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지금 우리는 무첨가 맛_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해병대도 아니건만 우리는 언제부터 ‘의리로운’ 사이가 되었을까? 변해버린 어떤 것들은 그리움이나 회상, 떠올려 씩 웃는 추억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부부의 시간에도 분명 더께가 쌓이고 조금씩 관계는 변한다. 상대방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만 3년쯤이 지나면서부터 톤이 달라지는 것을 감지했다. 파스텔톤에서 RGB톤으로. 남녀의 시간에서 부부의 시간으로.
남녀의 시간이라니. 지금으로서는 ‘그런 것이 있었더랬다’ 정도의 느낌만 간신히 남았지만 우리에게도 분명 그런 시간이 존재하긴 했었다. 구한말보다는 가깝고 응4, 응8의 시간보다는 조금 먼 느낌. 남녀의 시간이었을 때는 어땠던가? 퇴근길 집 앞 지하철역에 내려서면 전신거울로 스스로의 매무새를 가다듬었고 밖에서나 안에서나 집 현관문을 열 때면 약간의 설렘이 있었다. 하지만 듣던 대로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결혼 만 3년쯤을 기점으로 남녀의 시간은 남매의 시간이 되었다. 신혼부부가 동기간이 된 것일까. 그 시기 우리는 서로 우위에 서보겠다며 아웅다웅했고 사소한 것에도 서로를 견제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또 조금 시간이 흐르자 그런 것이 둘 모두를 지치게 하고 서로를 갉아먹을 뿐임을 깨달았는지 나란한 동료나 한 팀쯤으로 모드는 전환되었다. 그리고 또 얼마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리고 지금, 의리의 시간이다. 맛으로 표현하자면 오리지널맛. 어떤 MSG도 첨가하지 않은 기본 맛이지만 순수한 맛이나 순한 맛은 아닌. 어쩌면 지금의 모드가 시그니처 맛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 집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어떤 맛.
이제 우리에게는 이미 함께 보낸 시간이 충분해 서로에 대한 누적된 데이터는 차고 넘친다. 더 이상 서로를 테스트하거나 가늠하는 것은 불필요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변수가 되지 못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외적 변수들이다(근로소득으로 삶의 기반을 유지하는 생활인이라면 대부분 느끼지 않을까?) 우리의 변수는 대출 이자나 올해 물가, 주택 가격이거나 계약갱신 청구권, 계약연장이나 종료 같은 것들이다. 때로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자녀의 교육과 성장, 원가족을 포함 가족 모두의 건강이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그런 외적 변수에 대응하는 것에 분주했다. 급하게 집을 팔아(치워)야 했고 새로운 곳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으며 하루아침에 한쪽이 일자리를 잃기도 했고 자녀가 듣기만 하던 질병으로 진단받기도 했다.(치료비가 보험적용이 어렵다는) 분명 하루하루 세상 어디서나 일어날 법한 흔한 일이되 우리에게는 ‘사건’이었던 일들을 허겁지겁 어찌어찌 그럭저럭 간신히 쳐내듯 대응했다. 그러느라 분주했고 어쩌면 시간이나 금전적 여유보다 정서적 여유가 더 부족했다. 서로에 대한 관심과 에너지, 살뜰한 돌봄은 거의 불가능했으며 새로운 외적 변수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상대방이 중요했다. 상대방이 가진 아주 조금의 의지나 긍정, 생기 한 점에 위로와 힘을 받기도 했고 더 힘들기도 했다.
지금도 외적 변수들은 산재해 있으며 이제 언제든 우리를 덮쳐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만큼 두려움이 생겼고 다음번에는 또 무슨 수로 어떤 에너지로 버티고 넘길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한다. 상대도 그런 마음일까. 간간히 묻지만 뾰족한 답을 들을 수 없다. 그저 미뤄 짐작할 뿐이다. 함께 술잔을 기울이다 둘 다 눈꼬리가 처져갈 때쯤 유독 지쳐 보이는 옆모습에서. 늙어가는구나 하며. 혹은 일주일에 한 번 함께 유일신 앞에 나아가 청하는 날,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채 동그랗게 웅크린 두툼한 등에서 어떤 간절함을 느낄 때가 있다. 두려워도 애쓰고 있구나 하는 인간적 마음이 잠시(!) 스친다. 그런 그런 순간들이 지금 우리의 시간을 메우고 있다. 의리라는 좀 투박한 것으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