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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전시적 고양이 참견시점의 인간탐구



아무리 태평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 밑바닥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도를 깨달은 것 같아도 토쿠센 군의 발은 역시 지면 아닌 다른 곳을 밟지 않는다. 속편 할지도 모르지만 메이테이 군의 세상은 그림에 그려진 세상은 아니다. 칸에츠 군은 구슬 다듬기를 그만두고 결국 고향에서 부인을 데려왔다. 이것이 순리다.

하지만 순리가 영원히 계속되다 보면 지루할 것은 당연지사. 토후우 군도 이제 10년 후면 무턱대고 신체시를 바치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지를 깨달을 것이다. 삼페이 군에 이르러서는 물에 사는 사람인지, 산에 사는 사람인지 감정하기가 조금 어렵다. 평생 삼페인을 대접하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다면 괜찮겠다. 스즈키 토주로 씨는 어디까지나 굴러다닐 것이다. 굴러다니면 진흙이 묻는다. 진흙이 묻어도 굴러다니지 않는 자보다는 권세가 있다.

본문 中



나쓰메 소세키의 처녀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제목에서 전달되듯이 고양이가 화자로 쓰인 소설이다. 일본의 근대 문학의 출발점으로 소개되는 이 책을 이제야 느긋이 읽게 되었다.

그런데 마음먹고 읽는 내내 번번이 이 책이 정말 그 정도 가치를 줄만한 책인가, 하는 의심스러운 허탈함과 지루함이 들기도 했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다 문득 아, 이 책은 100년도 전에 나온 책이로구나 생각하니 다시금 함부로 품격을 낮춰버린 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져 이왕 읽기 시작한 것, 그래 편안하게 즐겨보자고 고쳐먹게 되었던 것 같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인지는 이 책을 접한 독자들이라면 충분히 공통되게 느끼는 지루함(말로 조롱하면서 본론을 이탈하는 습관적 민담체)을 공감할 것이다.

알다시피 이 소설은 고양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인간의 행동들과 습성, 교활함, 익살스러움 그리고 추악한 모습들을 여실히 느끼게 해 준다. 그런 형태를 고양이는 맘껏 조롱한다.

태어난 지 한 살쯤 되던 해, 고양이는 퇴직한 영어선생의 집에 우연히 들어가 대략 2년여간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집주인인 영어선생과 그의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를 '전시적 고양이 참견시점'으로 기술된 소설이다.

고양이의 성격은 놀랍게도 지적이며 철학도 갖고 있고 냉소적이면서도 낭만적이다. 일찍이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간신히 죽음에서 벗어나서인가. 삶에 대한 시각도 불교적이다. 그런 고양이가 딱 맞는 세상물정 모르지만 그래도 순수한 쿠샤미선생 집에 기거하게 된다.

쿠샤미 선생의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데, 그 이유는 그가 비록 실력도 별로 없는 영어선생으로 퇴직했지만 어리숙하고 주변머리도 없어 상대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에게는 사업가로서 편안히 살 수 있는 길을 거부하는 우직함, 그래도 세상의 도리를 아는 순수한 사람이여 서다.  인간은 누구나 순수함에 이끌리니까.. 그 덕분에 그는 동네에서 가장 가난하게 산다.

소설은 사건별로 나뉘어 단락별 주제가 끊어져 새롭게 읽힌다. 알고 보니 저자 소세키가 일본의 하이쿠 전문잡지인 '호토토흠집'에 장편 분량으로 연재권유받은 것이라 한다. 실제로 소세키의 집에 불현듯 찾아든 고양이를 소재로 이 소설을 시작했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주인공 쿠샤미선생의 외형은 소세키 자신의 처지를 빚댔을테고, 고양이의 사색과 철학은 본인의 의지를 담은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말이 된다.

고양이는 인간을 탐구하는 역할로 나온다. 인간사회와 자신을 마음껏 비교하며 우월한 기분에 사로잡힐 정도로 철학적이다. 그러나 아무리 고양이의 1년이 인간의 10년이라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글의 철학적 사유를 다루는 내용은 많은 사회적 경험이 없다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것은 저자가 해외유학을 통해 느낀 학문과 철학적 사유는 현재 일본의 모습과 어쩔 수 없는 비교와 절망으로 비쳤을 것이 분명하다. 메이지유신 시대를 개막했지만 막부 애도 시대의 잔재가 뿌리 깊게 사람들 의식 속에 박혀있는 모습을 보면서 빚대어 혐오감을 표출하고 싶었으리라 생각된다.


여담이지만 솔직히 민담체의 이 소설을 읽으면서(그들의 일상 속 대화에서) 일본의 역사와 결부된 일본인의 의식세계는 참으로 우리와 이질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자살의 미학적 표현이라든가, 여자아이를 인신매매했던 행위들, 여성 혐오발언, 금권주의 실업가의 행태에 빌어먹는 사람들 등..

고양이가 술독에 빠져 죽기 전 독백하는 글처럼(인용문 참조) 어리석은 군상의 하나인 우리 인간들은 어떻게든 순리대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한 모습 안에서 독립적인 시각으로 우리의 문제점을 편안하게 지적할 수 있는 것이 문학의 힘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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