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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민주의 시작은 연대에 있다



차벽은 말이지 차벽은.... 벽으로써 시위 관리에 동원되지만 시위대가 그것을 손을 대고 흔들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더는 벽이 아니고 재산이 되잖아. 국가의 재산. 시위대의 움직임은 가로막힌 길을 뚫는 돌파 행위가 아니고 재산 손괴 행위가 된다.

관리자들이 행복해진다. 관리가 쉬워지니까. 더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막아둔 뒤, 시위대가 다녀간 자리에 남은 것들을 텔레비전이나 사진으로 대중에게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파손된 차벽과 도로에 널린 깨진 유리조각들을. 재산 손괴 장면은 종종 인명 손실 장면보다도 효과가 강하지. 왜냐하면 그 장면에 대한 이입이 훨씬 더 쉬우니까.
(중략)
그렇지. 툴을 쥔 인간은 툴의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찌 된 영문인지, 툴을 쥐지 못한 인간 역시 툴의 방식으로...


-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본문 中



저자 황정은 씨가 이미 출간했던 소설들을 묶어 내놓은 단편소설집이다. 단편의 장점이라면 현실을 빠르게 진행하면서 독자의 판단을 숨 가쁘게 요구하는 매력일 것이다. 그러기에 단편은 저자의 문체를 알고 시작하면 가독력을 높일 수 있다.


불행히도 나에겐 처음 만나는 저자의 문체는 익숙하지 않아 처음 몇 장은 낯설어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부족하게나마 이해하고자 작가의 인터뷰를 먼저 찾아봤고 뒤편에 수록된 평론가의 추천글부터 읽고 나서야 이 소설의 첫 장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쁜 표지가 무색한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소설이 아니었다.


소설은 'd' 단편과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로 각각 엮어 있다. 각자 다른 단편이고 인물과 서사는 다르지만 시대상과 주제의식은 상통하면서 연작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작가의 의도적인 묶임일 것이다. 그간 접하지 못했던 색다른 단편집이었다.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명제를 나는 '혁명'과 그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상식'이란 생각이 든다. 혁명이라고 생각했던 시민들의 집회들은 생각보다 우리들 가까이 있었으며, 그를 바라보는 각자의 태도와 상식은 뜨거운 열기로 뭉치고 있었다.


'dd'가 죽고 나서 그의 유품 중에 '혁명'이라는 단어를 함께 읽으며 놀라고 재미있어했던 기억을 더듬어 책의 원 주인을 만나러 종로에 나갔다가 'd'는 '명박산성'을 발견한다. 'dd'가 죽은 뒤 정지되었던 'd'의 삶은 종로의 밤열기로 책 속의 '혁명'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d'에서 무의미한 삶에서 깨어나게 했던 세운상가 '여소녀'의 오디오 속 진공관과 같은.. 단편 'd'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한 친구 'dd'로 인한 깊은 수렁에 빠져 있었으나 다시금 사람들이 붐비는 세상 속으로 나오게 한 세운상가 음향기기 수리공 '여소녀'와의 만남을 혁명과 비유한다. (저자는 인터뷰에서 dd는 2014년 세월호 사고로 갑작스럽게 죽은 아이들을 의미한다고 했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단편도 1996년 연대사태에서 유년시절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동갑내기 서수경과 인연이 되면서 빠른 전개가 시작된다. 그들은 '관리자'인 정부의 상식에 휘말린 뒤, '혁명'은 툴을 쥔 인간이 툴의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한다는 사실과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상식에 질린다. 이후로 그녀들은 20년간 같이 살면서 "자기 앞마당이나 쓸자"는 마음으로 살면서도 '어른'이 되면서 다시금 세월호 광장과 탄핵의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었고 헌재의 판결까지 지켜본다.


혁명은 눈물겨운 희생이 뒤따른다. 그러기에 시민들은 희생을 감수하려는 마음이 있기까지 고통으로 현실을 견딘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처럼.. 민주적인 사회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외침은 그래서 단결력이 강하다. 하지만 혁명에 나선 사람들의 마음들은 각각 수많은 결심과 외침으로 모여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상식으로 치부할 것이 아닌 것이다.




<디디의 우산 / 황정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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