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의 일이다.
머리를 양 갈래로 예쁘게 묶은 3,4세 즈음되어 보이는 여아가 엄마 아빠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왔다.
보통 이 나이의 아이들은 낯선 환경을 접하면 호기심을 가지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고
무표정한 채 엄마가 앉혀놓은 의자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너무나 무기력해 보였다. 내가 뭘 내밀어도 만지려 하지 않았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말을 잘 못해서 한의원에 왔다.’고 말했다.
이어 하는 말이
‘딸이 말을 잘 못하기 때문에 남들 보기에 창피하고,
내가 왜 이런 벌을 받아야 하느냐!‘며 속상해했다.
아뿔싸! 그 엄마는 말이 늦는 딸 걱정보다 자신에 대한 푸념이 더 컸다.
그때서야 나는 그 아이가 wanted baby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물어봤다.
대답은 역시나 아니었다.
성당 다니는지라 낙태를 하지 못했을 뿐, 이 문제로 계속 남편을 원망했다고 한다.
옆에 서 있던 남편은 대역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더 큰 문제는 어린 딸에게 정신적인 학대를 하는 일상이었다.
아이를 미워하며 악담을 퍼붓다가,
다음 순간 아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에 자책하며 울기를 반복한다고 했다.
지난 몇 년간 엄마의 들쭉날쭉한 감정 기복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독毒이 되었다.
아이는 엄마의 눈치만 살피거나
엄마가 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자발적으로 해보려는 게 없었다.
아빠를 부를 때를 제외하고는 스스로 하는 자발어가 없었다.
그저 엄마가 하는 말의 끝부분을 메아리처럼 반복했다.
그 엄마는 매를 들지 않았을 뿐, 심각한 정서적 학대를 하고 있었다.
대학병원에서 반응성 애착장애로 진단을 받았다는데, 모처럼 나는 그 진단에 동의했다.
내가 아이의 손을 잡고 진맥을 하려고 하자
그 어머니는 생뚱맞게도 “인사해야지!”하며 아이를 다그쳤다.
무표정하던 아이는 순간 웃음 가면이라도 쓴 듯 인사했고, 나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
나는 “엄마가 정신과에 가서 검사와 치료를 병행한다는 조건 하에서만 아이의 치료를 맡겠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두 분이 상의해서 결정하십시오.”라고 말했다.
흔히 한약 복용 이후에 아이가 말을 잘하게 되면
어두웠던 가정 분위기가 다시 밝아지고 여유가 생긴다.
그러나 이 사례는 엄마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아이가 나아진다 해도 가족의 삶이 평온을 되찾기 어렵다고 생각되었다.
정신적으로 안정되지 않는 부모들 상당수가
자녀의 치료를 진득하게 지속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꾸 바뀐다. 변덕도 심하다.
아이의 치료를 위해서라도 나는 그 부모에게 단호히 정신과 상담을 권장해야 했다.
다행히 다음 예약시간에 들으니
아이의 엄마는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었고, 상담치료도 병행하고 있었다.
그 뒤 아이는 매달 나아져서 치료 시작한 지 1년도 안되어 또래 아이들 수준에 도달했다.
마지막 진료시간에 아이는 엄마의 품에서 웃고 있었고,
아빠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감사해했다.
아이의 아빠는 사회에선 유능했고, 가정에서는 온화했다.
아이의 엄마 역시 교양 있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아이 엄마는 명문대학 공대를 졸업하고 성취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좋은 집안과 혼사가 이뤄진 후 남들 앞에 체면치레를 해야 했고,
출산이 족쇄가 되어 억지로 가정주부로 살아가면서 대학 동기들을 보며 힘들어했다.
그래서 첫아이 하나로 만족하려고 했는데,
예정에 없던 둘째가 생기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때부터 아내는 남편을 원망하고 아이를 미워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방황하게 됐다고 했다.
첫 진료시간에 내가 워낙 단호하게 입장을 정하라고 하는 통에
남편은 집에 돌아가 아내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했고,
두 번째 진료받으러 오기 전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마지막에 봤던 평안하고 행복한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제 그 소녀도 대학생이 됐을 것이다.
엄마 아빠를 닮았으니 모델같이 아름답게 자랐으리라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