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흔들림이 필요하다는 사실.
절충과 협상 과정에서 나름의 전제 조건이 있을 거란 생각도 든다. 무엇일까?
상대에 대한 완벽한 이해일까? 글쎄다. 각기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 다른 우주의 충돌이다.
충돌은 두 주체가 서로 맞부딪치고 맞서는 것이다. 마찰을 일으킨다. 갈등을 낳는다.
나와 생각이 다른 누군가를 향해 내뱉는 "내가 당신을 이해할게요"라는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완벽히 뿌리내리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오히려 갈등과 다툼질 앞에서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그 사실을 업신여기지 않을 때 오해의 가능성은 줄어든다. 그리고 그 순간, 어쩌면 마음 한구석에서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의 싹이 돋아날지도 모른다.
본문 中
존경하는 인물에게선 한결같이 '말의 품격'을 느낀다. 품격이 느껴지는 인물은 느릿느릿 서두르지 않고 언어를 전달한다. 게다가 언어에 향기가 있는 것처럼 마음에 오래 남는다.
격과 수준을 의미하는 한자 '품(品)'은 입'구(口)'가 세 개 모여 이루어져 있다. 말이 쌓이고 쌓여 한 사람의 품격이 된다는 의미일 테다. 우리는 인품이 높은 사람을 존경하고 그의 삶을 인정한다. 나도 그처럼 살고 싶은 이유 때문이다.
평화롭게 좋은 말만 하면서 살고 싶지만 삶은 그리 녹록지 않다. 세속적인 사회와 조직 속에서 우리는 상대를 헐뜯고 야유하고 이유 없이 미움을 당하기도 한다. 갈등과 다툼질에 연루되어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작은 사회인 가족 안에서도 이기심으로 힘들기도 한 것이다.
이 책은 복잡한 심경의 한가운데에서 읽기 시작한 책이다. 시끄러운 마음속을 진정시키고자 선택된 책이었다. 사람들 간의 스트레스를 없애려면 혼자 살면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고독과 고립을 스트레스 이상으로 못 견디는 동물이다. 사람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본능적으로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 노력하고 따돌림을 당하지 않으려고 언어로써 자신을 변호하고 상대에게 잘 보이려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중용(中庸)을 지키면 된다고 생각한다. 중용은 말 그대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양극단 사이에서 절충하는 자세를 뜻한다. 그렇다면 모든 관계에서 편안한 상태가 되는 것일까. 저자는 중용을 쉽게 설명한다.
"서구적 시각으로 풀어보면 이해하기가 더 쉽다. 중용은 한쪽이 이득을 보면 반대편이 무조건
손해를 보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 아니다. 이해 당사자 모두가 실리를 챙기는 포지티브섬
(positive-sum) 게임에 가깝다. 중용은 기계적 중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용은 단순히 중간
지점에 눌러앉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여건에 맞게 합리적으로 위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유연한 흔들림이라고 할까."
양극단에 있는 생각을 절충해서 서로에게 손해가 가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용(中庸)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유연한 흔들림은 지적 능력과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언변이 필수다. 또다시 사람을 움직이는 언어의 품격이 필요한 것이다.
도저히 말로는 안 되는 사람도 많다. 마음의 벽을 쌓아놓고 날카로운 말로 공격하는 사람은 말 그대로 답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는 둔감해지라고 권한다. 둔하게 살란다. 웃음이 나왔다. 내가 신념이 있고 가치관이 뚜렷하다면 나의 힘으로 삶을 바라보며 그의 말 같지도 않은 언어에 순수히 대응하지 않는 둔감력이 필요하단다. 후후. 그렇군
사람의 언어는 나름의 귀소 본능이 있다고 한다. 나는 이 말에 참 많은 위로를 받았다. 상처를 주는 듯한 날카로운 언어를 내뱉은 사람의 말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무의식적인 본능을 지니고 있다는 말. 돌고 돌아 어느새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는 말.
"삶의 지혜는 종종 듣는 데서 비롯되고 삶의 후회는 대개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
<말의 품격 / 이기주> http://www.yes24.com/Product/Goods/39441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