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의 적정선을 관리해야 행복할거야.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일생은 정복으로 점철된 인생이었다. 그는 정복을 최고의 영광으로 여기며 실로 거대한 왕국을 일궜지만 늘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결국 그는 젊은 나이에 불치병을 얻었고, 누워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오히려 초연할 정도로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가만히 침상에 누워 있는 그의 모습에서는 예전의 강인했던 정복자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 그때,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숨을 헐떡이며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으면 관에 넣되, 관 뚜껑에 구멍을 두 개 뚫어서 나의 두 손을 관 바깥으로 꺼내놓도록 하라. 그런 뒤 그대로 관을 둘러메고 온 도시를 돌아다녀라."
(중략)
"나는, 생전에 무수한 보화를 가졌던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죽을 때 빈손으로 간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보길 원한다. 사람은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다. 자기 몸 외에는 어떤 것도 가져갈 수 없는 것이다. 살아서는 온갖 영광을 누렸던 짐 역시 죽을 때에는 빈손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나는 그들이 나를 통해 교훈을 얻고, 귀중한 생명을 너무 일찍 소모해버리지 않기를 빈다."
본문 中
우화성격의 글이 한 권 가득 실려있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인생을 바르게 보는 법..'이라는 다소 진부한 제목의 책이지만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의 편안해지면서 그동안 흘리고 살았던 삶의 시야가 넓어지는 기분에 젖게 한다. 저자는 치유심리학을 우화라는 형식을 빌어 편안하게 독자를 이해시키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맞이함에도 불구하고 삶 속에서는 까마득히 잊고 치열하게 시간을 쪼개며 살고 있다. 그뿐인가, 전쟁을 치르며 무고한 살육을 하고, 그나마 한평생 살 수 있는 한 사람의 인생을 끊어버리기도 한다. 인용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일화는 인생을 전쟁처럼 살기보다는 여행처럼 즐겁게 사는 게 어떠냐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쟁이라는 거창한 의미를 우리의 일상에선 어떻게 비유해야 맞을까. 바로 '바쁜 사람'이 아닐까. 저자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을 '바쁜 사람'으로 말한다.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버리는 사람들. 심지어 자기 생명을 과하게 쓴다고 단정 짓고 있다.
그래. 아무리 죽음을 인정하며 살아도 여전히 우리는 일상 속에서 잊고 살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작게 쪼개어진 인간관계의 틈바구니에서 우선권이 밀려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우위에 서지 못한 채 쫓기는 기분이 들면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자신에 대해 좌절하고 절망하게 된다. 그 이면에는 자신에겐 관대하지만 타인에 대해선 비난하는 마음이 있어서일 테다.
저자는 그러한 인생에 대한 실망감으로 힘들 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녀는 가르치려 하지 않았고, 많은 우화를 들려주면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우회적으로 넛지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단상, 본능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왜 인간은 좌절하고 실망하고 괴로워하고 힘들어할까. 그것은 '욕심' 때문이란 결론이 든다. 책 속의 우화에 이런 글이 있다.
모래쥐 한 마리가 건기를 나기 위해 필요한 풀뿌리는 2킬로그램 정도이지만 실제로 모아들이는 양은 10킬로그램이 넘는다. 그중 대부분은 썩어버리는데도 모래쥐들은 여전히 풀뿌리를 필요 이상으로 모아들인다. 연구에 따르면 모래쥐의 이러한 습성은 유전인자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모래쥐는 태생적으로 걱정이 많다! 그래서 고통과 피곤에 시달리면서도 필요한 양의 몇 배, 심지어 몇십 배나 많은 풀뿌리를
모은다. 순전히 걱정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는 것이다.
(중략)
인간이라고 모래쥐와 다를까?
걱정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따라오는 고통이다. 내 결혼초기만 해도 신혼 혼수품으로 냉장고가 필수긴 했지만 지금처럼 대형냉장고는 아니었다. 요즘은 그것도 부족해 김치냉장고까지 대형으로 장만한다. 집안에 식료품이 냉장고에 쌓여가도 외식을 한다. 타인과 비교하며 자신의 행복을 저울질하는 시대로 변모한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물질의 척도가 아니라 서로를 보살펴 주고 이해해 줄 때 만족감이 커진다. 인간의 행복은 인간관계에서 소소하게 느끼며 찾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돈을 좇고, 권력을 향해서만 목표를 두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사랑은 이해의 다른 이름'이라고 했다. 그렇다. 사랑은 이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해서 서로 상처 주고, 상처받는다. 어른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함으로써 아이에게 상처를 준다. 여자는 남자의 필요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기 나름대로 사랑을 베푼다. 이 역시 남는 것은 상처뿐이다. 자녀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방식대로 효도를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결국 부모는 진정 기쁘게 하지 못한다.
<인생을 바르게 보는 법_놓아주는 법_내려놓는 법 - 쑤쑤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