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는 누가 죽였을까
- 아루바라는 섬이 있어요. 네덜란드에 있는 곳인데, 거기에 가면 홍학을 볼 수 있대요. 다른 곳에서도 볼 수는 있는데, 거기서는 홍학한테 직접 먹이를 줄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대요.
- 가보고 싶어요. 같이
본문 中
여름철엔 잠시나마 더위를 잊게 해주는 스릴러물 독서가 최고다. '정해연'이란 작가는 처음 이 소설로 만났는데, 스토리 구성이 단단하고 흡입력이 강해 한 번에 다 읽혔다. 소설을 다 읽고 책날개를 읽으니 '한국 스릴러 문학의 유망주'라고 적혀있다. 스릴러물의 구성을 꽤 차고 있는 듯한 능력 있는 작가라 생각이 들었다. 한 마디로 재미있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 소설의 개인적인 느낌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스토리 구성과 비슷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독자라면 나와 아마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사실 정해인 작가가 이번 소설에서 공들인 트릭(살인 추정시각)은 히가시노의 책을 많이 읽었던 독자라면 무조건 의심하고 시작했으리라 생각이 든다. 살인사건의 최대 반전이자 열쇠기 때문이다. 의심하고 읽을 줄 알고 의식적으로 영리하게 살짝 비튼 저자의 스토리에 웃음이 났던 것 같다. 독자들의 심리를 제대로 아는 노련한 작가다.
또한 보통 스릴러물에서 책 제목은 저자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임팩트 강한 힌트기 때문에 추리를 할 때 항상 염두에 두고 읽어야 재미있다. 왜 '다현'은 홍학에 이리 집착했지? 또 홍학의 자리라니? 대놓고 힌트를 줬던 부분이었는데 나는 너무 어이없이 당해버렸다.
추리 스릴러물 소설은 완전범죄물처럼 여겨져 염려될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현실감은 떨어지기 때문에 흥미 위주로 읽기에 적합하다. 작가의 상상력을 즐기는 시간으로 충분한 것이다. 또한 소설의 말미는 항상 범죄에 대한 응징과 현실적 비판이 확실하기 때문에 교훈도 많다.
소설은 한 남자가 사체를 호수에 유기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죽은 열여덟 살 '다현'과 유기한 '준후'는 부적절한 관계의 맺고 있는 사제지간이다. 다현이 죽은 그날도 야근하는 준후를 찾아온 다현과 교실에서 관계를 갖었다. 당직인 경비원 '황권중'의 순찰에 놀란 준후는 다현을 내보내기 위해 경비원과 시간을 잠시 보내게 이른다. 충분한 시간을 벌었다 생각한 뒤에 교실로 돌아온 준후는 천장에 목을 매고 알몸으로 죽어있는 다현을 발견한다. 발 밑에 책상이나 의자가 없는 것으로 보아 타살이 분명한 상황이다. 사랑하는 다현이었지만 누가 봐도 의심받게 되는 상황에 그는 시신을 유기하기에 이른다. 시작이 이렇게 놀라울 정도로 숨 막히게 진행된다.
놀라움을 진정하고 독자들은 이 사건의 서두에 펼쳐진 단서들을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조각내서 읽어내야 마지막에 작가의 트릭을 피할 수 있다는 미션을 받게 된다.
준후는 현재 마흔다섯 살로 젊은 시절 미남이란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묘사되는 것으로 보아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선생이란 생각이 든다. 다현이란 학생도 그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는 이혼을 거부하는 아내와 별거 중으로 외진 지역학교로 내려와 혼자 지내고 있다. 준호는 다현의 죽음에 누구보다 가슴 아파한다. 하지만 점점 살인자로 좁혀오는 수사망에 최대한 이성적으로 자신의 알리바이를 만들고 감추며 고진분투하는 모습은 안타깝게 읽힌다.
이 소설은 읽게 되면 누구나 쉬지 않고 끝까지 내달리며 마지막장을 덮게 될 거라 장담한다. 또한 요소요소 한국 정서를 이해하는 흐름들이 일본소설과는 다르게 녹아있어 쉽게 몰입이 가능해서 좋았다. 죽은 아이의 고통은 하나의 이야기 속 가상인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소설은 가족 구성원의 관계개선에 대한 노력과 책임이 주는 파급력을 생각게 한다. 삶을 우리가 쉽게 놓지 않는 이유와 놓아 버리는 이유는 어쩌면 하나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범죄자와 범죄를 끝까지 쫓는 수사원들의 집요함, 그리고 그 장막 뒤에 숨은 사연들이 기가 막히게 퍼즐처럼 연결되다가 풀린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은 오픈하진 않겠다. 고민한 작가에 대한 예의다.
다만 내가 거론하고 싶은 것은 '준후'라는 인물이다. 아이가 있는데도 아내와 이혼을 간절히 원했고 나이차이는 있지만 '다현'이란 제자를 사랑한 그였다. 굉장히 똑똑하고 이성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동정했다. 곧 있으면 성인이 되는 다현이란 학생의 나이도 연민에 한 몫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독자의 감정을 예리하게 이용했다. 나는 그 점이 대단히 놀라웠다. 마지막 변호사를 바라보며 생각하는 그에게서 그동안의 그를 바라봤던 나의 생각들의 추리가 어리석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음, 하고 그는 생각에 잠겼다. 범죄자에 대한 혐오나 사망한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 같은 것은 없었다. 마치 장난감을 다루다가 망가뜨린 것에 대한 고민을 다루는 것 같았다. 자신과 비슷하다고, 준후는 느꼈다.
소설의 최대 악인은 준후였던 것이다. 오로지 자신만의 명예를 지키려는 병적인 자기애적 인격장애자인 소시오패스였다. 그런 인물을 믿고 변호사를 고용한 아내나 그를 끝없이 갈망한 다현이나 모두가 불쌍할 뿐이다.
결국 나는 그렇게 많은 추리물을 읽었으면서도 내 힘으로 제대로 맞춘 추리는 하나 없는 것으로 끝나 버렸다. 하지만 기분은 좋다.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탄탄한 스토리를 만드는 좋은 작가를 만나 참 반갑기 때문이고 큰 소득이란 생각이 든다. 안 읽으신 분들 있다면 이번 여름에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