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 평범하게 불행하다
'이 세상에 쉬운 삶은 없어요. 자신을 특별히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우린 모두 다 평범하게 불행한 거예요.'
본문 中
최근 종영된 화제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 원작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원작이 있는 스릴러물은 영상물로 가급적 보지 않는다. 유명 연예인이 등장하는 이번 화제작은 워낙 입에 오르기도 해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활자로 방향을 틀었다. 다행히 드라마는 광고물 대하듯 본 것이 다였기 때문에 지장 없이 읽혔다.
책은 작가의 의도가 분명히 읽혀 나는 좋아한다. 가공하지 않고 독자와 대화하기 때문이다. 너는 어떻게 이 사건을 바라보니? 라며 사색을 툭 던져놓고 떠나는 여행객 같다고나 할까.
소설은 '주란'이 살고 있는 마당 있는 집에서 나는 시체 냄새와 상은의 남편 '김윤범'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서두에 김윤범은 아내 '상은'이 스스로 죽였다고 시인한다. 독자들은 대충 감을 잡으며 김윤범과 마당에서 발견된 시체와의 관계설정이 뭘지, 그리고 삶의 거처가 극과 극인 '상은'과 '주란'은 어떤 인물들인지 추리할 준비를 마친다.
이 소설은 사건이 발생한 날짜서부터 종료되는 시점, 또 두 여자 주인공의 상황을 교차 편집해 서술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한 가지 상황을 두고도 각자의 생각이 다른 두 주인공의 심리상태가 긴박하게 대결하는 묘사가 나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분법적으로 나뉜 두 여자의 상황을 서술하는 영리한 저자의 좋은 구도였다고 생각했다. 두 여자의 공통점이라면 '행복하고 안전한 가정'을 꿈꾸는 것이었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독자들은 알게 된다. 그런 가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힘들고 두려운 현실(가난한 현실과 가장 의지했던 친언니의 죽음)을 회피하게 위해 10살 연상 남자를 선택해 부잣집 의사부인이 된 '주란'은 한마디로 의지박약 한 사람이다. 독자적인 결단 앞에서 늘 언니 뒤에 숨어 있다가 친언니가 죽자 남편 뒤에 숨은 인물이다. 꽃을 가꾸고 반찬을 만들고 안전한 공간 안에서만 빛나는 여자다. 시체 냄새가 나는 것도 남편이 던지는 퇴비냄새란 말 한마디에 자신의 후각을 무시하는 여자다. 남편에게 가스라이팅 당하며 무력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이 안전한 삶이고 행복이라 우기고 있다.
상은은 폭력남편과 살면서 탈출하기 힘든 곤궁한 삶의 연속성에 넌더리가 난 상태다. 악몽 같은 삶 속에서 탈출하기는커녕 폭력임신까지 해버렸다. 앞으로 세상에 나올 아이의 삶은 제2의 자신이란 생각에 끔찍하다. 그녀는 남편을 탈출할 방법으로 저수지에 빠트려 죽였고 완전범죄로 위장하기에 이른다.
그런 주란과 상은의 만남은 대치점이자 합의를 뜻한다. 나는 두 여인의 만남과 생각, 합의에 이르는 굉장한 도출들을 읽으면서 착잡한 심경이 들었다. 갇혀있는 사람의 골똘한 생각은 또 다른 파괴의 선택에 이른다는 것이 슬프게 다가왔다고나 할까. 이성적인 사고나 판단을 도울 사회적 제도와 손길을 찾기 이전에 본능으로 치닫는 결론들이 안타깝게 읽혔다.
저자는 독자의 허술한 추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마지막에 한 방을 세게 치고 끝낸다. 나 역시 약간의 의심을 샀던 부분이 있었지만 넘겼던 부분이어서 놀랐던 것 같다. 영리한 작가다.
두 여인이 1인칭이고 쫙쫙 진행되는 소설의 몰입감에 빠져 제외된 두 인물을 나는 거론하고 싶다. 바로 주란의 의사 남편(박재호)과 아내에게 살해당한 남편(김윤범)이다. 사회적인 지위에 있는 박재호는 약을 납품하는 김윤범의 접대를 받는 갑질의사다. 또 김윤범은 접대 후 갑질하는 의사의 약점을 잡아 큰돈을 요구하는 협박범이다. 이들은 악인이지만 엄격히 따지면 죽어 마땅한 인물들은 아니다. 사회적 제도 아래서 충분히 처벌로도 죗값을 치를 수 있다. 주란은 주변의 도움(특히 옆집의 변호사)을 요청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폭력적이었던 상은의 남편은 임신 후 자식의 유전자를 가졌단 생각에 폭력을 멈췄고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다. 죽은 김윤범을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인가 묻는 형사에 질문에 아내 '상은'의 생각은 다혈질이었지만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증명한다.
"남편은 무엇이든지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무엇이든지 남들보다 잘 해내서 평범한 삶을 쟁취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성과를 내진 못했다. 항상 반에서 1등을 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가지고 노력을 하지만 10등 정도에 머무르는 학생 같았다."
죽은 뒤에 그를 평가하는 후한 아내의 잣대를 보면서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상습적인 폭력남편과는 이혼이 답일 수 있다. 굳이 살인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수단으로 삼으면 안 된다.
또한 친한 친구들 하나 없는 독선에 가까운 남편으로 묘사되는 의사 박재호도 내가 보기엔 상식에 가까운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평가한 주변인물의 묘사가 따지고 보면 틀린 게 별로 없다. 그런 독선과 리더십이 좋아서 선택을 한 본인이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무서워하는 자신을 제대로 볼 생각은 하지 않고, 속였다는 이유로 살인교사를 요청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뭐 어쨌든 소설이다. 소설은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흡수시켜 생각할 거리를 준다. 그러니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편안해도 너무 힘들어도 삶을 의심하는 것 같다. 삶은 고통이라지만 불행한 삶이라 미리 단정 지을 필요는 없다. 불행이라 느끼는 고통을 견디면 평범한 삶이 감사하게 느낀다. 그것은 행복과 다를 게 없다. 두 여자들은 남편을 잃고 행복할까? 아니다. 더 큰 벌을 자식에게 내렸다. 주란이 상은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의 내용이 책을 덮고도 많이 떠오른다. 우린 모두 다 평범하게 불행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