억조차 안난다. 꽤 오래 된 것 같다. 우리 가족 모두가 단골이다.

“낯익은 얼굴들이 왔네?” 하면서 항상 우렁차게 웃으시면서 반겨주신다.

내가 혼자 가면 “아들~ 왔어?” 하고 맞이해주신다. 가끔은 황송할 정도로 나를 반겨주실 때도 있다.

서비스는 기본이다. 길에 지나가다가 마주치면 직접 재배하신 상추랑 고추 등을 주시기도 하신다. 덕분에 틈틈이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연세도 많으신데 허리 상해가며 고생해서 농사지은 상추를 주시다니. 설렁탕 아줌마의 인심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넉넉한 시골 인심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시는 분이다. 정 많은 이웃의 정석의 모습이랄까?

나는 이 분들을 어떤 면에서는 존경한다. 양복쟁이 아저씨는 한결 같이 옷을 세탁하거나 수선하고 계신다. 늘 허리와 목을 굽힌 채로 계신다. 가위소리 아줌마는 손님들의 머리를 만지고 계시고, 설렁탕 아줌마는 역시 손님을 대접하고 계신다. 수 십 년의 세월동안 한 장소에서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것이 여간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과연 저 아줌마, 아저씨처럼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이 몇 번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못할 것 같다”라는 대답을 했다. 맡은 바에 책임을 다 하시고 본인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그 분들이 멋지다. 그런 성실함은 본받고 싶다. 진심이다.

내년이면 이현동을 떠난다. 올해 어머니가 명예퇴직을 하시고 평거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셨다. 나는 지금 30살이다. 그리고 이현동에 30년을 살았다. 내 인생의 100%를 이현동에서 보냈다. 분명히 아쉬운 것들이 몇 개가 있을 것이다. 여가 시간에 늘 찾던 시립도서관, 누워서 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테니스장의 벤치,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찾던 숙호산과 석갑산, 쾌적하면서 고요해서 자주 찾던 골프장 밑의 엔젤리너스 카페 등 내가 애정하는 장소들이 있다. 그래도 내가 이현동을 떠나면 가장 그리울 대상은 아줌마, 아저씨들일 것이다.

양복쟁이 아저씨, 가위소리 아줌마, 설렁탕 아줌마. 정들었던 분들. 분명히 생각날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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