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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확신하지 않고 동시에 포착하는 능력


공자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행위 원칙, 즉 보편적인 이념을 기준으로 살 것을 요구합니다. 그 보편적인 행위 원칙을 '예(禮)'라고 하지요. 예(禮)에 맞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행함으로써 인간이 바람직한 인간으로 계속 성숙해 간다는 거예요.

(禮)에는 반복 훈련이 매우 중요합니다. 바로 '습習'이지요. 그런데 반복 훈련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저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저 사람과 내가 무엇으로 구분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에요. 나와 상대방이 위치하고 있는 좌표를 먼저 알아야 된다는 것이죠. 그 구분의 정도가 어떤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에요. 그 구분을 표시하도록 정해진 것들이 바로 개념(名)이고 말(言)입니다. 이렇게 각자가 위치하고 있는 좌표를 인식하고 적절하게 하는 행동이 바로 '예(禮)'에 맞는 행위가 됩니다.

저 사람이 삼촌이면 삼촌으로 대하고, 사촌이면 사촌으로 대하는 것이에요. 군수면 군수로 대하고, 노 비면 노비로 대해야죠. 이렇게 좌표에 맞는 적절한 행위를 반복해서 하다 보면, 그 과정을 통해서 계속 바람직한 인간으로 성숙해 간다는 것입니다.
(중략)
그 좌표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이 바로 예(禮)를 지키는 것이고, 그렇게 하면서 인간이 계속 성숙해 간다는 게 유가의 믿음입니다. 그런데 노자는 그런 구분된 앎으로는 보편적인 것으로 합의된 이념을 기준으로 설정하는 일을 피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  본문 中




'노자인문학'을 쉽게 풀이한 최진석교수의 책을 접했다. 일전에 '공자'와 '맹자'를 풀이한 인문학을 읽고서 끝내기엔 편협한 독서가 될까 우려되어 시작하였는데, 역시 공부란 어느 단계에서 끊내는 것은 또 다른 편견을 만들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공자는 이상실현을 꿈꾸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예(禮)로서 나라를 다스리고, 덕(德)으로 예를 내세워 통치하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선 혼란한 춘추시대의 많은 국가를 떠돌며 정치에 입문을 꿈꾸며 왕들에게 인(仁) 사상을 설파했다. 인(仁) 사상은 한마디로 극기복례(克己復禮)- 자기의 욕심을 버리고 예의범절을 따르라-라 요약할 수 있다.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공자는 자신의 정신적 스승을 '노자'로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만약 공자가 노자와의 시간을 좀 더 갖게 되었다면 어떤 사상으로 정립되었을까 궁금해진다. 


노자는 도교의 사상적 뿌리를 제공한 인물로 우주 만물에 대해 깊게 연구해 만물의 '도(道)'를 발견했다. 그의 사상은 공자의 사상과 다르기 때문에 비교차원에서 노자를 말할 때 늘 공자의 사상과 비교하게 된다. 그는 공자의 일관된 개념(훈련習)-배움-은 지식화 되어 있기 때문에 내면적 힘이 없이 그대로 수용할 경우 금세 뻣뻣해져 고집스러운 지식인으로 밖에 남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그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을 이해하라 말한다. 이는 개념 역시 두 방향에서 이해해야 마땅하다고 본 것이다. 일단 '유'를 말하자면 '무'를 떠올리게 된다는 의미로 상호의존적 관계라는 말이 그 첫째이고, 만물이 늘 변화 속에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공자는 군주는 군주, 신하는 신하, 아버지는 아버지의 직분에 따른 개인의 역할과 책임 등, '구분된 앎'을 강조했지만 노자는 인간의 본질, 본성을 긍정하지 않았다. 유와 무의 대립과 긴장, 상호 의존적인 관계로 이 세계가 이뤄져 있다고 본 것이다.


노자는 세상의 구분을 만들어내는 그 기준을 인위적 관념의 산물이라고 봤다. 왜 그런 기준 아래 개별적 자아가 주눅 들고 고통받아야 하는지 의아하게 본 것이다. 노자는 바람직한 것을 모두 똑같이 수행하는 사회보다 '바람직한 것'을 없앤 후 각자 바라는 바를 다양하게 수행하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가 더 강하다고 본 것이다.


노자가 살던 당시의 정치적 상황은 점점 거대 국가 시스템으로 이행하는 과정이었는데, 거대국가 시스템은 어쩔 수 없이 표준화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공자의 보편화, 이념화는 이렇게 탄생한 것으로 이해가 된다. 노자는 그렇다면 어떤 정치를 원했던 것일까.


노자는 거대국가 시스템이 아니라 작은 나라 시스템인 지방자치제를 지향합니다. 그런데 지방분권이나 지방자치를 하려면 하나의 표준으로 전체를 묶어서는 안 됩니다. 각각의 분리된 곳들 각자에 맞는 다양한 기준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저 멀리서 표준으로 기능하는 보편적 이념을 버리고 바로 여기에 있는 구체적인 것들의 자율성을 취하는 방식, 즉 '거 피취차去彼取此'가 더 적합한 방식으로 요청될 수밖에 없습니다.



거대한 조직의 일부로 일할 때 자기가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자존감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작은 조직에서 일할 때 자신의 일이 바로 자신에게 접촉되는 느낌을 받는 것처럼 기계 속의 부품처럼 살게 말고, 시골동네에서 사는 것처럼 누구나 알아주는 편한 삶을 원했다. 즉 스스로 고유한 존재라는 의식을 갖게 하는 삶이 '바람직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대량으로 찍어내는 공장이 하나 둘 문을 닫고,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소량다품종'시대가 열린 것만 보더라도 시대적 방향조차 노자의 사상으로 가고 있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면 개인의 상호관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인식 능력은 어떻게 가져야 할까. 노자는 '명明'의 방법을 제시한다. 해로만 보거나 달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달과 해와의 관계 속에서 해를 달과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라는 것. 동시에 포착하는 능력, 유무상생(有無相生)이다. 


나는 이것을 확신하지 않는 힘이라 생각한다.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 최진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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