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친구 만나러 가는 게 어때서요!
오타쿠의 여름방학
고등학생 둘째랑 내가 여름방학 여행지를 두고 요 며칠 밀당 중이었다.
나는 삿포로나 도쿄를 추천했고, 둘째애는 오사카로 가겠다고 했다.
오늘 드디어 둘째가 본색을 드러내며
"남자 친구 만나러 가는 게 뭐 어때서요!"라는 한마디에
오사카행이 확정되었다.
나는 "아! 정말 너희 아버지도 그렇고, 니도 그렇고... 휴~우.".
나는 두 손 들었다.
다음 주가 여름휴가기간이다.
우리 집 올해 휴가 계획은 다 제각각이다.
남편과 둘째 아이는 오사카로 가기로 했고,
큰애는 2학기의 과제에 초집중해야 할 시기라서 앞으로 2주간은 주말도 없이 집콕이며,
나는 혼자 여고 동창 가족들과 무주의 군 휴양소로 놀러 가기로 했다.
남편이 오사카로 가려는 중요한 이유는 아사히 맥주공장 방문 때문이었다.
맥주광이라 언젠가 내 그럴 줄 알았다.
거긴 미리 예약해야 갈 수 있는 곳이라 말했더니
둘째 아이를 동원해서 일본어로 이름까지 써넣고
이미 방문예약을 했다고 한다.
둘째의 남자 친구 이름은 루피다.
남자 친구를 만나려면 오사카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제 와서 바꿀 수 없다고도 했다.
내가 알기론 작년까지 남자 친구가 루피(명랑만화 원피스의 주인공, 밀짚모자 소년)였고,
올해는 금발 백인 모델 사진을 벽에 온통 붙여 놨길래 루피를 좀 잊은 줄 알았다.
살아있는 인간에게 관심이 옮겨갔나 안도했다.
그런데 저 오덕(오타쿠)이 아직도 변심을 안 했다니!
쇼생크 탈출도 아니고, 내 눈을 감쪽같이 속였어.
하지만 어쩌랴.
저 못 말릴 덕후와 그 원조인 맥주광을 공항에 잘 모셔다 드려야지.
훗날 오사카에서 보내온 카톡을 보니
오덕 둘이 천국에서 아주 신났다.
아저씨는 맥주병 조형물을 껴안고서 입이 벌어졌고,
소녀는 루피네 하우스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