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그 해 여름

by 뚜와소나무

1983년,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고,

지리산 아래 있는 조그마한 시골 읍내 여중을 다녔다.

그땐 대부분 남녀공학이 아니어서

남학생은 남중, 남고,

여학생은 여중, 여고를 다녔다.

하루는 내 뒷자리에 앉은 여학생이

무단결석을 했다.

그 친구는 성격도 좋고 공부도 잘했다.

유행하는 노래를 금방 익혀서는 우리들에게 불러줬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아주 많았다.


그 친구가 유난히 애정하는 가수가 조용필 씨였다.

덕분에 우리는 조용필 씨의 신곡을

TV에 나온 지 며칠 후면 죄다 배웠다.

1982년에 발행된 화보까지 갖고와서 교실에서 돌려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친구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

조만간 여름방학이 시작될 즈음에!

다들 이유를 몰랐다.

처음엔 지각인 줄 알고 선생님께서 집으로 전화를 했다.

그런데 친구엄마는 "평소처럼 아침먹고 학교가 갔는데 무슨 소리냐?'했다.

교복차림으로 가방 메고 학교에 간 여학생이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하루 종일 안절부절 하시던 선생님은

종례시간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평소와 달리 우리들에게 단단히 훈계를 하셨다.

'반장조차 모르면 어떻게 하냐!’며

애꿎게도 나는 두 배로 혼이 났다.

다음날 아침 내 친구가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등교하자마자 교무실로 불려 갔고,

교실로 돌아온 후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담임선생님께서 조례 시간에 들어와

그 친구가 어제 부산으로 조용필 콘서트를

보러 갔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이런 정신 나간 짓을 한데 대한 벌'이라며

칠판을 잡고 서게 했다.

그리곤 정신봉이라 씌어진 매로

엉덩이를 수십대나 때리셨다.

친구는 눈물을 머금은 채로 제자리로 돌아왔고

의자에 잘 앉지도 못해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면 연신 신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걱정하는 우리에게는

살짝 웃어 보이며

"괜찮아, 후회하지 않아!"라고 말했다.

내가 도시의 고등학교로 진학한 이후로

그 친구 소식이 멀어졌다.

그래도 세상 어디서건 진짜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 친구는 그럴 열정과 용기가 있음을

오래전에 우리한테 증명했으니까.


내가 그 해를 잊지 못하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소윤철이라는 친구 때문이다.

그 친구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딱 한번

같은 반이었다.

옥수수같이 가지런한 치아를 환하게 드러내고 웃던 모습이 좋았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터부시 했지만

그 친구는 장애인인 동생을

우리에게 소개하며 잘 부탁한다는 말을 했다.

모두에게 친절한 데다 우스갯소리를 참 잘했던 윤철이가 어른스럽고 편안했다.

졸업 후 그 친구는 남중을 다녔다.

남중이 여중보다 시험날짜가

대체로 일주일 정도 앞에 있어서

나는 자주 그 친구의 시험지를 빌려서 공부했다.

틀린 문제들이 적나라하게 채점된 시험지를 빌려주는 게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을텐데...

윤철이는 한결같이 잘 모아서 빌려주었다.


그 친구의 집으로 시험지를 빌리러 가는 날이면

나는 거울 앞에서 옷을

대여섯 번씩 갈아입곤 했다.

또 그 친구가 아침에 축구를 한다는 얘길 듣고서

한동안은 아침식사를 거르고 집을 나서서

운동장 옆을 최대한 천천히 지나가면서

곁눈질로 바라보곤 했다.

그러다가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떠 있는 여름방학 어느 날

남학생 한 무리가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와서는 한참 서로 눈치만 보면서

말을 꺼내지 못하다가 그중 한 명이

“네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왔어. 윤철이가 너를 좋아했으니까.”라며 익사 소식을 전했다.

현실인지 아닌지 멍해진 나는

"의사 선생님이 이미 항문이 벌어져 있다면서 인공호흡도 안 해 주더라."던 그 애들의 말이

마치 기차가 반대편 터널로 들어가는 것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당시는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몇 달 뒤 겨울 어느 날

나는 그 친구가 묻힌 언덕으로 휘몰아치는 눈바람을 보며

울음이 터져 나와 한참동안이나 통곡했다.

그 후 지금까지 딱 세 번 꿈 속에서 그 애를 만났다.

다정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는.....

우리 둘은 서로 어떤 마음인지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래서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해 여름을 기억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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