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고~ 우리 미남 왔나? 걱정 안해도 돼. 맞으면 별 거 아니야. 괜찮아”
저번 주 코로나 백신을 맞으러 간 나에게 영곤 아저씨가 해주신 말씀이다. 늘 그렇듯 웃으시면서 날 다독여주셨다. 그 모습이 내가 기억할 그 분의 마지막 모습이다.
어제, 그렇니까, 추석 다음 날이다. 진주에 10분정도 아주 큰 비바람이 불었다. 나도 그 순간이 기억이 난다. 우리 가족이 집을 나서기 직전이었다. 비바람에 집 안 거실까지 비가 튀겨서 거실 샷시를 닫고 나갔기 때문이다. 아주 찰나의 시간이었다. 금방 비가 그치고 해가 떴다. 그런데 그 찰나에 그 분은 큰 화를 입으셨다.
당신의 아버지 산소에서 밤 따러 다녀오시는 길이었다고 한다. 고속도로에서 비가 쏟아져 커브길에 한 차가 미끄러져 경미한 사고가 났었는지 갓길에 정차해 있었다고 한다. 그 분은 그 차에 탄 운전자의 상태를 확인하려 폭우 속에서도 내리신 것이다. 그러고 문제가 없다 판단을 하시고선 다시 당신의 차에 타려는 순간 뒤에서 오는 또 다른 차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그 분을 덮치셨다고 한다.
그 날 밤, 집에 급하게 들어오니 어머니는 울고 계셨고 아버지는 장례식장에 바로 달려가셨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믿지 못해서 장례식장에 망자의 이름을 확인까지 해보셨다고 한다. 자정이 가까이 되어서 돌아오신 아버지의 표정은 참담했다. 아버지의 그런 얼굴은 내 평생 본 기억이 없다. 쓰라린 마음이 더 아파왔다.
참 따뜻하신 분이었다. 아버지와는 몇 십년이 된 사이였다. 아버지는 그 분을 ‘이원장’이라 부르셨고 그 분은 아버지를 늘 ‘임화백’이라 부르셨다. 만나서 술 한잔 할 때마다 아버지의 주머니 사정을 알고 절대 계산을 못하게 하셨다고 한다. 그러고 그 돈으로 다른 사람을 사주고, 사회 생활에 필요할 때 쓰라고 늘 넣어두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가끔은 적지 않은 돈을 주시면서 아버지에게 아무 작품이나 달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아버지를 알게 모르게 도우셨고 자존심도 지켜주셨던 분이시다.
어머니에게도 참 좋은 분이셨다. 잔병치레가 많은 어머니는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증세가 있거나 작은 감기나 두통이 오면 바로 그 분을 찾으셨다. 늘 자상하게 웃어주시고, 어머니의 걱정을 가라앉혀주셨다. 필요 이상의 진료는 하지 않으시고 어머니의 몸 상태에 맞게 늘 처방해주셨다. 어머니의 주치의와도 같은 분이셔서 어머니도 의지를 참 많이 하셨다.
“아이고, 이원장. 와 이리 빨리 갔노. 같이 늙어가면서 소주나 한 잔씩 하기로 했으면서…”라며 아버지는 중얼거리셨다. “뭐 한다고 밤을 주우러 갔네. 뭐한다고 고속도로를 탔네. 거기서 뭐한다고 내려서 확인을 하네. 그 중에 그냥 하나라도 빗나갔으면 안갔을낀데….”
아버지가 중얼거렸던 말씀처럼 만약에 영곤 아저씨가 밤을 주우러 가지 않으셨다면, 만약에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탔다면, 그리고 만약에 그 미끄러져있던 차를 그냥 지나치셨다면, 하다 못해 그 뒤에 미끄러진 차가 1-2초만 늦게왔다면. 하는 생각에 괜히 더 아쉬운 마음이다. 자잘한 우연들이 모여서 그 일을 만든 것이다. 그 우연의 조각들의 각도가 1도라고 빗껴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다. 그 찰나들이 이리 저리 부딪치고 섞이면서 우리도 모르는 우리의 운명을 만들어내고 있는 듯하다. 예측할래야 예측할 수가 없다.
죽음은 늘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 나도 무수히 많은 죽음들을 피해왔을지 모른다. 1-2초 상간으로 내 뒤로 죽음이 달려왔을지도 모른다. 단지 운이 좋아서 지금, 여기 내가 있는 것 같다. 영곤 아저씨가 잘못해서 돌아가신 것이 아닌 것처럼, 내가 잘해서 지금 살아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게 우연의 상호작용인 듯하다. 그 우연들이 나를 향할수도,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할 수도 있다. 피할 수도 없고, 의도적으로 맞딱뜨릴 수도 없다.
남은 이들은 충분히 슬퍼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한다. 부정할 일도 아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다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을 잊지 않기 위해 그 분의 따뜻함을 내가 대신 실천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