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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의 인간이해

유아기 때를 중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인간이해의 경험과 실상에 정통하지 못한 사람이 어떤 사람을 보다 나은 인간으로 교육시키려고 시도한다면 매우 혼란스러운 사태에 직면할 것이다. 그는 오로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피상적인 차원에 머무를 뿐이고, 어떤 사실의 외적 양상이 변했고 다른 뉘앙스가 생겼으니, 자신이 무언가를 변화시켰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질 수도 있다.


실제 임상 경험에 비춰 보면, 그런 작업이 한 개인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못하고 행동 양식 자체가 수정되지 않는 한 겉으로 보이는 변화 또한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는 점을 알게 된다. 한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간단한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신중함과 인내심을 요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적 허영심을 버려야 한다.


- 본문 中




세계 심리학의 거장 중 한 명인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을 심도 있게 다룬 책이다. 몇 년 전에 기시미 이치로가 쓴 '미움받을 용기'가 뜨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빠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프로이트는 개인 심리해석을 모두 '과거'로부터 끄집어냈다면 아들러는 자기 긍정과 성찰의 과정을 거친다면 '미래'는 열등감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이론을 펼쳤다.


이 책은 아들러의 입문서지만 다소 내용이 지루하고 학문적인 면이 강해서 개인적으로는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을 쉽게 다룬 책들을 먼저 소화한 뒤에 읽기를 추천하고 싶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책을 통해 개인심리의 지혜와 논리를 소중하게 얻었다. 앞으로 나의 삶에 가족을 포함한 모든 인간에 대해 겸손함을 실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들러는 인간이해를 하려면 가장 중요한 유아기 때를 중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누구나 열등감이 있는데, 열등감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단지 그 열등감이 콤플렉스가 되었을 경우 삶이 고통스러운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인간의 그 열등감의 시초인 유아시절의 해석을 건너뛰고 어른의 현재 문제만을 해결하려는 것은 잠재된 불씨를 지나쳐 또다시 제2의 화재를 겪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유아기의 열등감 시초는 이렇게 시현된다. (아래 인용문 참조)


"모든 아이들은 성인들의 환경에서 자라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작고 약한 존재로 인식하며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정서 상태에서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과제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매끄럽게 오류 없이 해낼 것이라고 자신감을 갖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교육에서의 오류는 대부분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아이에게 실제 능력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함으로써 아이는 무력감에 내던져간다.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의도적으로 작고 보잘것없고 무력하다고 느끼도록 만들어지기도 한다. 또 어떤 아이들은 장난감 공이나 웃음거리로 이용되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지켜 줘야 하는 귀중품처럼 취급받기도 하며, 어떤 아이들은 스스로를 쓸모없는 짐덩이로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이 모든 것이 합쳐 저 어떤 때는 아이가 이쪽면을, 어떤 때는 저쪽 면을 주의하도록 강요받기도 한다. 이렇게 부모와 어른들의 혼란스러운 태도는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거나 불쾌감을 유발하는 두 가지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는 것처럼 믿게 만든다."



어른들은 아이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일상적으로 거부한다. 이것은 교육에서의 오류로 발전하고 오로지 어른들이 아이들을 좀 더 다루기 편하고 쉬운 육아책의 발전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아이들이 존중받고 아이들의 주도성이 중점 된 교육은 하지 않는다. 어른이라는 특권을 이용해 아이들 간의 경쟁을 부추기고 아이들의 욕구를 무시한 채 실제 능력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아이들의 불안정감은 열등감으로 변하고 성격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의 열등감과 인정 욕구 편을 읽으면서 많은 페이지가 놀라움으로 책장을 접었다. 아이들의 처한 환경이 적절치 못한 경우 다양한 정신생활의 특징들이 발현된다고 한다. 인간의 초기행동의 기틀이 타인과의 관계, 타인을 향한 애정욕구를 기반으로 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부모로서 아이의 인생의 시점이 맞춰지는 유아시절의 책임감은 지대하다고 느꼈다.


"또 다른 어려움은 아이들이 자기의 권력 욕구를 공개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선량함과 상냥함의 변장 밑에 감추고 베일 뒤에서 자기 욕구를 추구한다. 자신의 의도가 노출될까 봐 극도로 부끄러워하면서 회피해 나간다. 자신의 힘을 확대시키고자 하는, 거리낌 없는 과도한 권력욕은 오히려 아이의 정신에 이상발달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래서 안전과 권력에 이르려는 극단적인 욕구는 용기를 파렴치로, 순종을 비겁함으로 만들 수 있고, 상냥함은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고 복종하게 하며 굴종하게 만드는 관계로 바뀔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자연적인 감정이나 표현 이외에도 모든 성격에는 우월성을 향한 교활한 욕망이 덧붙는다."


아들러는 먼저 인간이해의 근본적 문제들을 마주하기 전에 '교만과 자만심'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단편적 평가가 아닌 다각적 평가로 아이의 감정을 잘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아이는 많은 자기 평가를 거쳐 정신생활의 목표가 재설정한 뒤에 어른이 된다.


아들러는 정신적 결함이 있는 사람이나 상대를 힘들게 하는 성격의 소유자를 만나더라도 그의 본질을 탓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이 있기까지 우리들의 공동책임(사회적 책임)에 대해 작든 크든 참여한 우리들의 탓도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어린 시절, 특히 초기경험의 중요성은 그 사람의 행동의 원인을 밝혀낼 수 있는 중요한 열쇠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성인이 되어 열등감을 제대로 지켜보는 감정은 상대를 제압시키려 감정, 즉 분노가 아닐까. 아들러는 분노란 사람의 권력욕이나 지배욕을 구체화시키는 감정이라고 표현한다. 자신의 우월성을 추구하면서 인정욕구를 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권력 감정이 조금이라도 침해된다고 느끼면 분노를 폭발시킴으로써 대항한다고 한다. 이러한 공격적인 감정 내부에도 유아시절 정신세계가 원인이라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나는 그런 나쁜 버릇들은 대부분 주위 사람들의 주의를 자기에게 돌리기 위한 것이며 자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싶어 하며 어른들에게 자신의 약함과 무능함을 보이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대체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어른들은 어찌할 줄 몰라하고, 아이들은 더 힘센 사람이 되어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중략)

바깥으로 드러나는 이런 현상들 뒤에는 지배욕과 허영심이 감추어져 있고, 그것들은 매우 특이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알아보기 힘든 채 머물게 된다."



정신심리학책에는 '열등감'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열등감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하면 개인에게나 사회, 인류의 이익에 공헌할 수도 있다. 개인의 열등감을 승화하여 위인이 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는 것이 그 증거다. (헬렌켈러, 베토벤 등)


'미움받을 용기'를 읽어보면 '공동체의식'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아들러는 혼자서 살 수 없는 인간이라는 사회적 동물의 기초단계에서 '열등감'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공동체 생활, 의식'에서 찾아냈다.


언어가 혼자 살 때는 필요 없지만 공동생활의 산물로써 언어가 필요하듯이, 인간과의 접촉에서 개념의 형성이 된 소통언어를 통해 보편타당한 논리의 공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것은 인간 존재로서의 의무를 실천해야 한다는 인류애와 상통한다.  


그러한 '공동체의식'이라는 교육의 중요성을 아들러는 매번 강조했다. 설사 실패한 가정교육일지라도 학교라는 대안이 있다면 잘못된 그간의 관행들을 수정될 거라 믿었던 것 같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그의 바람이 '학교'였다니 오늘날 교육현실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 왔다. 이미 현실은 교육의 불평등으로 고착화되지 않았나 싶어서다.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은 그간 개인의 책임에서 공동체책임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열등감 콤플렉스가 얼마나 크고 다루기 힘든 감정임을 밝혔다.


"인간에게 가장 힘든 일은 자신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들러의 인간 이해_알프레드 아들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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