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
오늘은 4월 15일 국회위원 선거일이다.
명확한 정치적 색깔과 지지하는 정당의 존재 유무는 선거 참여율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나는 한마디로 말하면, ‘무색’, 비록 확고한 정치적 색깔을 가지고 있는 부모님, 친지 분들이 있고, 주위에 나는 이 정당을 지지한다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난 여전히 고집스럽게도 정치색이 ‘없음’을 내세운다. 따라서 선거일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누구를 뽑을 것인가’였는데, 비뚤어진 요즘 내 상태는 이 고민을 ‘투표를 해야 하는가’로 치환해 버렸다.
며칠 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잔뜩 취해 나는 이번 투표의 기권표를 행사하겠다 떠들었다. 물론 마땅한 근거는 없었다. 근래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내 태도 탓이 가장 컸지만, 나는 기권표도 나의 권리다 라는 말도 안되는 근거를 내세우며 흑역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소주 맥주 와인의 콜라보 숙취와 함께 나의 가벼운 발언을 후회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투표를 해야 하는가.
먼저 민주주의의 실현이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국민이 선택한 대표자가 기능인을 선발하여 국민에게 봉사하고, 경쟁적 정치조직인 정당이 만들어낸 정책대안 중 하나를 국민이 선택하는 정치체제이다.” 대표자든 정책이든 선거를 통해 선택되기 때문에, 투표율이 높을수록 국민의 의사에 가깝게 된다. 반대로 투표율이 낮아질수록 국민의 의사에서 멀어지게 된다. 민주주의는 ‘투표참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민주주의 유지다.
이상적인 ‘대표자 선출’과 ‘정책결정방법’은 국민 대부분의 의사가 표출되고 집약될 수 있는 선거제도에서, 국민 대부분이 투표하여 대표자와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다. 즉, 모든 이념, 지역, 세대를 대변할 수 있는 대표자와 정책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최선은 이념, 지역, 세대의 비율에 비례해서 투표가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굉장히 낮고, 현실 역시 그러하다. 투표율이 낮을수록 특정한 이념, 지역, 세대의 투표가 낮아지거나 높아지게 된다. 대표자와 정책은 높은 투표율을 보인 측이 결정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출현하는 결과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독재 정치인데, 이러한 사태를 부정하고 해결할 방법은 마땅히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모든 나이를 통틀어 현저히 낮은 20대의 투표율이 문제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국가 정책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특히 20대의 가장 큰 걱정인 등록금, 취업 그리고 임금에 관해 많은 영향을 받고 살아간다. 이러한 문제는 기성세대들이 풀 문제가 아닌 우리 20대가 풀어야할 문제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특정세대의 의사가 과다하게 반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즉, 20대의 투표율이 높아져야 모든 세대의 균등한 의사가 표현되고, 우리의 권리를 주장할 자격이 주어진다.
끝으로 오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허지웅 작가님의 투표 독려 글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다가올 세상을 망치는 건 적의 말이 아니라 동지의 침묵입니다.
우리 꼭 투표하고, 다음 세상 앞에 떳떳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