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의 노래
고대의 제단 위에서 피어난 백색의 빛은 잠시 숨을 고르듯 고요히 머물렀다.
그러다 이내 부드러운 파동이 되어 산봉우리를 넘어,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빛은 가장 먼저 붉은 사막을 어루만졌다. 백색광이 스며들자, 모래 위를 내리쬐던 날카로운 붉은빛은 부드러운 온기를 품은 주홍빛 햇살이 되었다. 메마른 모래언덕은 찬란한 태양빛을 머금은 황금의 물결로 물들었고, 비로소 맑고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사막은 더 이상 타오르는 시련의 땅이 아닌, 모든 것을 품어주는 온기의 대지가 되었다
빛은 메마른 숲이었던 초록의 왕국을 지나갔다.
맹목적으로 뻗어 나가던 식물들은 성장을 멈추고 서로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짙은 녹음 사이사이에 이전에 없던 다채로운 빛깔의 꽃들이 피어나 숲의 바닥을 수놓았다. 생기 없이 잿빛이던 나무 기둥들은 이제 붉은 흙의 기운이 섞여 더욱 깊고 단단한 갈색빛을 되찾아 그 모든 생명을 굳게 지탱해주고 있었다. 숲은 더 이상 정체된 녹색이 아닌, 다채로운 생명의 터전이 되었다.
빛은 마지막으로 세상의 기억이 잠들어 있던 푸른 빙원을 비추었다.
공허했던 푸른빛은 따스함을 받아들였고, 얼음은 세상을 비추는 거대한 프리즘이 되어 무지갯빛으로 찬란히 빛났다.
빙원은 이제 쓸쓸하고 고독한 체념의 땅이 아닌, 모든 것을 기억하고 이해하는 평화의 땅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빛의 물결이 마을에 닿았다.
빛이 닿지 않아 잿빛으로 남아 있던 골목과 지붕들 사이로 따스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사람들의 잿빛 피부는 사라지고, 저마다의 따뜻한 생기로 빛났다.
잿빛의 공백과 상처는 모두 치유되었다.
세상이라는 캔버스는 마침내 완전한 색으로 채워졌다.
자신의 밭을 넓히려 싸우던 이웃들은, 서로의 얼굴에 깃든 고단함을 문득 발견하고는 말없이 손을 내밀어 함께 울타리를 바로 세우기 시작했다.
야망은 경쟁이 아닌 협력이라는 지혜를 배웠다.
과거의 슬픔에 잠겨 텅 빈 눈으로 하늘만 바라보던 이들은, 창가로 스며든 빛에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슬픔의 자취가 남아 있었지만, 그 위에는 이제 내일을 살아갈 힘이 깃든 온화한 미소가 함께했다.
우울은 체념이 아니라, ‘추억’이라는 이름의 위로를 배웠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울부짖던 사람들은, 상대의 분노 속에서 자신과 같은 아픔을 발견하고는 말없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격렬했던 고통은 분노가 아닌 ‘공감’이라는 이름의 사랑을 배웠다.
저녁이 되자, 서쪽 하늘에는 붉은빛과 푸른빛이 서로를 밀어내는 대신,
부드럽게 어우러져 눈부신 보라와 주황의 그러데이션을 만들어냈다.
더 이상 그 경계에 상처 같은 잿빛 띠는 없었다.
소년은 제단에서 내려와 완전히 새로워진 세상을 걸었다.
소년의 가슴속에서 그토록 격렬하게 충돌하던 세 개의 빛은 이제 완벽한 고요 속에 잠겨 있었다.
그것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소년의 영혼 그 자체로 녹아든 것이었다.
소년은 더 이상 거대한 힘을 가진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모든 감정을 이해하고 품을 줄 아는, 세상의 첫 번째 어른이었다.
저 멀리 마을의 언덕이 보였다.
그리고 그 언덕 위, 다채로운 노을을 배경으로 자신을 기다리는 작은 소녀의 모습이 있었다.
소년은 자신의 여정이 이제 끝났음을 느끼며, 천천히 마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