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그럼에도 이해해야 한다.

마지막 기회일지도..

사람다운 세상에서 소외되어서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한다면 사람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소리를 지르거나, 주위에 있는 물건을 부수거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히거나, 두 눈을 뜨지도, 말을 하지도 않게 됩니다. 고령자가 문제 행동을 일으키거나 움직이지 않게 되는 원인은 요양보호를 하는 저희들에게 있습니다.


- 휴매니듀드 입문 中




치매의 강을 건너고 있는 친정아버지를 위해 시작한 요양보호사 교육이 오늘로써 한 달간의 필기수업을 마쳤다.  아직 실기가 남아있지만 얼추 팔부 능선을 지나고 있다는 생각에 기운이 난다. 


시험은 60점만 넘으면 붙을 수 있다니 문제없이 통과할 것이다.  수업만 졸지 않고 들었어도 합격한다는 뜻일 테다.  하지만 나는 애초 합격에 의미를 두고 시작하지 않았다. 완벽하긴 어렵겠지만 현재 친정아버지의 상태에 대한 이해를 이 기회에 기초부터 하고 싶었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아버지는 내가 기억하는 과거를 통틀어 늘 술에 쩔어 사셨다.  그 몹쓸 습관의 대가로 칠순을 넘자마자 뇌경색이라는 진단을 받으셨고, 현재는 오랜 기간 뇌경색의 짝꿍인 혈관성치매와 동행 중이시다.  그러니 이제 아버지의 남은 인생은 어두운 터널로 진입하는 과정만 남은 것이다.  아버지와 대화다운 대화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막내딸은 중년을 훌쩍 넘겨 버렸다.


작년 친정엄마가 소천하시고 아버지의 치매속도는 진행이 빨랐다.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배우자의 사망이라고 한다.  인생의 동반자가 사라진 것이니까 당연할 것이다.  그 충격은 사뭇 폭력과도 같다고 한다.  자신의 몸 하나 추스르지 못하는 상태에서 아내까지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은 클 것으로 상상된다.  아내가 땅 속으로 들어갈 때 아버지는 목놓아 외치셨다. 


"나는 이제 어떡하라고!  나는 이제 어떡하라고!"


아버지는 이 말씀만 스무 번은 더 하셨다.  자식들과 사위들은 평생 당신만 챙기다 소천한 아내보다 당신의 처지만 슬퍼하는 모습에 실망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야 알게 됐다.  아버지는 이미 치매의 강 중턱에서 자신의 감정 하나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로 남겨져 언어의 벽만 긁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일찍 요양보호사 공부를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필기수업을 마치고 오래 기억되는 글이 있다. '휴매니듀드' 입문 내용이다. 휴머니즘(humanism)과 매너(manner)의 줄임말인 휴매니듀드는 요양보호사의 사명감을 나타낸다.  휴머니즘은 인간의 존재를 중요시한다. 즉 인간의 소망과 행복을 귀중하게 생각하는 정신인 것이다.  그 정신을 존중하고 지켜주는 사람이 최전선에 요양보호사가 있다.  숭고한 직업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무책임했던 아버지를 용서한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싶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