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을 알았지만, 몰랐습니다

by 고미

대로변 모퉁이에 있는 부동산사무실을 끼고 돌아 옆쪽으로 가면 옷 가게가 있었다. 유리로 된 기다란 진열장에 걸린 옷들이 늘 칙칙해 보였다. 골목길에 들어앉은 소박한 가게라지만 명색이 옷가게인데 쇼윈도에 영 무심해 보였다. 점심을 먹으러 오가는 길에 이곳을 지나칠 때면 ‘좀 산뜻하게 눈요기 좀 해주지’ 하는 아쉬움이 들곤 했다. 그러던 어느 퇴근길, 궁금한 마음에 사무실 동료와 들어가 보았다.


밖에서 보는 거와 달리 안에는 제법 물건도 많고 고급스럽고 예쁜 옷도 많았다. 피부가 유난히 희고 맘 좋아 보이는 사장님은 이런저런 브랜드를 대면서 옷을 골라 주신다. 알고 보니 이집은 한자리에서 십 년이 넘게 단골 위주로 장사를 해왔고 물건들은 대개 백화점에서 고가로 팔리는 옷들을 뒤로 빼온 거란다. 그런 시스템이 있는지도 몰랐고 그 유명하다는 브랜드도 모르는 나는 그저 가격대가 있구나 소심해졌고 동료는 망설이다 큰맘 먹고 겨울 코트를 샀다. 소재도 좋고 키가 큰 그녀에게 착 감기듯 똑 떨어지는 모양새는 흔쾌히 카드를 내어 주게 했다 .


그리고 한 동안 그 가게는 가지 않았다. 세 명이 근무하던 부동산 사무실을 인수하고 몇 달이 흐르자 그렇게 광풍이 불던 부동산 시장은 차갑게 얼어붙으며 한가한 날들이 많아졌다. 그때부터 옷 가게 사장님이 내 사무실로 놀러 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사람도 많고 바빠 보여 서로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나 혼자 있으니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는 일이 많아졌다. 어차피 지나가다 불쑥 들어오는 손님이 별로 없는 옷 가게라 잠시 문을 닫아도 부담이 없었다. 그래도 굉장히 성실한 분이라 오전부터 늦게까지 가게를 지키고 집과 가게밖에 모르는 분이셨다.


나는 자영업을 시작한 지 겨우 일, 이 년차라 장사를 오래 할 수 있는지 걱정이 많았고 그분은 십여 년을 한자리에서 해 왔었기에 나에게 용기를 많이 주셨다. 경기가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으나 그저 오래 버티다 보면 여유도 생기고 힘이 될 거라고. 남편도 직장 생활을 오래 해오지만 본인이 번 돈으로 두 딸에게 몰래 더해주고 있다며 뿌듯해하셨다. ‘능력 있는 엄마, 저도 하고 싶네요.’

우리들의 가게는 굉장히 부유한 아파트 단지 앞에 있었다. 예전에 어디서 방귀 좀 뀐다는 분들도 있고 대형 평수에 꽤 재력이 있는 분들이 많은 걸 익히 알지만 부동산을 하면서 젠틀한 분들도 많이 뵙고 그렇게 기분 나쁜 경험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옷 가게 사장님의 말은 달랐다. 단골들이 대개 사모님이고 영업상 극진히 대접해 드려서 그런지 본인의 재력을 과시하며 하대하는 분들이 많단다. 게다가 이런이런 옷을 구해달라, 옷값은 다음에 한꺼번에 주겠다, 그거 뭐 얼마 한다고, 그런단다. 그런데 또 그런 사모님이 한 번에 왕창 사시니 절로 또 자세가 공손해지는 게 자영업의 비애였다. ‘부동산은 와장창 못 사서 다행이네.’


사실 옷 가게는 마주 보는 두 칸을 쓰고 있었다. 좀 큰 가게는 옷 가게였고 맞은 편 작은 가게에서는 신발을 팔며 사장님이 두 곳을 왔다갔다 하셨다. 어느 날 신발가게에서 온통 분홍색으로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하며 사장님의 둘째 딸이 나타났다. 장사를 해보라고 돗자리를 깔아준 셈이다. 잡지에서 나온 것 같은 예쁜 감각의 가게 덕에 어두운 골목이 환해지고 생기가 돌았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여전히 경제는 어려웠고 손님은 없고 거리는 황량하고 둘째 딸은 점점 가게에 나오지 않았다. 인테리어 비용은 꽤 많았다고 했는데 다시 사장님 혼자 두 가게를 왔다갔다 하셨다.


나는 적당히 사장님과 친하게 지냈지만 한 가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었다. 언젠가 물건을 같이 사고 내게 돈을 주어야 하는 데 차일피일 미루며 질질 끌었다. 오십만 원으로 금액은 적었지만 셈이 흐린 게 싫었고 그 이후에도 석연치 않게 돈거래를 하는 것 같아 그런 부분에는 단호히 거절했다. 모든 주면서 마음을 표현하는 걸 좋아하지만 돈이 거래되면 마음이 흐린 사람을 알아보게 된다.


옷 가게 사장님은 물건을 직접 사러 가지 않는다. 보따리 장사가 샘플을 잔뜩 들고 오면 카탈로그와 비교해 보면서 색깔과 사이즈별로 수량을 주문한다. 팔릴 만한 거를 귀신같이 쟁여 놓고 사모님들에게 신상이 왔다고 전화를 돌리는 거다. 사모님들은 외상도 하고 몇 달 후 주기도 하지만 도매상에게는 물건을 받자마자 돈을 넣어야 하는 데 겨울옷들은 오리털이니 코트니 금액이 높아서 물건값만 일, 이천만 원이 필요하단다. 거기다 이 집은 창고도 없고 재고도 없으니 안 팔린 옷들은 신상들에 끼워 땡처리하듯 얹어서 다 털어 버린다. 앞으로 벌고 뒤로 밑지는 게 장사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부동산을 떠났다. 그리고 그 사장님도 이제는 그곳에 있지 않다. 하루 대부분을 뜨개질이나 예쁜 인형을 만들던 그 분은, 나보다 더 씩씩하고 웃음이 많아 보이던 그 분은, 마음이 많이 아픈 사람이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 잘못된 일에 계속 잘못을 더 하면 결국은 산산이 부서진다는 것도 그분을 보며 알게 되었다. 그 분을 알았지만 결국 그 분이 그리 되실 줄은 전혀 몰랐다.


흰 눈이 지겹게 내리던 겨울, 쓸어봐야 다시 쌓이는데도 내리는 눈을 맞아가며 연신 가게 앞 눈을 쓸었다. 길이 미끄러워 다칠까 봐 걱정하던 우리는 정작 위태롭게 쌓이는 마음의 짐은 보지 못했나 보다. 그 후로는 내 마음도 건강하기를, 일상처럼 만나는 사람들 누구 하나 아픈 마음이 없기를 바란다. 모든 걸 놓아버리는 극한의 고통이 가득 차기 전, 매번 쌓일지라도 연신 마음의 짐은 쓸어버리며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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