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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Nov 12. 2023

I am 평신도 그리스도인

2023년 11월 12일 / 평신도 주일이 왜 있어야 하지?

오늘은 교회가 정한 '평신도 주일'이다. 평신도 주일이면 신부님 대신에 사목회장이 강론대에 올라가 강론을 하곤 한다. 나는 내가 가는 본당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면서 성당에 갔다. 나는 주일미사를 내 교적이 있는 본당으로 다니지 않고, 운전해서 15분 가야 하는 타 본당으로 간다. 이유는 두 가지.


우리 본당은 주일의 첫 미사가 10시 30분에 시작한다. 아침 잠이 없는 내게 그 시간은 한낮이나 다름없다. 내가 가는 D본당은 첫 미사가 8시. 한 주간의 시작이며 그야말로 '주님의 날'인 주일은 되도록 이른 미사로 시작하고 싶어서다.

두 번째 이유는 신부님이 강론에 진심이다.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를 열심히 하시는 주임 신부님을 닮아, 햇병아리 작은 신부님의 강론도 상당히 깊다. 두 분 다 강론에서 기도하는 사람의 향기가 느껴진다. 가톨릭 교리나 교회법 등 부차적인 내용이 아닌, 오직 그날 말씀에 초점을 맞춰 해주시는 것도 마음에 든다.


신부님은 미사 시작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는 성직자 그리스도인이고, 여러분들은 평신도 그리스도인입니다. 저는 성당에서 미사로 사제직을 수행하고, 여러분은 가정과 직장에서 주님의 제사를 드리는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옳소! 맞습니다, 신부님. 저는 평신도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강론에 진심인 신부님도 오늘은 강론대를 사목회 부회장에게 내주셨다. 그리고 그분은 '평신도사도직협의회(이하 평협)'가 제공하는 강론 자료를 활용하여 강론을 했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강론이었다. 대체로 '가르치려는'  내용들이다. 부활이나 성탄대축일에 주교님이 하사하신(?) 메시지를 각 본당 신부님이 요약하여 읽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속에서 스멀스멀 반감이 올라왔다. 그때부터 내 분심은 강론 시간 내내 계속됐다.


'평신도 주일'이라는 말부터 탐탁지 않다. 군인 주일에는 군인이라는 직업, 또는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청소년 주일에는 청소년들의 신앙생활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뜻으로 보낸다. 농민 주일에는 농민들을 위해 기도하고, 사회복지주일에는 사회복지시설에 종사하는 사람, 홍보주일에는 교회 홍보물을 만들고 배포하는 사람과 단체를 위해 마음을 모은다.

그렇다면 평신도 주일은? 평신도가 직업인가? 어떤 특별한 일인가? 차라리 '모든 성인의 날'처럼 '모든 신자의 날'이라고 하였더라면 반감이 덜했으려나? 평협이 평신도를 대표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하는 신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왜 나는 이 날이 '평신도 주일'이 아닌 '평협 주일'로 생각되는 걸까.


신부님 말씀처럼 나는 평신도 그리스도인이고, 오늘은 평신도인 내가 세상에서 어떻게 사제직, 왕직, 예언직을 수행하면서 살아갈지를 생각해 보는 날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평신도인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평협이 아니라, 허리가 꼬부라져도 미사시간에 나와 앉아 신공을 드리는 할머니다. 까칠한 신자들의 손을 잡아주고, 바지 무릎이 하얘지도록 무릎 꿇고 기도를 드리는 사제의 뒷모습이다. 고급 브랜드가 박히지 않은 스웨터를 입고, 어지간한 길은 걸어다니는 수도자들이다. 박스를 싣고 가는 노인의 리어카를 밀어주는 청년이고, 아직 잠긴 목소리로 열심히 해설을 하는 새벽미사 주송자들이다. 나는 '평신도 주일'이라는 날에,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강론으로 듣고 싶다.


내가 만약 본당 사제라면 나는 오늘 강론을 사목회장이 대신 한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본당에서 평신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빛이 나는 사람들의 삶을 영상으로 만들어 틀어주겠다. 우리 본당에 이런 귀한 사람들이 있다고, 이런 본당 신자들이 교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고, 평신도의 삶이 바로 교회 그 자체라고. 본당 신자들을 잘 알고 사랑하는 사제라면 누가 빛나는 평신도 그리스도인인지 잘 알 것이며, 잘 되는 본당 공동체라면 대다수의 신자들이 영상 속 주인공으로 빛날 것이다.


내친 김에 평협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평신도 주일에 강론하고 헌금 걷도록 하고, 우리 성가 공모하고 가톨릭 대상 뽑고 하는 그런 일들을 하나 보다. 물론 다 필요한 일일 테다. 그러나 평신도 그리스도인이 굳이 성직자 그리스도인 코스프레를 하지 않으면 좋겠다. 미사 전례와 강론은 성직자 그리스도인들의 몫이니 그들이 더 충실히 하도록 맡기고,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소리에 더 귀기울이고,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어떨까.


나는 가톨릭 신자이고, 평신도 그리스도인이다. 모든 주일이 평신도가 참여하고, 평신도를 위해서 존재한다. 교회 제도나 정책을 반대한다고 해서 제 얼굴에 침 뱉는 일을 하는 게 아니다. 그저, '평신도 주일'이라는 걸 제정함으로써 오히려 평신도 그리스도인의 위상이 좁아지고, 스스로를 성직자 그리스도인의 하위 계급으로 혹은 평신도를 하나의 직업군으로만 축소하게 될 것 같아, 그게 찝찝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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