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행복

계절이 지금 보여주는 풍경을 놓치지 않기



올려다보는 단풍의 계절에서 내려다보는 낙엽의 계절까지, 내가 생각하는 숙제는 하나다. 이 가을을 끝까지 써야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치약이나 핸드크림의 가운데를 가위로 잘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쓰는 사람답게, 이 계절을 끝까지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까워라, 하는 마음으로.




내 마음의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무난하고 어렵지 않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자연과 동화되어 있을 때가 아닐까. 이 책의 저자인 '김신지'작가의 전작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에서는 내 삶 속에서 만나는 날씨의 기록들을 하루의 순간과 함께 수집하고 있었는데, '지구가 생긴 이래 같은 날씨는 한 번도 없었다'는 글귀처럼 나는 그녀가 일상의 순간들을 얼마나 소중히 다루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자연이 보여주는 풍경이야기로, 24 절기의 보폭으로 지구의 관측자 입장에서 해가 만들어낸 계절 변화를 아름답고 재미있게 써 내려간 에세이집이다.



계절을 사랑하고 순환되는 날씨를 기록하며 써 내려간 '제철 행복'을 읽으며 나는 내내 미소가 끊이지 않았던 것 같다. 이 한 권의 책으로 나는 지구가 1년 동안 태양 둘레를 공전하며 만들어낸 24 절기의 아름다움을 경험했다. 한 편의 감동스러운 영화를 감상하고 퇴장하는 기분이랄까. 옛사람들이 절기를 맞이하며 분주히 움직였던 마음들, 계절과 함께한 어느 문학가의 글귀들이 작가의 일상과 혼재되어 맛있게 그려져 있다.



달력에 조그맣게 적혀있는 절기표시는 절기가 시작되는 날을 의미한다. 지구의 관측자 입장에서는 태양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만든 기준이다. 선조들은 태양이 1년에 걸쳐 이동하는 경로에 따라 계절을 나누었고 더 세밀하게 구분한 것이 24 절기다. 사 계절에 여섯 절기가 있고 한 절기의 길이는 약 15일로 나뉜다. 내가 태어난 절기를 찾고 절기 이야기를 읽으면 더 애정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다.



24 절기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인 만큼 빙그레 웃으며 읽었던 부분이 있다.


소서는 내가 태어난 절기이기도 하다. 최근 강과 나는 이런 대화를 만담처럼 나누는데 빠져 있다. 너 어느 절기생이야? 나 소서! 작은 더위의 계절에 태어났어. 너는? 난 빠른 경칩. 일찍 나온 개구리라고 할 수 있지. 책을 쓰는 동안 친구들에게 틈틈이 어느 절기생인지 알려주기도 했다. 곡우생이네. 풍요의 비가 내릴 때 태어난 거야. 마치 별자리의 운명을 알려주는 점성술사처럼 태어난 계절의 꽃말을 손에 쥐고 있는 기분.




나는 서리가 내리고 단풍이 짙어진다는 상강(霜降)무렵에 태어났다. 저자는 상강엔 마지막 단풍놀이가 제철이라고 표현했다. 이슬이 서리로 바뀐다는 상강은 계절이 크게 바뀌는 시기인 만큼 더 이상 미적대지 말고 겨울나기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절기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자와 나의 생각이 너무나 비슷해 놀라며 읽었다. 나는 일 년의 끝을 가을로 계산하는 습성이 있다. 가을에 한 해의 끝인 종무식을 열어버리는 것이다. 겨울은 아무것도 계획할 수 없는 시기로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상강에 태어난 나는 계획형 절기생이 아닐까. 가을의 완성과 겨울의 준비라는 두 가지 에너지를 동시에 품고 있는 셈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카렐 차페크의 '정원가의 열두 달'이란 글을 저자 덕분에 소개받았다.


흔히 가을에는 낙엽이 진다고 말한다. 물론 사실이다.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보다 깊은 의미에서 가을은 새잎이 싹트는 철이라고 할 수 있다. 잎이 지는 것은 겨울이 찾아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 봄이 시작되어 새로운 싹이 만들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

지금 해내지 못한 일들은 4월에도 일어날 수 없다. 미래란 우리 앞에 놓인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싹눈 속에 자리하고 있다.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있다. 지금 우리 곁에 자리하지 않은 것들은 미래에도 우리와 함께할 수 없다.




사람들은 자연의 겉모습만 보고 가을을 끝자락으로 여기며 쓸쓸해 하지만 자연의 입장에서는 한 해의 시작이란 의미다. 구근 정수리에 부풀어 오른 싹눈, 낙엽 덮인 땅 밑에 숨겨진 여러해살이풀들의 새싹들이 숨어 있다. '카렐 차페크'는 11월의 땅에는 다음 봄을 위한 설계도가 이미 완성되어 있다며 이런 자연의 분주함을 '가게문을 닫고 셔터를 내렸을 뿐 닫힌 문 뒤에는 새로운 상품을 포장하느라 손이 모자라 분주하다'라고 재미있게 말한다.



나의 절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담다 보면 모든 절기도 따뜻한 시선으로 옮겨간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계절의 '어원'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탑재되어 있는 우리의 마음이 읽힌다. 왜 꼼짝거리기 싫었는지, 왜 나가고 싶었는지, 왜 계절의 아름다움에 극성스러운 집착을 띠며 참여했는지..



겨울의 어원이 '겻다'라는 것을 배웠다. '겻다'는 머무르다는 의미다. 겨울을 보내기에 가장 안전한 곳은 집이다. 내가 겨울이 오면 그렇게 꼼작거리기 싫어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판명받는 기분이랄까. 나는 절기에 완전히 순응하고 살았을 뿐이다.



계절의 마지막은 12월이 아닌 24 절기 마지막 절기인 대한(大寒)이고 새해 출발점은 절기로 따지면 입춘일이 새해의 시작인 셈이다. 책을 읽고 달력을 보니 3월 5일 경칩이 찾아오고 있다.



경칩이란 절기는 자연을 면밀히 관찰해 지은 이름 같다. 우수 이후 낮에는 녹았다가 밤에는 얼기를 반복하던 땅이 더 이상 얼지 않는 것도 경칩 무렵이라고 한다. 땅 아래까지 스며든 온기에 겨울잠 자던 동물들도 자연스레 눈치챘을 절기.



놀랄 경驚자에 겨울잠 자는 벌레를 뜻하는 칩蟄자로 이루어진 경칩은 24 절기 중 가장 생동감 넘치는 이름을 가졌다. 옛사람들은 경칩 무렵 '첫 번째 천둥'이 치고, 겨울잠 자는 동물들이 그 소리를 듣고 놀라 깨어난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알람 소리에는 사람도 일어나기 힘든데.. 싶어 괜한 걱정을 하다 보면, 하늘의 요란한 알람에 하품하며 땅속에서 줄줄이 나왔을 개구리와 벌레들이 그려진다.




우리가 철딱서니 없는 사람을 보면 '철부지'라던가, '철이 없다'라고 혀를 차는 말의 어원은 계절의 변화를 모르는 데서 나왔다. 철부지(不知)란 말은 계절의 변화를 알고 사리를 헤아릴 줄 알아야 하는데,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우리 선조들은 24 절기를 순응하며 살아왔다.



봄이 왔다. 특히 경칩엔 봄맞이 기지개가 제철이다. 봄맞이 청소로 창문을 먼저 열고 청소 세포를 깨울 절기인 것이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깨어나는 풀과 나무와 개구리처럼. 작가의 반짝이는 경칩의 글귀를 다시금 읽어본다. 어쩌면 이렇게 글을 맛깔스럽게 쓸까. 봄청소는 나의 물때와 더불어 봄에게 앉을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제안이 반갑다.



봄이 왔다는 것은 불필요한 것들은 사라지고 온전히 살아남을 것들만 이겨내 봄을 맞이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봄을 사랑하게끔 진화한 인간의 본능처럼 나의 선명한 부분이 살아남아 새로고침 해주는 봄이 아닐 수 없다. 봄은 그냥 봄이 아니라 유일한 기회를 다시금 손에 쥐어주는 계절이다.



계절의 흐름을 알고, 계절이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깨닫는 과정은 무엇을 의미할까. 제때 내가 해야 할 일을 찾는 일일 것이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그런 의미다.



지난해 상강절기에 담아둔 단풍의 흔적들




< 제철 행복 / 김신지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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