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교적이 속해 있는 본당은 우리 시에서도 작은 본당에 속한다. 주일 미사 참례 신자 수는 3백명이 채 안 되고, 주일헌금은 1백50만원쯤 된다. 일요일 미사는 10시 30분 교중미사와 저녁 7시 두 대뿐이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는 차로 15분쯤 가는 이웃본당의 8시 첫미사에 가곤 한다.
오늘은 부활절.
성야미사를 지낸 이웃 본당도 오늘은 8시 미사가 없다. 부활주일인 오늘 복음은 마리아 막달레나가 어두울 때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 부활의 첫 증인이 된다는 내용인데, 어슴푸레한 새벽녘에 먼 길을 달려가는 그녀의 마음에 동화되어 보기는 애초에 글렀다.
이 본당이든 저 본당이든 어차피 낮미사에 가야 하므로, 오랜만에 우리 본당으로 가기로 했다. 본당에 대한 약간의 의리를 지킨달까, 하는 마음이 발동했던 것 같다. 사실 일 년 중 가장 큰 축일인 부활대축일과 성탄대축일은 가족 모두 본당 미사로 가곤 했더랬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몇 해 전 성탄대축일이었다. 코로나 이전이었다. 평소에는 성당에 잘 가지 않는 남편과 아이들을 꼬드겨 전야미사에 가자고 했다. 우리가 미사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지만 전야미사를 하기 전에 연극제를 해서, 성당은 이미 신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자리를 찾으러 2층 성가대 석으로 갔다.
성가대원들은 열대여섯 명 정도 되어 보였다. 남은 자리에는 우리 가족 말고도 여러 신자들이 빈 자리를 찾아 올라와 있었다. 우리도 곧 시작될 성탄 미사를 경건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미사가 시작되기 오분 전쯤, 성가대원 중의 한 명이 말했다.
"여기에 앉으신 분들은요, 성가를 부르지 마세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미사에 온 신자한테 성가를 부르지 말라니?'
성가대가 성탄 미사를 위해서 열심히 연습을 했으니 성가를 같이 불러서 망치지 말라는 말이었다. 정중히 부탁을 하거나 양해를 구하는 태도도 아니었다. 명령조였다.
순간, 성탄 미사를 준비하던 나는 말 그대로 뚜껑이 열렸다. 마음 같아서는 그 말을 한 성가대원과 한바탕 붙고 싶을 만큼 화가 치밀어올랐으나 성탄미사가 시작되려는 마당에 그 자리에서 싸울 수는 없는 일.
"여보. 얘들아. 서 있어도 할 수 없으니 우리는 밑으로 내려가자. 미사하면서 성가를 안 부를 수는 없잖아."
남편과 아이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말없이 따라주었다.
그 날, 성탄 미사는 최악이었다. 끝날 때까지 분노와 분심이 가라앉지 않았고, '그래, 성가대가 얼마나 잘하기에 그러나 보자!' 하는 앙심도 떨쳐버리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을 거듭 해도 이건 아니었다. 뒤끝이 긴 나는 몇 주 뒤에 이 날 일을 소상히 적은 편지를 주임신부님에게 보냈다. 대축일 전례를 위해 성가대가 열심히 연습하는 노력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대축일 미사가 성가대 발표회는 아니지 않냐고, 성가대를 위해 신자들이 성가를 부르지 못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성가대와 충분히 소통해 보셨으면 좋겠다는 요지였다.
그런 일도 있었겠다, 지금은 그러지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오늘 부활절 미사를 다시 본당으로 갔다.
부활 인사도 없이 미사는 평소와 다름없이 시작된다. 신부님은 성야미사의 피로가 안 풀리셨는지 목이 잠기셨는데, 대축일 미사라고 기도문도 곡조를 붙여 하신다. 그리고 '자비를 구하는 기도(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가 시작되려는 순간, 우려하던 일이 일어나고 만다.
"키리이이이에~~~ 키리이이이에~~~ 에에에에에엘레이송~~~"
라틴어 미사곡이다. 이어 글로리아 인 엑 첼시스 데오~와 싸앙~~뚜스, 아뉴스 데이까지.
사순절 기간 동안 부르지 못한 '대영광송'을 가슴 벅차게 부를 수 있는 그 환희에 찬 순간, 신자들은 입도 뻥끗 하지 못한 채 벌 받는 사람처럼 서서 성가대의 미사곡을 들어야 했다. 신학 물을 먹었다는 나도 라틴어 기도문을 다 따라가지 못하거늘, 라틴어라고는 듣도보도 못한 신자들은-그것도 무릎이 아파 장궤도 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은- 그 시간이 얼마나 지루하고 힘들 것인가.(솔직히 성가대가 노래라도 잘하면 감상하는 맛이라도 있을 텐데.)
성가는 두 배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한다. 부활의 기쁨을 매 주간 경험하라는 주일, 사순절과 대림절을 지내며 오래 기다려온 대축일. 성가로 노래하고 싶은 신자들을 '입꾹닫'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라틴어 미사곡은 도대체 언제쯤 그만 부를 것인가. 아니, 그만 듣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