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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죄와 벌에 대한 정의를 묻고 싶다


형제들이여. 사람들의 죄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의 죄 속에서도 인간을 사랑하십시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사랑과 닮은 사랑이며 지상 최고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하십시오. 세상 모든 것들을, 모래 한 알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나무 잎사귀 하나, 하느님의 햇살 하나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 '조시마 장로' 죽기 일주일 전 설교 中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이란 이 두꺼운 책은 책장에 꽂혀 몇 년을 거듭나다 퇴직 후에야 완독을 하게 되었다. 나에겐 너무 미안한 책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유작이 된 이 책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활기차게 읽기에는 사실 다소 힘든 책임엔 분명하다. 여백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불필요하게 장황한 대화체에서 줄거리의 흐름을 잡아 이해하기엔 독자의 배려가 너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초반의 불편을 적응하고 극복하다 보면 다행히 어느 순간 몰입은 된다.


이 고전의 유명세에 따라 줄거리를 미리 알고 읽는다면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시대적 철학 그리고 종교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두께와는 달리 이 고전의 친부 살인사건은 재판과정을 제외하면 사흘간의 짧은 상황을 펼쳐놓고 있기 때문에 긴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은 러시아 18세기 말엽에서 19세기 초기로 '표도르 카라마조프'가(家)로 시작된다.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란 인물에 대한 설명은 해두고 시작해야 좋을 것 같다. 그는 러시아 지주계급(잡계급)으로써 서유럽 문명의 영향(수박 겉핥기식)을 받아 지극히 부정적이고 시니컬한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인생 자체를 공허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인생의 유일한 목적은 육체적 쾌락이라 생각한다.


그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을 모았다. 부잣집 딸을 꼬여내어 뺑소니결혼을 하고, 그녀의 재산을 가로챈다. 이후로도 집요하게 육욕을 추구하며 살았고, 나이 쉰 살이 넘어서도 딸 같은 요염한 '그루센카'에게 반해 첫째 아들 '드미트리'와 추악한 싸움을 벌이는 데 서슴치 않는다. 아들 드미트리의 젊음에 대항하기 위해 3천 루블이란 돈으로 그녀를 유혹한다. 그는 첫 번째 부인에게서 장남 '드미트리'를 낳았고, 이후 두 번째 부인에게서 둘째 '이반'과 '알료샤'를 낳았고, 길거리 백치여인에게서 '스메르자코프'를 낳는다. 사생아인 '스메르자코프'는 정신과 육체가 모두 불건전한 인간으로서 심한 간질병환자이고 '표도로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를 죽인 범인이다.


첫째 아들 '드미트리'는 퇴역 육군 중위로써 어머니 유산문제로 아버지와 늘 대립하다가 '그루센카'라는 여인을 두고 아버지와 추악한 쟁탈전을 벌인다. 드미트리는 아버지로부터 분방한 정열을 물려받아 술과 방탕에 빠져 살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항상 고결함과 비천함이 대립되어 싸우고 있다. 그는 고매한 이상과 저열한 타락의 심연의 양쪽으로 괴로워하면서도 결국 충동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는 술김에 아버지를 두들겨 패기도 하고, 죽여버리겠다는 장담까지 하면서 그녀의 약혼녀 '카체리나'에게 범죄계획이 담긴 편지까지 보내는 실수를 벌인다. 결국 그 편지로 드미트리는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


소설의 초반에 나오는 드미트리의 약혼녀 '카체리나'는 아버지의 명예를 지켜준 그에게 약혼으로써 자신의 품위를 지켰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여인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한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지적인 동생 '이반'을 사랑하고 있다. 그녀가 제시한 편지로 배심원들은 드미트리를 범죄자로 확정 짓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녀는 법정에서 이반의 환각증 발작을 보면서 이반의 사랑을 대변하듯 역설적으로 행동한다. 그때까지 변호사의 훌륭한 변호로 유리한 상황을 역전하는 증거품을 제시한 셈이다. (변호사의 마지막 변론은 감동적이어서 청중의 대단한 환호를 받는다_아래 인용문 참조) 개인적으로 감탄한 부분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나를 낳은 것은 나를 위해서일까? 아버지는 분명히 그 욕정의 순간에, 어쩌면 술에 잔뜩 취한 그 순간에 내가 누구인지 알기는커녕,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는 상태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다만 나에게 음주벽 만을 물려주었으며, 그것이 아버지가 나에게 준 은혜의 전부인 것이다. 아버지가 나를 낳고도 한평생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내가 왜 아버지를 사랑해야만 한단 말인가?> 하고 자식은 생각할 게 분명합니다.
(중략)
그렇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죽인 것은 친부 살해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살인은 일종의 편견에 의해서만 친부살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살인이 실제로 일어났었을까요?




환호 같은 변호에도 드미트리는 친부살인으로 확정받는다. 사실 둘째 아들 '이반'이 사실상 친부살인사건을 다룬 이 소설의 중심에 우뚝 서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당시 러시아 지주계급의 정신적 니힐리즘과 무신론의 사상으로 점철된 인물로 상식적인 인간으로서의 본질을 찾아가려는 투쟁자로 보이기도 한다.


그는 자기 힘으로 대학을 졸업한 세대적 대표지성인으로 나온다. 그는 서유럽적 사상으로 당시의 신비주의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독자적 이론을 고집한다. 즉 '모든 것이 허용 될 수 있다'는 결론이다. 그의 성향을 제대로 밝혀준 '대심문관'이라는 자작 서사시는 예수교 교도들과 심문관들은 더러운 물질적 행복만을 위해 단결하고 있다는 비아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대심문관'의 이야기는 이 소설의 압권으로 인상이 오래 남는다. 그리스도가 다시 지상에 나타나고 기적을 일으키고 사람들은 환호하지만 대심문관이 화형을 결정하는 과정과 그리스도의 침묵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이반은 신의 불사를 부정하고 이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허락된다는 독자적 이론을 갖게 된다.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대심문관 이야기' 속에서 빛난다. 


결국 그도 형과 같이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고 있었고 증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이론인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하인이자 이복동생인 스메르자코프에게 맹목적으로 흡수되었고 아버지 표도르를 살해하게 된다. 살해사건은 소설 말미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데, 어떤 범죄추리소설보다 흥미롭다.


소설을 읽다 보면 둘째 아들 '이반'의 무신론을 묘사하는 변증법적 부정론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이론은 서유럽 사상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그에 대한 교회의 반박은 어떤가. 만약 현실의 어둠을 밝혀줄 답은 오로지 교회라는 제시만을 강요했다면 궁색했을 것이다.


셋째 알료샤는 이 소설에서 천사같이 깨끗하고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는 수도원생활을 선택하며 자신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들어간다. 그곳에서 '조시마 장로'에게 큰 영감을 받는데, 조시마 장로의 설교는 둘째 아들 이반의 무신론에 대한 반박으로 충분하다 느끼게 한다. 그는 고행자형인 수도사를 거부한다. 



하느님의 백성들을 사랑하십시오. 우리가 이곳에 몸담고 담장 안에 은거한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보다 더 성스러운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로 이곳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이곳에 몸담았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이 모든 세상 사람들, 이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일보다 못하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중략)
저마다 자신들의 가슴에서 멀어지지 말며, 저마다 끊임없이 참회를 하십시오. 자신의 죄를 자각하고 단지 참회할 뿐 그것을 두려워하지는 말며, 하느님과 계약을 맺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의 죄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 죄 속에서도 인간을 사랑하는 말씀이다.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하라는 설교는 종교적이면서도 종교적이지 않다. 그 인간의 내면에서 감내하며 이겨내는 고통은 '양심'이라는 결론이다.


천사 같은 알료사에게 충동적이고 방탕한 큰 형이 마음을 연 것도, 이반의 무신론의 자작시를 들려주게 만드는 열린 따뜻한 마음씨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며 희망을 놓지않게 하는 기운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조시마 장로가 알료사에게 강조한 이야기는 소설의 첫 장에 독자들이 잊지 않도록 기록되어 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 복음서 12장 24절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포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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