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사이에도 공간이 필요하다. 아니, 부부이므로 세상 그 어떤 관계보다 더 심적, 물적 독립 공간이 필요하다! 자고로 모든 존재는 (암묵적이라도) 합의된 범위와 영역이 있을 때에만 평화와 공존이 가능한 법이며 건강한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우리 집은 부부 둘만 생활한 기간이 길었던 만큼 구역 설정은 꽤 잘 편이었다. 우리는 성향과 성격, 취미와 관심사, 하는 일과 노는 일 등 여러 면에서 서로 다르다. 다른 점들에 대해서도 불편불만을 갖기보다는 독립성에 만족하며 애써 접점을 추구하지 않았다. 즉 의지와 무관하게 물리적, 시간적, 심리적 구역이 단정히 유지되었고 의문이 없었다. 자녀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근 10년 가까이 둘이서 살던 공간에 낯선 존재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녀석은 우리 안에서 나왔고 우리가 만들어 낸 작품인 동시에 또 다른 우리였다. 말 그대로 낯선 존재는 단수이자 복수였다. 저 사람도, 나도 될 수 있었고 그래서 저 사람 구역에 속해야 할지, 내 쪽에 속해야 할지 좀 헷갈렸다. 아니다. 사실 우리는 그때그때 서로 자기 편의대로 하고 싶어 했다. 기저귀를 갈거나 분유를 먹일 때, 그러다 놀아줘야 할 때나 한글이나 자전거 타기를 가르쳐야 할 때, 소아과를 데려가야 할 때는 은근슬쩍 상대 구역에 (미뤄) 두려 했다. 한편 예쁜 옷을 골라 입히고 같이 웃는 사진을 찍고 입을 떼 하는 첫 말을(엄마 vs아빠) 유도하거나, 각자 부모님을 만날 때는 서로 자신의 구역에 두고 싶어 했다. 얼마간 눈치와 기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제 부모가 좌충우돌, 설왕설래, 오락가락, 옥신각신하며 몇 년을 보내는 동안 녀석은 (슬라임 같이) 신기한 방식으로 머물렀다. 처음엔 주어진 구역, 주어진 공간, 주어진 틀 안에 딱 맞춰 있는 듯하더니 곧 여기저기 흘러넘치며 경계를 없애고 둘러엎었다. 아무런 제한 없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제 멋대로 머무르고 제 멋대로 퍼져나갔다.
또 한동안 우리가 그렇게 흘러넘치는 녀석을 대충 수습하고 닦고 막고 퍼 담으며 허둥지둥 대는 사이 녀석은 또 다른 물질, 다른 성분이 되어갔다. 어느 순간 보니 액체에서 고체로 단단하게 여물어 있었다. 녀석은 어리석은 부모가 그러는 것을 팔짱 끼고 보고 있던 것처럼, 저 혼자 여물었다는 듯 제3의 존재가 되어 있었다.(이제 쯧쯧쯧 까지 한다!)
지금도 녀석은 자신이 온전한, 제대로 된 존재라 주장하며 거실 저쪽에서 물끄러미 우리를 본다. 처음엔 완전한 우리, 우리 자신이었으나 이제는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는 자신도 영역을 인정해 달라 주장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관계, 자신의 성향, 성격을 (더욱) 단단히 갖추고 자신도 한 사람으로 온전한 한 영역을 인정해 달라는 직간접적 의사를 분명히 밝힌다. 수시로.(저러다 곧 선전포고도 하겠지.)
그렇게 우리는 구역 정리를 당했다. 스스로 저질렀으니 당했다는 말보다는 벌였다고 해야 타당하고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니 구역‘정리’보다는 구역‘침해’가 정확하겠다. 우리는 침해는 당했으되 흔적은 남아 있는 각자의 영역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멍한 시간을 보낸다. 또 가끔 잔존하는 영역을 베이스로 조금이나마 넓혀보겠다고 반항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무의미하고 헛된 것을 알며 잠시잠깐에 불과하다는 것도 안다. 지금은 그저 미래 어느 날 되찾게 된 내 영역이(그리고 상대방에게도) 폐허는 아니길 바랄 뿐이다.(^^감사)
(시작은 분명 부부였는데 쓰다 보니 다른 방향으로 흘러버렸다. 씁쓸하지만 현실이라 별 수 없었다고 변명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