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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Nov 21. 2022

외간 남자

  가끔 외간 남자가 그립다. 30년 넘는 밥 수발에도 뒤뚱 맞은 소리만 하는 남편을 보면 지지리 밉살스럽다. 아내에 대한 배려심은커녕 말끝마다 가시를 달고 있다. 그런 남편에게 질려서 다른 남자를 곁눈질해본다.

  남편이 출근하면 슬그머니 남자를 불러들인다. 마음이 맞으면 종일 같이 지내다 남편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오면 등을 떠민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밤이 이슥해지면 낮에 놀던 남자를 다시 불러들인다. 밤새도록 그 남자와 마주한다. 어떤 때는 며칠 동안 낯선 남자와 밤낮을 지새운다. 처음 대면하면 어색할 때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를 알아가고, 어느덧 그에게 동요된다.


  며칠 사이를 두고 두 남자를 만났다. 한 남자를 만난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상대가 나타났다. 두 남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방안에 틀어박혀 나가지를 않는다. 횡재인지 부담인지 가늠이 안 선다. 더군다나 그들은 물 건너에서 온 이방인들이다. 그들에겐 연인이 있다. 그런데도 슬금슬금 곁다리를 껴본다.

  미국 남자는 내게 속삭였다. 아버지가 주신 충고를 마음속에 새기며 살아간다고. “아들아, 남을 비판하고 싶어질 때면 이렇게 생각해 보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나처럼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건 아니라고 말이다.” 그는 과거를 낱낱이 풀어헤쳤다. 파티를 즐기는 그는 광란의 불빛 속으로 휘황하게 넌출거렸다. 그는 한 여인을 사랑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했다. 아버지의 충고를 생각하며 이웃을 배려할 줄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은 점점 멀어져갔다.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사랑을 잡으려 그는 양팔을 뻗었다.

  나는 다시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가 활동하는 고장은 아름다웠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첫마디에 맥이 다 풀릴 지경이었다. 어린 날, 밤새 내린 눈으로 산골 마을이 하얗게 덮이면 신비함으로 인해 소름이 돋았다. 하얀 산 너머에서 우주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내 몸은 작아지고 또 작아져 숨이 멎을까 봐 입을 조심스럽게 벌려 심호흡을 했다. 발자국을 내는 일조차 두려웠다. 한 발 내디디면 몸이 허공에 둥둥 뜨는 것 같았다. 그 신성한 세계를 다시 보게 된 것이다.

  그는 조곤조곤 이야기해주었다. 삼나무숲 앞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잠자리 떼가 흐른다고. 민들레 솜털이 떠다니는 듯하고, 산자락의 강물이 삼나무 가지 끝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보였다며 웃었다. 그가 찾아간 나가타 마을은 한 폭의 수채화였다. 자연에서의 휴양과 사색은 마음을 치유하는 피안인 것이다. 애련이런가, 그는 게이샤가 아닌, 다른 여인을 흘깃거렸다. 나는 슬쩍 물어보았다. “사랑인가요, 유희인가요, 도대체 누구를 마음에 두신 겁니까?” 하기야 ‘좋은 사람 좋아하는 게 무슨 사랑이냐,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는 게 사랑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남자의 이중적인 심리가 적잖이 궁금하다.

  미국 남자는 끊임없이 과거의 파도에 밀려갔다. 물결의 흐름을 거슬러 배를 저어갔다. 사랑과 진실은 공존할 수 없는 것일까. 연인은 서로 사랑했지만, 현실 앞에서 매몰차게 돌아서는 건 여인이었다. 남자의 사랑은 떨어진 꽃잎이었다. 여인을 잃은 미국 남자는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다. 미국 남자 F.스콧 피츠제럴드가 쓴 <위대한 개츠비>, 나는 개츠비의 열렬한 사랑에 연민을 느낀다. “잘 가요, 개츠비.”

  ‘떨어져 있으면 붙잡기 힘들어도, 곁에서 지켜보노라면 금방 친근감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나도 일본 남자 시마무라를 지켜보았다. 여자의 심리 또한 묘한 것이다. 나를 찾아온 남자가 다른 곳을 바라볼 때 온몸의 촉수는 곤두선다. 웬 낯선 남자가 나를 지켜본다면 그 또한 적잖이 신경 쓰인다. 그가 여자의 심리를 즐기기까지야 했을까마는, 화마 속으로 떠나간 여자를 바라보는 마음은 편찮다고 했다. 발에 힘을 주며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쏴아 하고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들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설국>은 문장 하나하나가 황홀한 대서사시였다.

  내게 온 남자들을 다 안고 간다는 것은 심히 부담스럽다. 하지만 위안하며, 다독이며, 탈 없이 갈 수 있다면 이 또한 내 능력인 것이다. 사실 내치기는 아까운 남자들이 아닌가. 깊숙한 골방에 그들을 밀어 넣는다. 개츠비와 시마무라는 또 다른 나의 외간 남자가 된 것이다. 남녀 사이, 딱 부러지게 ‘이것이다’하는 명제가 있을까. 사랑이 변하면 증오가 된다고 하더라 마는, 지구의 종말이 오는 날까지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는 안다. 무엇이든 간에 너무 가까이 끌어안으면 고슴도치처럼 부지불식간에 찌를 수 있다는 것을. 사랑에는 적당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코로나19는 집안에 갇혀 지내는 나에게 남자를 보내주었다. 미국 남자와 일본 남자. 가끔 외간 남자를 만나는 것, 그것은 활동적인 감정이다. 며칠 동안 두 남자를 만나 설렜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남편 퇴근 시간이 가깝다. 사사건건 부딪치고 입씨름하는 남편이지만, 그래도 식구들 밥 먹여주는 남자 아닌가. 냉장고의 부식물을 끄집어내어 다듬는다. 고등어 한 마리가 빤히 바라본다. 구이를 할까, 찌개를 끓일까. 현실 앞에 선 여자는 꿈같던 상상 세계의 꼬리를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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