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당황했어

by 뚜와소나무

점잖은 40대 후반 남성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공손하고 예의 바르며 지적인 분이셨다.

고위직 공무원이거나 대학교수님이 아닐까 싶었다.


환자에게 통증의 원인을 확인하는 진찰이 끝나자

나는 그분께 침구 치료실로 가자고 했다.


환자는 순간 당황하면서 “침을 맞아야 합니까?”라고 물었고

나는 숨 돌릴 시간도 주지 않고 명쾌하게 '네'라 답했다.

환자는 안절부절못하더니만 “약만 먹으면 안 될까요?” 물었다.

나는 “약보다는 침이 빠르고, 약을 먹어야 할 정도는 아닙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곤 내가 먼저 일어나 치료실로 앞장서 갔다.

점잖은 그분은 거절을 하지 못하고 침구 치료실로 따라오셨다.


짧은 복도를 걸어가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침이 아프면 얼마나 아프다고 저리 겁을 내나?

내가 오늘 무통 침의 진수를 보여줘야겠군.‘

환자에게 벨트를 풀고 바지를 조금 내리라고 했다.

이 말에 환자의 얼굴이 거의 홍당무가 되어서 귀까지 빨개졌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엉? 내가 여자 한의사라고 저렇게까지 부끄러워하시다니...’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번엔 내가 당황했다.

팬티 색이... 으흠 빨간색이었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빨간 팬티를 입어야 선거에 당선된다거나 귀신을 쫓아낸다는 말이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왜 망사팬티냐고!

나는 허리 아래 팔료혈과 둔부의 환도혈에 아주 수월케 침을 놓았다.

팬티를 어설프게 내릴 것도 없이 그냥 뚫어진 망사 사이로 자침 하면 되었다.

‘이 분의 직업은 무엇이며 아내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무슨 사연으로 저 팬티를 입으셨을까?’ 궁금했지만

나는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그분이 침 치료로 허리가 나아서 다시 안 오신 건지, 부끄러워서 안 오신 건지 모르겠다.


외국인을 진료하면서 당황한 일도 있었다.

한 번은 백인 여성을 진찰한 후 치료실 배드에서 잠시 대기하라고 했다.

내가 곡반을 들고 배드의 커튼을 걷었을 때, 그 여성은 속옷까지 몽땅 벗고 대기하고 있었다.

비록 성문 종합 영어 세대지만 진료에 필요한 몇 마디는 간신히 하는지라

순발력을 발휘해 급히 사태 수습을 하긴 했다.


흑인들을 진료하면서 경험하는 것 중 하나는

일부에선 알코올 스펀지로 치료 부위를 소독했을 때

소독솜에 까만색이 묻어 나온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묻어 나오는 게 없을 때까지 닦아야 하다 보니 몇 번이고 같은 부위를 닦는다.

더러워서 여러 번 닦은 게 아닌데 혹여라도 그분들이 오해를 안 했으려나 모르겠다.

한국인들이 대체로 엉덩이 아래에 살이 접히며 선이 생기는 골반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흑인들은 허리에 살이 접히며 생긴 선이 있다.

그 선이 있는 곳에 혈자리 5개가 있어서

때론 내 손으로 그 선을 펴가며 침을 놓았다.

100이면 100, 더하든 덜하든 모두가 힙업 상태라 엉덩이 아래에 선이 있는 흑인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자신의 몸을 낯선 동양 여자에게 드러내 보이기 힘들어하는 이슬람 남자들도 봤다.

한국에 살면서 그들의 생각에도 변화가 있겠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그 문턱이 여전히 낮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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