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부부든 적어도 한두 번쯤은 그런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 저 인간 있으니 낫네 다행이다 하는 때가. 배우자란 본디 그런 존재가 아니던가. 자주 짜증을 자아내고 가끔 고마운.
그런데 분명히 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 내 경우(철저히 개인적인 차원) 저쪽 편이 고마울 때와 아쉬울 때가 각각 따로 있다. 둘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고마울 때는 마음에서 절로 우러나와 고마운 것인데 나에게는 유일무이하며 힘이 되고 의지가 되는 때다. 화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매우 걸쭉한 성분으로 힘들 때(잠깐일지언정)그에게 기대어 한 시기를 버텨낼 수 있는 유의미한 존재라는 뜻이다. 한편 아쉬울 때는 그저 추가적으로 필요한 존재 정도의 의미며 훨씬 가볍고 단순한 것이다. 있으면 긴요하게 효과를 발휘하지만 크게 결정적이거나 절대적이고 고유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핫도그와 케첩처럼 다분히 기능적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겠다.
아무튼 상대와 특수 관계의 연을 맺고 함께 살다 보니 그런 순간이 더러더러 있(긴 있)었다. 생애 어느 시기건 몇 년에 한 번쯤은 등이 서늘할 만큼 섬뜩한 일을 마주하게 되는데 가깝게는 작년 여름이 그랬다. 내 경우 성격상 스트레스 대부분이 직장 관련으로 그즈음 괴로움에 시달렸던 것도 갑작스러운 조직개편에 따른 업무 로딩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예상치 못한 환경 변화와 새롭게 쏟아지는 일들에 극도의 공포감을 가졌던 것 같다. 대부분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일들이었는데도 단시간 파악하고 대응해야 했던 터라 압박감이 심했던 탓이다. 그 여름날들 중 하루였다. 한 주를 꼬박 시달렸지만 주말에도 일 생각과 쫓기는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일요일 한낮 잠시마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보려고 다 같이 나와 도심지 쇼핑몰 어딘가에 있었을 때였다. 쇼핑몰 한 편 서점가에서 책을 넘겨보고 있었지만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마음은 점점 불안해지기만 했다. 한 순간 불안이 증폭되었는지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입 속이 말라갔고 두려움이 밀려오면서 지금 당장 사무실 내 자리로 돌아(!)가야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모의고사를 앞둔 수험생처럼 한시바삐 PC를 켜고 모니터 화면으로 한 자라도 더 봐야 할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생각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뭐든 더 알아내 결재를 올리고 빨리 일을 쳐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가슴은 점점 심하게 두근거렸다. 나는 옆에 앉아 있던 그 사람에게 간신히 몇 마디를 뱉었다.
“저기 정말 미안한데 나 지금 바로 사무실에 나가봐야 할 것 같아. 그래야 할 거 같은데 다리가 후들거려. 좀 태워다 줄 수 있겠어?”
가슴이 답답해서 더 이상은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고 계속해서 빨리 사무실로 가야 한다는 생각만 맴돌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으로 뜬금없는 소리였지만 고맙게도 상대방은 바로 모든 것을 알아채(주)었다.
“걱정 마. 바로 차 가져올 테니까 가자. 지금 가서 가져오면 돼.”
더는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한없이 고마웠다. 상대는 그즈음 내가 갖고 있던 스트레스 정황과 사색이 된 얼굴, 숨소리며 목소리나 뉘앙스만으로 모든 것을 알았고 당장 나에게 필요한 것을 두 말 없이 그대로 해주었다. 그야말로 특수 관계 찬스였다.
불과 이년도 안된 일이건만 남은 그날 오후가 어떻게 갔는지, 나는 과연 무슨 일을 얼마나 쳐냈는지 그런 것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쨍쨍하던 여름 한낮 지독한 교통체증을 뚫고 도심 한가운데를 지나던 차 안은 기억난다. 상대의 옆얼굴도. 입을 꾹 다문채 그저 묵묵히 핸들을 잡고 앞만 보던 상대방의 옆모습, 앞유리 너머 먼 지점을 보던 그의 옆모습이 지금도 오롯이 떠오른다. 그 옆모습을 보는 동안 왠지 모르게 조금씩 마음이 놓이던 것. 내 자리로 돌아가 앉기만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했던, 출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조금씩 마음이 놓이던 그때의 기분이 지금도 생생하다. 저 사람이 지금 저기 앉아 같이 있다는 것. 저 수더분하고 자주 멍해 보이는 사람이 같이 가고 있어 다행이다 하던 그런 마음.
차분히 생각해 보면 어느 부부든 건강한 관계라면 능히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줄 것이다. 버겁다 못해 허우적거리는 정상이 아닌 배우자의 모습은 모르면 몰랐지 인지하게 된다면 무엇이든 해줄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언젠가 마주 앉아 술을 마시다 술기운에 고마웠던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 적이 있었다. 그날 서점에서 기억나? 그때 왜 내가 갑자기 사무실까지 태워달라 그랬잖아? 어? 그랬었나? 아 그때. 그냥 뭐 선택이 없잖아. 싫다고 할 수 없으니 후딱 차키 갖고 빨리 나서야 빨리 돌아오지. 아무튼 그날 차 엄청 막혔지. 근데 한 마리 더 시킬 걸 그랬나?
더 이상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고마운 마음은 당일 음주비 납부로 대신하고 자세히 늘어놓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서로 맞춰사는 것이 중요할 뿐 마음과 기억의 간극은 언제나 있으니 구구절절이 늘어놓는 것은 언젠가 다른 자리에서. 오늘은 산뜻하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