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습작 18장

시작의 꽃

by송도원

소년이 언덕에 다다랐을 때, 그곳에 소녀가 서 있었다.

소녀는 소년을 보며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다.

소녀의 등 뒤로, 이제 막 보라와 주황으로 물들기 시작한 세상의 첫 번째 노을이 펼쳐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로가 겪어낸 시간과 눈앞의 기적 같은 풍경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소녀가 조용히 물었다.


“이제 정말 다 끝난 걸까?”


“그런 것 같아.” 소년이 대답했다.

“네가 꿈꾸던 세상이 된 거겠지?”


“응.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


소녀는 세상을 둘러보다가 문득, 소년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발견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저마다의 색을 되찾았지만, 이상하게도 두 사람이 서 있는 언덕의 한쪽 구석,

소녀가 홀로 잿빛 하늘을 바라보던 그 자리만은 여전히 잿빛의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마치 세상의 마지막 잿빛을 끌어모은 듯한 작은 들꽃 한 송이가 위태롭게 피어 있었다.


소년은 잠시 망설였다.

자신의 여정이 아직 불완전하다는 증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소년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마지막 남은 그 잿빛 들꽃을 꺾었다.


“결국... 완벽하지는 못했네.”


소년이 씁쓸하게 웃으며 소녀에게 꽃을 내밀었다.

그것은 여정의 시작이자, 동시에 실패의 증거처럼 보였다.


하지만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슬퍼하는 대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야. 완벽해.”


소녀는 소년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포갰다.

그리고 두 사람의 손이 함께 잿빛 꽃을 감싸 쥐는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꽃잎의 가장자리에서부터, 순수하고 따스한 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잿빛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붉은색, 초록색, 푸른색이 차례로 스쳐 지나가더니, 이내 그 모든 색을 품은 눈부신 백색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것은 제단에서 터져 나온 세상의 거대한 빛이 아니었다.

오직 한 소년의 순수한 마음과 한 소녀의 굳건한 믿음이 만났기에 피워낼 수 있었던,

두 사람만의 마지막 기적이었다.


소년은 경이로운 눈으로 순백의 꽃과, 그 꽃보다 더 환하게 빛나는 소녀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는... 그저 네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인데...”


그 말에, 소녀는 환하게 웃었다.

소녀의 웃음소리가 다채로운 세상의 노을 속에 맑게 울려 퍼졌다.

소녀는 백색 꽃을 든 채, 소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봐. 나 지금, 웃고 있잖아.”


소년은 그제야 길고 길었던 자신의 여정이 비로소 끝났음을 깨달았다.

잿빛의 마을, 그 작은 들꽃 한 송이에서 시작된 그의 무모한 약속은,

마침내 가장 완벽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두 사람은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었던 이 언덕 위에서,

서로의 색으로 가장 먼저 물들어가는 둘만의 세상을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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