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일기 속 보석 같은 순간들
[생후 50일]
아이가 새근새근 자다가 가끔씩 낑낑 거린다.
조금 있으면 방귀가 뽀보봉 나온다.
방귀 소리도 귀엽다.
모유 수유할 때 입을 크앙 벌리고 달려든다.
한 마리 새끼 맹수 같다.
[만 3세]
차를 타고 어린이집 등원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카시트에 얌전히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해?" 물어보니 돌아오는 대답
"엄마 생각하지."
아들의 심쿵 멘트에 엄마는 또 아들한테 반했다.
아이가 저녁밥을 먹다가 눈을 꿈뻑꿈뻑했다.
눈꺼풀이 무거워 금방이라도 감길 것 같았다.
낮잠을 안 자서 졸렸나 보다.
잠을 참으며 밥을 먹다가
"엄마"하고 부르길래
자러 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아이가 한 말은
"나 놀고 싶어."
정말 졸린 와중에도 놀고 싶었나 보다.
언제나 놀고 싶은 아이가 귀여워 남편과 함께 웃었다.
[만 4세]
아이가 자작곡을 만들어 불렀다.
햇님 반짝 솟아오른 날
친구들도 자고 있어서 아주 편안해 보여
우리는 다 같이 엄마 아빠를 생각해 봐
우리들도 다음날도 행복하게 지낼 거야.
아이와 '화'가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가 화나면 기분이 좋아지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엄마의 화를 풀어주겠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화가 나는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아이가 일부러 엄마를 화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는 서툴러서 그런 것일 뿐
마음은 언제나 엄마가 기분이 좋길 바라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아이가 말했다.
"엄마가 내 마음을 제일 잘 알아줘."
뿌듯하고 감격스러웠다.
그동안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나는 앞으로도 너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공감하기 위해 노력할 거다.
'블러드문'이 뜬다는 날이었다.
개기월식으로 달이 지구 그림자에 가려지면서 붉은색으로 보인다고 했다.
집에 있는 온 창문을 돌아보며 블러드문을 찾아보았지만 어디에서도 달이 보이지 않았다.
"엄마! 나가서 달을 찾아보자!"
이미 씻고 잠옷도 입었고 이제 곧 자야 할 시간이었지만 겉옷만 챙겨 입고 나갔다.
달을 찾으며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아이는 달을 찾겠다며 신나게 뛰어다녔다.
블러드문을 보겠다는 목적보다는 잘 시간에 밖에 나와서 밤산책을 한다는 것에 신이 난 거였다.
달은 구름에 가려져 결국 보지 못했지만 달보다 예쁜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만 5세]
아이가 유치원에 다녀오면 항상 꼬깃꼬깃 접은 종이를 준다.
펼쳐보면 왕관을 쓰고 드레스를 입고 날개를 달고 있는 공주님이 나온다.
유치원에서 엄마를 그린 거라고 한다.
엄마를 그린 그림을 모아보니 수십 장이 되었다.
유치원에서도 엄마 생각을 이렇게 많이 하는구나.
난 정말 아이에게 사랑받고 있구나.
[만 6세]
아이와 같이 창틀을 닦았다.
걸레로 구석구석 열심히 닦는 아이가 기특했다.
"내가 같이 해서 다행이다. 엄마 혼자 이 많은 창을 닦으려면 얼마나 힘들었겠어."
참 다정하고 자상한 아들이다.
[만 7세]
아이의 볼에 뽀뽀를 하면 아이는 입으로 쪽 소리를 낸다.
아침에 깨울 때도 뽀뽀를 하는데
잠이 덜 깨서 비몽사몽 한 와중에도 꼭 뽀뽀를 받을 때마다 쪽 소리를 낸다.
"엄마가 뽀뽀할 때마다 쪽 소리 안 내도 돼."라고 말했더니
"안돼. 엄마 뽀뽀에 답해줘야 돼."라고 했다.
진짜 사랑스럽다.
아이가 태권도를 다녀오자마자
"엄마 따뜻한 물 줄까?"라고 물었다.
갑자기 웬 따뜻한 물인가 했지만 "응!"이라고 대답했다.
아이는 부엌에 가서 달그락달그락하더니 컵을 가져왔다.
아이가 건넨 잔에는 코코아가 담겨 있었다.
태권도장에서 코코아 가루 스틱을 줬는데 엄마한테 주려고 가져온 것이었다.
같이 마시자고 하니 자기는 태권도장에서 먹었다며 엄마 마시라고 했다.
따뜻하고 달달한 코코아 한 잔.
아이는 언제나 나에게 감동을 준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힘든 순간도 많지만 이렇게 반짝반짝거리는 보석 같은 순간도 많다.
이 기억이 모든 걸 이겨낼 힘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