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주말 관음_
어느 칼럼에선가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자신을 연출하며 살아간다'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글귀를 읽었을 당시는 직장도, 가정도 없었건만 크게 공감했는데 어느 집단에서건 소속되는 순간 일정 정도 역할을 부여받음과 함께 각자 자신의 캐릭터를 조금씩은 가공해 소화한다는 뜻 같았다. 그 때로부터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거의 매일, 날이 갈수록 더 그 말을 체감하며 실제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직장에서건 가정에서건.
서론이 길었다. 핵심은 집 안에서도 부부는 자의 반, 타의 반 각자 캐릭터를 갖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살펴보면 그걸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질 만큼 나 자신으로 체화된다. 개인적으로는 세상 모든 신혼부부들에게 귓속말을 해주고 싶을 정도다. 결혼 초기 업무분장과 캐릭터 설정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에 남아 있는 시간의 양과 질에 아주 밀접하게 연관된다고. 어떤 일로 싸웠든 사과를 하는 편은 계속 먼저 사과 하고 화를 내는 편은 늘 먼저 화를 내버린다. 그러다 슬슬 농담을 거는 쪽은 또 늘 그렇게 하고 있으며 답답해서건 불편해서건 먼저 대화창을 여는 쪽은 계속 먼저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공통과제로 놓인 버거운 일 앞에서도 상황을 수습하는 쪽과 사후 분위기를 정돈하는 쪽은 이미 대략 정해져 있다. 그러니 차량검사나 관리비 처리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부부에게 변고가 없다면 한 30년쯤은 너끈히 각자 자신의 역할과 캐릭터를 계속하게 될 것이다. 자의 반 타의 반.
부부간 합이 잘 맞는다는 것은 결국 각자의 캐릭터와 역할을 별 불만 없이 수행하고 있다는 것 아닐까. 좋아서 신나게 한다면 베스트고 그럭저럭 할 만하다면 나쁘지 않은 관계, 괴롭고 지긋지긋하다면 때에 따라 갈라서게 되는 것 아닐까.
며칠 전 주말 아침이면 들르는 프랜차이즈 커피점에서였다. 늘 붐비는 곳이라 테이블 간 거리도 몹시도 좁아서 원치 않아도 옆 테이블 대화가 일행처럼 훤히 들려온다. 민망함을 드러낼 수는 없고 약간 관음증을 섞어 남의 대화를 엿들을 수밖에 없는데 그날은 달달부부가 주인공이었다.
부부는 우리와 연배가 비슷하거나 조금 위로 보였는데(도!) 와이프의 어플오더부터 우리와는 매우 달랐다. 우리는 몇 글자 되지 않는 것으로 소통, 주문한다. 찬 거? o. 특수문자 포함 4글자면 충분하다. 365일 찬 것으로만 마시는 상대방은 늘 아-아고 나는 당일 기상과 기분에 따라 차고 뜨겁기를 선택한다. 그 둘이면 충분.
옆 테이블 사모님은 어플에 보이는 메뉴 하나하나 배우자에게 읊어준다. 세상에. 프랜차이즈에 저리도 많은 메뉴가 있었다니. 산미와 바디감까지 곁들여 설명하는 사모님은 목소리는 높은 톤도 아니시건만 과하지 않은 애교가 자연스레 녹아있었다. 생활형 애교라고나 할까. 그뿐인가. 조곤조곤 이어지는 대화는 중요하지도 무겁지도 않은 내용 같건만 대화를 이어가고 싶게 만든다. 자칫 고개를 돌리거나 의자를 끌어 다가갈 뻔했다면 오버인가. 가만히 들어보니 그녀의 생활형 애교는 내용과 형식에 모두 녹아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 200원 비싸지만 자기는 산미 약간 있는 거 좋아하잖아
- 자기가 하는 일인데… 나도 알아야지 알아둬야지
- 지난번 00 떡볶이 맛있다고 했잖아? 오늘도 괜찮지? 그런데 거기 자기 맛있다는 김밥은 이제 안 팔아
상대에 대한 기억과 배려가 섞인 말들. 전혀 피로감 없이 차근차근 이어지는 말들에는 상대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이 있고 그래서 머리를 맞댄 부부의 테이블은 더 온전한 주말 휴식 분위기 같았다. 일체의 피로감 없는 자연스러운 호기심이라니. 나는 배우자에게 언제 마지막으로 그런 것을 가졌던가. 반성까지는 하고 싶지 않지만 스스로에게 반문은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가만 들어 보니 조곤조곤한 말이며 목소리는 와이프뿐이다. 대화 점유율 90프로가 와이프이며 상대는 어어, 그렇지 좋아 정도 대답만 하고 있었다. 아내의 애교를 기꺼이 바라보는 즐거운 감상자 역할.
역시. 행복한 부부는 각자에게 체화된 캐릭터를 즐겁게 수행한다. 오늘도 어제처럼.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