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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의 비밀

몸의 지혜를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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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은 물리적(식물의 형태), 생화학적(이차화합물) 경계를 설정해 야생동물들이 다양한 피토케미컬을 섭취할 수 있도록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간은 가축들이 방목지나 사육장에서는 먹는 먹이를 엄격하게 제한한다. 사람이 먹는 음식도 단일 품종으로 이루어진 방목지나 사육장과 다르지 않아서, 얼핏 봐서는 무수한 선택 사항들이 있는 것 같지만 생화학적 풍성함은 기대하기 힘들다. 섭취량을 조절해 줄 물리적, 생화학적 한계가 전혀 없는 혹은 거의 없는 에너지 밀도만 높은 가공식품을 주로 먹는다.


본문 中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 필수조건인 '먹는 것'에 대한 건강관리비법을 심도 있게 다룬 책이다. 책의 두께가 증명하듯 사실 너무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다 읽고 나니 표현할 감정이 복잡하다. 연구와 실험하는 내용을 읽을 땐 흥미로웠지만 생소한 의약용어 및 단어들이 부쩍 늘어날 때는 적응하기 힘들었고, 우주와 지구에 대한 과학과 철학적 사유를 다룰 땐 저자의 방대한 지식에 놀라웠다. 또 우리가 미쳐 간과하며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돈 벌기에 급급한 병원과 제약회사)와 다국적 기업이 세계 식량을 좌우하기 위해 모든 종자와 특허권을 사들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분괴하기도 했다. 이렇듯 복잡 다양한 감정들은 읽는 내내 교란하듯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저자 '프레드 프로벤자'는 유타 주립대학의 행동생태학 명예교수다. 이 책이 탈고될 때까지 총 45년이 걸렸다고 한다(큰 시련이었던 암투병기간도 포함해서). 책 한 권을 낼 때 이만한 정성을 보인다는 것은 저자의 인생을 걸었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책 속의 내용은 완성도가 높다.


그는 그 대학에서 수상 이력이 있는 연구진을 이끌고 학습이 먹이 활동에 미치는 영향, 학습이 토양과 식물을 초식동물이나 인간과 어떻게 연결하는지에 대해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큰 업적을 이뤄냈다. 프로벤자 교수와 그의 연구진들은 외지의 황무지였던 목초지를 개발해 수년간 가축이 아닌 야생동물의 생태를 관찰하며 유의미한 결과물을 도출하기에 이른다.


수의사들이 동물의 몸속에 인공 식도를 삽입해 실제로 섭취한 먹이의 일부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어떤 인간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염소나 양, 소가 실제로 선택한 것만큼 영양학적으로 뛰어난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초식동물들이 하루에 스물다섯 가지에서 쉰 가지 이상의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한 가지 음식을 압도적으로 많이 먹는 종도 없지는 않다. 그들의 선택은 끼니마다 날마다 철마다 달라진다.




식물과 초식동물의 실험과 연구를 통해 그는 식물이 땅속에, 땅 위에 사는 초식동물과 잡식동물과 육식동물을 흙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땅은 단순히 흙과 식물과 동물의 그물망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태양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식물을 통해 땅속, 땅 위에 사는 동물에게 흘러 들어가는 통로였던 것이다. 또 다른 수확이라면 책에서 많이 거론되는 '피토케미컬'의 또 다른 발견이었다. 그것은 바로 '식물의 지능'이었다. 우리는 지구상에 인간만이 지능이 있다는 오만을 갖지만, 식물은 스스로유기 화합물을 만들어 낼 줄 알며 흙과 다른 식물은 물론 동물을 상대로 상호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어 제초제 내성을 가진 잡초는 무려 500종에 달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양분'외에 식물이 지니는 2차 화합물(피토케미컬)의 설명은 놀라웠다. 피토케미컬은 초식동물의 세포나 장기에 정보를 교환하며 특정 먹이의 선호도를 바꿔 놓는 피드백을 제공한다는 점이었다. 초식동물은 본능적인 맛으로 먹이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먹이의 맛에 대한 호불호는 세포와 장기 그리고 장내 미생물의 식후 피드백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었다. 이 책에서 발견한 놀라운 지식이었다.

동물의 세포와 장기는 다양한 음식을 먹도록 인도함으로써 몸에 필요한 영양소가 보충되도록 돕는다. 특히 대장의 미생물들의 역할은 이전에 읽었던 책(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죽는 법)이 연상되면서 더욱 각인되는 시간이 되었다. 모든 동물(사람포함)의 세포는 자신의 영양 상태가 부적절해지면 자연스럽게 익숙한 음식을 피하고 새로운 음식에서 영양을 보충한다고 한다. 기증자의 세포들은 기증받은 사람의 식성을 바꿔버리기까지 한다. 이만큼 세포의 기억은 분명하다.


인간의 세포와 장기 또한 초식동물과 다를 바 없었다. 캐나다의 부모 없는 아이 열다섯 명에게 했던 실험이다.


끼니마다 똑같은 식단을 선택하는 아이가 한 명도 없어 무려 열다섯 가지 패턴이 제시되었고, 흔히 이 나이 또래의 아이들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약간의 과일과 달걀, 육류를 곁들인 시리얼과 우유조차 대표적인 식단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입맛이 수시로 예측을 불허하는 방향으로 변할 뿐 아니라, 영양사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괴상한 음식의 조합이 등장하곤 했다. 예를 들면 아침으로 오렌지주스와 간을 먹고, 저녁에는 달걀 몇 개와 바나나, 우유를 선택하는 식이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고 하듯이, 어쨌건 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목적을 달성한다.



이렇듯 몸의 지혜가 분명히 있음에도 현대의 인간의 삶은 단일 품종으로 이루어진 방목지나 사육장과 다르지 않아서, 얼핏 봐서는 무수한 선택 사항들이 있는 것 같지만 생화학적 풍성함은 기대하기 힘든 현실에 살고 있다. 섭취량을 조절해 줄 물리적, 생화학적 한계가 전혀 없는 혹은 거의 없는 에너지 밀도만 높은 가공식품을 주로 먹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종 식품보충제와 영양제들은 또 얼마나 넘치는가.

저자는 보충제를 복용하면 기분이 나아진다는 사람들의 생각과 정부의 권고안이 커다란 동기가 되어 시장이 확대되었다고 결론을 내었다. 사람은 다양한(가공하지 않은) 완전식품을 먹어야 하며, 무엇을 먹어야 할지 결정하는 최후의 심판자는 우리의 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당장 망가질 것이 아니라면 손대지 않는 쪽이 현명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을 알아도 사회적 방향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벽에 부딪친다고 저자는 고발한다.

정부 관료들은 '중독'을 예방하는 정책을 입안할 때, 비만과 당뇨병은 지방과 정제된 탄수화물 함량이 높은 음식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는 개인의 의지력을 탓할 문제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그보다는 인간의 먹이 사슬을 지배하는 강력한 기업들과 맞설 정치적 의지의 결핍을 탓해야 한다. 농업 관련 산업은 한 줌도 안 되는 초대형 다국적 기업이 전 세계 씨앗과 사료, 화학 비료와 살충제 생산부터 식품의 가공, 마케팅, 유통이 이르는 먹이사슬 전반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다.
(중략)
미국에서 당뇨병 하나만으로 발생하는 비용이 연간 1,32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식생활과 생활 방식을 바꾸면 예방할 수 있는 비만, 당뇨, 심혈관 질환, 일부 암을 치료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쓴다.



경제적 합리주의가 만들어 낸 종합적인 이기주의가 인간의 건강을 오히려 위협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는 것이 저자의 한탄이다. 양질의 피토케미컬은 더 많은 작물 수확량을 얻기 위한 농업의 발전으로 반감되어 버렸다. 채소가 맛이 없어진 이유기도 하다. 양질의 피토케미컬이 기억은 세포기록으로 남겨져 있다고 한다. 우리가 요즘 먹는 채소의 맛이 시들해진 것은 예전에 먹었던 맛있던 세포기록의 소환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 어떤 일차 및 이차 화합물이 들었는지 분석하려는 온갖 노력에도 무엇이 좋은지 판단하는 주체는 우리의 뇌가 아니라 몸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음식을 섭취해야 할까. 나와 사랑하는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해 평생에 걸쳐 생화학적인 성분이 풍부한 완전식품을 식생활에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생화학적으로 풍부해질수록 건강도 좋아진다. 그러기 위해 EPA나 DHA 같은 특정 지방산 보충제를 선택할 수도 있고, 오메가-3 지방산 복합체를 복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오메가-3뿐만 아니라 수백 가지의 화합물이 함유된 기름기 있는 생선 또는 기름기 있는 생선과 채소와 과일을 함께 먹어 수만 가지 화합물을 동시에 섭취하는 일이다. 유방, 전립선, 대장 등 여러 부위의 암과 관련된 실험에서 이런 접근법의 잠재적 가치가 입증된 바 있다.



이 책은 다 읽었지만 솔직히 다 읽었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영양의 비밀> 이 책은 말 그대로 모든 생명체의 문제의 본질을 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몸이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몸의 균형을 찾으려는 건강한 몸은 무엇이 좋은 음식인지 알고 있으니까.




<영양의 비밀 / 프레드 프로벤자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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