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결혼_톨스토이

삐뚤어진 여성관에 대하여




"창백한 아내의 얼굴을 보고서야 나는 내가 한 짓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내가, 내가 말입니다. 나 때문에 그 일이 일어났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생기 있고 바삐 움직이던 따뜻하던 아내가 이제는 움직이지도 않고 밀랍처럼 창백하고 싸늘하게 식어버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제야 나는 결코 그 무엇으로도 속죄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걸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 이해하지 못합니다."


본문 中



고전을 읽으면 격정적인 체험의 종말을 마주하게 되고, 그것이 내 인생이 아니라는 것에 매번 안도를 느낀다. 톨스토이의 '결혼' 역시 막다른 결론까지 이르렀을 때 어떤 감정으로 괴로운지 충분한 간접체험의 소설이다.  


톨스토이의 '결혼'은 다르게 자라온 남녀가 결혼이라는 결합을 통하여 새로운 인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독자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톨스토이는 '결혼'이라는 소설을 통해 1880년대 러시아의 도덕적 타락성을 고발하고 있었다. 소설은 시작 전 신약성서 4 복음서 중의 하나인 마태오복음 구절을 인용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품는 사람은 벌써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한 것이다.
'마태오 5:28'



이 소설은 중년 이후 비관적으로 변한 톨스토이의 인생관과 여성관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사는 동안 불화의 연속이었던 아내와의 고통스러운 관계가 자전적으로 실렸다고 알고 있다. 소설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1인칭 화자의 말이 아닌 여행객인 그에게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독백에 가까운 고백이야기다. 판결내용처럼 질투심에 불타 아내를 살해한 남자의 이야기처럼 이해할 수도 있지만 요지는 질투 속에 담긴 진정한 결혼생활의 의미를 진지하게 묻는 내용이다. 


귀족인 가해남편 '포즈 드니이 셰프'는 결혼 전 적당히 쾌락을 즐기고 방탕을 즐기며 올바르지 못한 여성관을 갖는다. 그런 그는 결혼만은 순결한 지주의 딸을 고른다. 그러나 신혼 초부터 아내와 사소한 갈등을 일으키면서 결혼의 회의를 갖게 된다. 둘은 잦은 싸움을 하게 되는데 성관계를 통해 화해를 하는 것을 반복한다. 편집적인 상상과 아내의 대한 악한 감정은 점점 누적되듯 심해지는 와중에 아이들이 하나 둘 태어난다. 아이들이 많아지니 아내는 육아로 지쳐가고 더 이상 아이를 가지면 위험한 상황에 이른다. 의사의 처방으로 피임이 결정되자 아내는 화사한 얼굴로 피어난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보며 두려움과 질투를 느낀다.


아내는 예전에 치던 피아노에 취미를 되살리게 되고 어느 날, 바이올리니스트가 나타난다. 남편은 급속도로 위험한 상상에 빠지게 된다. 결국 남편은 아내가 부정을 저질렀다는 최악의 상상의 결말로 아내를 살해한다.


다시 말하지만, 남자의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 결론을 보여주는 소설이 아니다. 


생판 모르던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해서 결혼을 하게 되는데, 독립적인 존재라는 가치를 잊고 어느 순간 길들이려 드는 오류가 빚는 결말을 처참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칼로 아내를 찔렀을 때 죽인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시작하지 않을 때 이미 아내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삐뚤어진 여성관(아내를 오랫동안 데리고 놀 창녀인 요조숙녀로 취급)이 그의 불행의 문제의식이었다고 본다.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 처절한 울부짖음은 더 안타깝게 읽히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홍학의 자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