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떠한 현실에 살고 있을까?
우리는 어떠한 현실에 살고 있을까?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떠오른 생각이다. 현실의 사전적 의미는 우리가 사는 세계, 우리가 인식하는 한계이다. 또한 이상과 허구 그리고 가상과 반대인 개념으로 쓰인다. 현실이라는 단어는 철학에서 논하는 ‘실제’와 개념이 비슷하다. 즉, 믿고 싶거나 믿는 것과는 상관없이 실존하는 것을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전적 의미만을 봤을 때, 현실은 지극히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셜록 홈즈의 작가 코난 도일이나, 노벨 문학상 수상자 마르케스가 말했듯, 현실에는 소설가들이 창작물에서도 감히 그리지 못하는 기막힌 일들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극명하게 대비시켜 설명할 수 있을까?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현실이란 내가 사는 환경과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따라 긍정과 부정이 나올 수 있는 그야말로 난해한 공간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철자의 순서만 다른 두 쌍둥이 루카스(Lucas)와 클라우스(Claus)다. 1권에서 이 둘은 쌍둥이 형제로 나오지만, 2권에서부터 이들의 존재에 대한 혼란이 시작된다. 2권에서는 클라우스를 루카스가 만들어 낸 허상이라 하지만, 3권에서는 클라우스를 실존하는 존재로 내세운다. 끊임없는 부정과 계속해서 바뀌는 시점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많이 혼란스럽기도 했다. 결국, 마지막에는 두 형제의 자살 암시로 책은 끝을 맺는다.
작가는 쌍둥이 형제의 삶을 주된 이야기로 내세우며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1권에서 묘사되는 쌍둥이 형제의 어릴 적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유년시절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잔혹한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지켜내며 살아간다.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유년 시절을 고의적으로 꼬고 부정하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2권에서는 국경을 넘어간 클라우스를 뒤로하고, 루카스의 평범한 일상과 주변 사람들의 인생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주변에는 다양한 사연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 각자의 삶과 사연은 현실에서 일어나기에 당혹스럽고, 황당해 보이지만, 충분히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들이다. 이런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평범해진 루카스의 삶을 대조적으로 묘사하고자 하는 듯 하다.
3권에서는 부정과 부정의 부정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금까지 묘사되었던 루카스의 삶을 부정하고 또 그것을 부정한다. 가장 읽기 힘들었고,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없는 부정을 통해 작가가 도달하고자 했던 곳은 어디일까. 결론은 없다. 비록 쌍둥이 형제의 자살로 끝을 맺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변해가는 삶 자체를 묘사하고자 했던 것 같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 것 없는 책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나.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 지나갈 뿐이네.
타인의 삶을 부정하기는 쉽지만, 자신이 살아온 삶을 부정하고 이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지금껏 자신이 상상해 온 이상을 부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에는 여러 번 자신을 부정하고 비판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 이 시기를 마주보고 부정하며 자신을 바꿀 것인가는 스스로의 판단에 달려있다.
현실 속 사람들은 모두 안정적인 듯하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 다 보면 모두가 결핍과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를 용기 있게 마주보는 사람들은 매우 적은 듯하다. 오히려 이를 회피하고 안정적이고 온전한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 안에서 살아 가고자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이상일까. 정답은 모르겠지만, 끊임없는 부정과 비판을 통해 나도 책을 쓰는 인생을 살아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