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주역(周易)

-아는 게 아는 게 아냐-

by 뚜와소나무


양자역학을 강의하는 교수님이 강의 첫날 학생들에게 이런 소개를 하셨다.

“나는 양자역학을 잘 모른다.

파인만도 양자역학은 인간이 알 수 없다고 했다.

몇 주후에는 당신들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

나는 이 영상을 보면서 주역이 바로 떠올랐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천자문 명심보감 소학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등등을 할아버지께 직접 배웠다.

그런데 주역은 배우지 못했다.


“주역은 내가 너에게 가르친다고 해서 가르쳐지는 게 아니다.

네가 배운다고 해서 배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너에게 주역을 가르치지 않겠다. 스스로 읽어 보아라 “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한의대를 다닐 때는 교양수업시간에 동양철학 강의가 있어서

주역에 대해 개괄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 후 대구의 모 선배님을 통해 한동안 논어 배우듯이 주역 사교육을 받았다.

나중에는 김용옥교수님의 동영상을 관심 있게 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주역을 조금이나마 이해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환갑이 낼모레여서 그런지 이젠 궁금하지도 않다.



다만 한 가지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예과 2년생이었을 때였다.

이부영 등이 번역한 칼 구스타프 융의 ‘인간과 무의식의 상징’이란 책을 읽다가

책장에 꽂혀있던 주역을 꺼내 아무장이나 쫘악 폈다.

‘혁괘’가 나왔다.


혁괘는 물이 불을 품고 있는 괘다.

뭔가 모순이 있고, 변혁의 씨앗이 있는 것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지만

결국엔 때를 따라 공명정대하게 나아가야 허물이 없는 무서운 괘다.

말하자면 칼이 아직 칼집에 꽂혀있을 뿐

언제라도 관습과 제도, 상황을 크게 바꿀 에너지다.

그 시절의 나는 “그래! 나는 혁괘와 같은 사람이지.”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나의 삶은 과연 그러했을까?

딱 잘라 말하기가 곤란하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부족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양자역학에 대해 귀동냥한 것이라고는

그것이 에너지인지 입자인지 알 수 없고, 그저 확률의 문제라는 것뿐이다.

한자로 혁은 가죽(껍데기)을 뜻한다.

피(皮)가 동물이나 사람의 원초적 껍데기를 지칭하는데 비해

혁(革)은 껍데기의 털을 꼬시르거나 무두방망이질을 해서 부드럽게 한

소위 2차 가공이 들어간 상태의 껍데기를 가리킨다. 혁의 쓰임새가 훨씬 다양하다.


주역에 대한 관심은 아득히 멀어졌고

책을 펼쳐서 무슨 괘가 나오는지 궁금하지도 않지만,

부디 나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삶을 살 확률이 높기를 염원한다.

(이재효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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