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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에 대해 스쳐가는 생각

-모이는 것과 흩어지는 것-

by 뚜와소나무

한자 ‘富(부)’는 넉넉하다는 뜻을 가졌다.

宀(집 면) 자와 畐(가득할 복) 자가 합쳐서 ‘부유할 부’가 되었다.

집안에 재물이 가득하다는 뜻이다.

갑골문에는 畐(복)이란 글자가

항아리에 술이 가득 차있는 모양으로 나왔고,

금문에는 항아리에 물건(금일 수도 있음)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한자 ‘貧(빈)’은 ‘가난하다 또는 모자라다’는 의미다.

分(나눌 분) 자와 貝(조개 패) 자가 합쳐진 글자인데, 갑골문에는 없다.

금문에 처음으로 등장할 땐 宀(집 면) 자 안에 分(나눌 분) 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후 소전에서 宀이 사라지고, 分과 貝가 합쳐진 형태로 바뀌었다.

패는 옛날에 화폐로 통용되던 희귀한 조개로 요즘의 돈과 같다.

‘돈을 여기저기 나누고 나니 아무것도 없다’는 뜻을 가진 글자가 貧이다.

여기까지가 한자 빈부의 사전적 해석이다.

수년 전 나는 이 글자를 보고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富)는 커다란 집에 살면서 아주 넉넉한 재산을 갖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집을 뜻하는 면(宀)은

인간이 동굴에서 대충 살던 시절을 지나

나무든 돌이든 꽤 공들여서 드디어 지붕 있는 집을 지은 것을 보여준다.

민갓머리도 아니고 갓머리의 집이라면, 초가집이 아니라 최소 기와집은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안에 사는 사람이 겨우 한 사람(一口)이다. 극소수라는 의미다.

입은 한자로나 문화적으로나 사람을 뜻한다.

집이 있는데다 이 사람은 밭(田)도 소유하고 있다.

여기서 밭이란 생산수단(파이프라인) 일 수도 있고, 다양한 수입원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富란 생산성이 아주 높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빈(貧)은 월급 받아 이것저것 제하고 나니 가처분 소득이 거의 없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八’은 숫자 8이 아니다.

八이란 글자는 애초에 뭔가를 이쪽저쪽으로 나누는 제스처를 상징하는 글자다.

더구나 八바로 아래에 칼(刀)이 놓여있으니

이건 정말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의 지출을 이미 했거나 지금도 하고 있는 상태다.

기와를 올릴 형편도 못되어

글자에서조차 일찌감치 지붕이 날아가고 없다.

내 집 마련할 처지가 아니라는 얘기다.

고정지출과 비상지출로 통장에 남는 게 없는 상태가 바로 ‘貧’이다.


富하고 싶거들랑 수입원을 다각화하거나

(부가가치 높은 직업, 투잡, 주식투자, 채권투자, 금투자, 외화투자, 부동산투자 등등)

생산수단(상장기업 등)을 가지면 된다.

貧을 탈출하고 싶거들랑 내가 번 돈을 나만 알뜰하게 쓰고 저축하면 된다.

수입원은 제한적인데 여러 사람 나눠 쓰거나 소득이 높아도 흥청망청 썼다가는 결과가 뻔하다.

글자를 보면 빈부격차를 줄이는 원리가 간단하다.

극소수가 생산도구들을 문어발식으로 확장해가며 독점하지 않도록 제한하는 동시에

곤란한 처지에 놓여있는 이들에게 공적지원제도를 통해 필수부담을 덜어주면 된다.

그러나 선진국형 자본주의 사회에서조차 빈부 격차가 줄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글자만 놓고 봤을 때의 해법은 간단해 보이지만

현실에서의 구현은 매우 어려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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