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인가 남편의 생일에 있었던 일이다.
남편은 생일축하카드 대신 편지를 받았다.
큰애의 편지를 읽더니 남편이 조용히 내게 건네주었다.
거기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의무는...... 해야만 하는 일,
성의는...... 할 수도 있는 일.'
편지의 요지는 이랬다.
아빠가 의무에 충실할 뿐 아니라
가족들에게 성의를 다하고 있어서 감사하고 존경한다.
부모역할이 늘 쉬운 것이 아니었을 텐데,
아빠의 이런 태도를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편지 끝에는
아빠의 잔주름과 흰머리가 늘어나서
자식으로서 애석한 마음도 있다고 씌어 있었다.
고등학생이 된 작은애의 편지 역시 며칠 고민한 흔적이 느껴졌다.
두 아이가 평소의 짧고 밝은 카드 대신
조금 더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쓴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50대 중년의 아버지가 어느 순간 그들의 눈에 들어와서였을 것 같다.
하여간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쓴 편지를 읽느라
남편은 돋보기를 코에 걸치고서 부엉이 할아버지가 되었다.
큰애가 쓴 편지의 여운이 그날 밤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나는 의무를 다했을까?
성의도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