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가까이 해야 삶이 보인다.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집에서 사망하는 사람이 전체 사망자의 30~40퍼센트를 차지했고, 집에서 장례식을 치렀다. 그런데 지금은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에 병원에 간다. 왜 그렇게 바뀌게 된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우선은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우리의 본능적인 거부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죽음과 우리의 삶을 별개로 떨어뜨려놓고자 하는 의식이 발동한 것이다. 죽음은 병원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타자화시키고 우리는 죽음과의 거리 두기를 통해 조금 더 죽음으로부터 안전한 삶의 공간에 남아 있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병원에서 마지막을 보내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에 병원이나 장례식장을 이용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법의학자가 40명가량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법의학에 관련된 학회나 세미나가 개최되는 경우, 이들을 실은 차량은 분산해서 움직인다고 한다. 혹시 모를 사고가 한꺼번에 발생 시 사고사 증명을 못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란다. 그만큼 귀하고 특별한 직업인 것이다.
이 책을 쓴 유성호박사는 우리나라 4대 법의학자다. 법의학은 죽은 이의 사인을 정확히 밝히는 직업으로써 어찌 보면 죽은 이의 인권을 최종적으로 옹호(변호)하는 정의구현의 학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 1대 법의학자였던 문국진교수의 용기 있는 열정이 없었다면 이 책의 주인공도 없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가 이 책을 통해 이제는 '죽음'에 대한 사회적 동의 내지 감정의 통찰을 논하고 제시한다는 점에서 나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살면서 '죽음'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생각할까. 사실 '죽음'은 삶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가 아닐까. 죽음이라는 절대적 종착역이 있기에 삶이 비로소 제대로 된 가치로 성립되는 것일 테다. 그럼에도 우리는 죽음에 대해 철저히 타자화하며 살고 있다.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다.
타자화하기 때문에 복잡한 문제로 치부되고, 전문가들만이 다룰 수 있는 금기와 미지의 영역으로 취급한다. 그 이유를 나는 평소 곰곰이 생각한 적이 많다. 누구나 다가올 죽음에 대한 준비가 우리는 필요하지 않을까. 내 가족이, 내 귀한 지인이 어느 순간 병사든 사고사든 우리의 곁을 떠나게 될 텐데 우리는 왜 그들이 사라진 뒤에야 허망한 마음을 무방비한 상태로 맞이하는가 싶어서였다. 시어머님과 친정엄마가 그렇게 소천하시고 닥친 슬픔이 빈자리를 더 크게 만든 이유기도 했다. 살면서 금기시되는 '죽음'에 대해 언제까지 가족들은 자괴함으로만 대할 것인가.
유성호교수는 삶과 죽음을 따로 떨어트려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늘 준비해야 할 문제란 말을 많이 한다. 즉, 죽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 준비, 각오가 필요하단 얘기다. 죽음을 더 이상 존중받지 못하는 시스템 안에서 처리될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로 접근해서 죽을 권리에 대해 논하자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현실적인 죽음의 실태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놀라웠다. 실제 현장에서 부검하게
되는 대상 대부분은 타살인 경우는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래 인용문 참조)
"어쨌든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는 살인 사건에서 비교적 안전한 나라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사망 원인에서 병사가 압도적으로 많고 그중 대표적인 경우가 '암'이라는 것이다. 인구 10만 명당 1명 정도가 타살로 사망하는 반면에 10만 명당 150명이 암으로 사망하고, 그 뒤를 이어 자살이 우리 사회의 죽음이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최근 리투아니아가 OECD 통계에 편입되면서 2위가 되었으나, 그전까지는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를 유지해 왔다. 일본의 자살이 굉장히 심각하다고 많이들 이야기하는데, 우리나라는 일본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2017년 자료로 살펴보면 자살률은 10만 명당 24.3명으로 당뇨병이나 간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수보다 더 많다. 교통사고 사망주 수보다 2배 이상 많은 높은 수치다. 전체 수로 봤을 때 2017년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약 1만 2000명에 달한다."
수치화된 자료를 통해 알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꽤 충격적이었다. 또한 우리나라 자살률 1위는 대도시가 아닌 강원도이고 뒤이어 충청북도라고 한다. 그들의 연령층도 경쟁에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이 아니라 노인들이다. 우리나라 청년자살률은 교육제도가 잘 발달된 핀란드 보다도 낮다. 노인들의 자살률이 높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을 무엇일까. 인적 교류의 부재로 직결된다. 또한 의학적으로 모든 자살은 정신질환으로 귀결된다고 한다. 지금처럼 사회적으로 죽음에 대한 관심이 적고, 시스템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한 우리나라 노년층의 자살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노년층을 위한 관심과 인적교류의 확대를 통해 그들을 제도 안으로 수용이 필수적이다.
유성호교수는 사망 1순위엔 자연사(병사)에 대한 관점도 제시한다. 우리나라의 사망 1위인 '암'에 대한
의견이었는데, 임종 1개월을 앞둔 환자들의 통증완화를 위한 모르핀 처방 증가를 요구했다. 나는 이 의견에 절대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암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곁에서 가족들의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재산분배나 유언 등 정리할 일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현실은 항암치료만 받다가 정작 할 말도 못 하고 삶을 종료하는 게 대다수다.
또한 스스로 삶을 종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 즉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특수 연명의료로 행해지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인공호흡기가 무슨 소용인가 싶다. 그는 거부권 행사를 생전에 본인
스스로 작성하여 주치의사에게 사전에 제출하라고 권한다. 이는 본인은 물론 가족의 과다한 병원비에서도 부담을 줄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한 삶은 아름다운 죽음으로 마무리되어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죽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을 생전에 준비하고 생각해 두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죽은 시체들을 보러 가면서 느낀 그만의 완곡한 표현이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겨있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는다.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삶이야 말로 최선을 다한 삶이며, 후회 없는 삶을 산다는 뜻일 테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삶이 열심히 사는 삶일까? 유성호박사는 정말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들(부모가 원했던 꿈 말고)을 하라고 권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할 수 있는 기록들을 남기는 것도 좋단다. 자신의 죽음을 처리하는 장례 등 최소한의 돈을 남겨두고 가라는 실질적인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여러 가지 좋은 말들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철학적인 내용이 많아 좋았던 것 같다. 나는 생전유언을 한다는 생각으로 자식을 대하고, 지인들을 대하며 살았으면 좋겠단 생각이다. 또한 자신의 생각들을 조용히 기록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구구절절 내 얘기를 하는 것도, 듣는 이에게도 서로에게 시간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자신의 이야기는 자신에게만 해도 충분하다.
보고 싶어 하는 가족과 지인들은 알아서 내 이야기를 찾아볼 테니까..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_유성호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