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틴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것이 굴욕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버틴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게 아니다.
내적으로는 분노와 모멸감을 다스려야 하고, 외부의 기대에 나를 맞추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하는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힘든 과정이다. 버티는 시간 동안 우리는 그 일의 의미를 깨닫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필요한 것들을 재정비하며 결국은 살아남는 법을 익히게 된다.
인생의 겨울을 지나는 이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버티다 보면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고, 그러니 지치지 말라고, 때론 버티는 것 자체가 답일 때가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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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가에 밀물처럼 몰려오는 듯한 심리에세이에 당황하여 어느 날부터인가 거리를 두고 있다. 선택적 독서가 필요했다. 요양사교육을 받는데, 강사님이 수강생들을 향해 김혜남 씨 에세이집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고 권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산 보상으로 정신분석 전문의까지 된 저자가 어느 날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는데, 기어코 일어서 자신의 불행을 잊은 채 책을 썼다는 것이었다. 당시 파킨슨병에 대해 공부를 하던 시기여서 적지 않게 놀랐던 것 같다.
파킨슨병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는데, 온몸이 밧줄로 꽁꽁 묶인 상태에서 살아야 하는 병이라고 한다. 약물치료밖에 없는데 완치는 불가능하다. 치매와 비슷한 뇌질환 종류다. 저자가 한 밤중에 밧줄에 묶인 상태의 몸을 일으켜 화장실을 가려고 힘겹게 힘겹게 한 걸음씩 띠어 5분이 걸렸다는 내용이 있다. 저자는 그 순간에도 인생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대여, 못할 것 같다면 딱 한 발짝만 내디뎌 보라고.. 그렇게 한 발짝씩 내딛다 보면 원하는 곳으로 조금씩 다가간다고 말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녀가 살면서 벌 받을 짓을 마땅히 해서 인과응보로 병을 얻은 게 아니다. 억울하고 분통이 터질 사건을 그녀는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었고, 병마와 싸우며 책을 내고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었다. 그녀를 보니 나의 삶의 고통, 불평, 슬픔등은 가볍고 사치같이 느껴진다.
우리는 지난 과거를 회고하면서 뒤늦게 깨닫곤 한다. 그때 그렇게까지 나 자신을 힘들게 할 필요가 없었는데.. 나 자신을 지나치게 닦달하며 산 것에 피로감을 느낀다. 바보 같다.
저자도 그랬다고 고백한다. 내가 아니면 내 가정은, 내 병원은 제대로 안 굴러갈 거야.. 사명감이라 해야 좋고, 집착이라 해야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한창 일할 나이인 마흔세 살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는다. 그렇게 병원문을 닫고 나니 그녀 주변의 많던 지인들은 연기처럼 사라졌다고 한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왜 없었겠나. 나 역시 그랬다. 저자의 감정에 동질감을 느낀 부분은 '버티는 시간 동안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였다. 흔히 직장생활은 '존버 정신'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고 이외수 씨도 그런 말을 했다. 사실 존버정신은 그저 '버티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명한 직장생활을 위한 '지혜롭게 버티기'라고 해야 걸맞을 것이다. 사실 조직생활에만 해당되겠는가. 인간관계가 다 그렇다.
나는 작은애를 낳고 다시 직장에 들어가 19년을 근무했고 여성 최초로 임원을 달았다. 말도 안 되는 누명과 노골적인 모욕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처음엔 그저 인정하기 싫어서 참았고, 그들의 이상한 모욕 패턴을 찾아 대응하기 위해 참았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은 내 승리였다. 그때 용케 버텼던 나를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그래서 '지치지 말고 버티는 것'을 당부하는 저자의 이 조언이 무슨 의미인지 나는 안다. 그렇게 많은 세월을 견뎠고 당당히 내 의지로 사표를 냈고 나가지 말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나는 회사문을 나섰다.
살면서 내게 제일 중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이 질문은 꼭 해보길 권한다. 그 이유를 알고 살아야 한다. 모두가 내 곁을 떠나도 남았으면 하는 사람에게 집중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사람과 재미있게 살도록 성의를 다 해야 한다. 상대가 해주길 바라지 말고, 내가 해줘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