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습작 8장

침묵의 숲

by 송도원

다음 날 아침, 소년은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마을 어귀에는 소년 지켜보는 몇몇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이 끓어오르는 혼돈을 잠재워줄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 그리고 붉은색이 그러했듯 또 다른 재앙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깊은 ‘불안’. 흔들리는 시선들이 그의 가슴에도 불안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때, 사람들 사이를 지나 소녀가 소년에게 다가왔다. 주위 사람들의 불안 어린 시선과 달리 소녀의 회색빛 눈에는 오직 소년을 향한 완전한 믿음이 담겨 있는 듯했다. 소녀는 소년의 바로 앞에 서서, 다른 이에게는 들리지 않을 만큼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들 그저 처음 겪는 뜨거움에 놀랐을 뿐이야. 너를 믿어"


그 목소리는 바람처럼 스쳐, 소년의 불안을 고요히 씻어냈다. 잠시 잿빛이던 가슴에 다시 불꽃이 살아나듯 확신이 타올랐다. 소년은 붉은 기운이 감도는 마을을 등지고 남쪽으로 향했다. 활기차지만 메마른 땅을 지날수록 세상의 풍경은 서서히 변해갔다. 타오르는 듯한 붉은빛은 점차 옅어지고, 땅은 생명의 온기가 모두 빠져나간 듯 차가운 잿빛으로 가라앉았다. 며칠을 걸었을까, 마침내 소년의 눈앞에 목적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지평선 너머로, 잎사귀 하나 없이 앙상한 가지만 남은 죽은 나무들이 마치 거대한 묘비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소년은 숨을 한번 깊게 들이마시고, 침묵이 지배하는 그 메마른 숲으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모든 생명이 사라지고 소리마저 숨을 죽인 듯했다. 잿빛 흙을 밟는 발소리와 죽은 나뭇가지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를 제외하면, 세상의 모든 소음이 증발한 듯한 완전한 침묵이 소년을 맞았다. 잎사귀 하나 없는 앙상한 나무들은 어느 방향으로 보나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어, 한 걸음을 내디뎌도 영원히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은 착각을, 착각은 내면에서부터 차오르는 조급함을 불러일으켰다. 붉은 불꽃은 소녀의 약속을 이뤄주겠다는 뜨거운 열망을 지폈지만, 숲은 소년의 열정을 비웃듯 끝없이 제자리를 맴돌게 했다.


처음 며칠 동안 소년은 주머니칼로 나무에 표식을 새기며 길을 찾았다. 하지만 숲의 단조로움은 그의 모든 노력을 조용히 삼켜 버렸다. 조급함은 불안으로, 불안은 곧 절망으로 스며들었다. 소년은 스스로를 다그쳤다. '내 발걸음이 멈추면, 그 아이의 꿈도 멈춰버려…' 그러나 불꽃같던 열정은 더 이상 길을 밝히지 못했다. 그것은 채찍이 되어 소년의 몸을 내리쳤다. 그리고 마침내, 며칠 전 자신이 새겨둔 표식이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칼자국은 마치 조롱하는 입술처럼 갈라져 있었다. 그 순간, 다리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마음을 묶고 있던 끈이 툭 하고 끊어진 듯했다. 소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거친 숨을 몰아쉬던 순간, 소년은 처음으로 숲의 침묵과 한 몸이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자 비로소 닫혀 있던 감각이 열리기 시작했다. 소년은 느꼈다. 다른 곳보다 짙은 습기를 품은 바람을. 소년은 보았다. 죽은 나무껍질들 사이에서 한결같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가늘게 숨 쉬는 이끼를. 소년은 들었다. 숲의 깊은 곳에서 울리고 있는, 미약하지만 분명한 물의 맥박을.


숲을 지나는 방법은 힘으로 길을 여는 것이 아니었다. 아주 느리고 조용한 숲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인내였다. 고요한 마음으로 다시 일어선 소년은 바람의 흐름을 따라 걷고, 이끼의 방향을 이정표 삼았다. 더 이상 숲은 무의미한 감옥이 아니었다. 눈앞에는 어슴푸레 이어진 길이 숲의 심장부를 향해 뻗어 있었다. 인내를 품은 가슴으로, 소년은 묵묵히 숲의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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